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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그녀의 말은 아름다웠다



“떼떼 떼~ 떼떼 떼떼~~~ 떼떼 떼” 

식사 시간 이후 한창 바쁜 설거지와 뒷정리 시간이면 으레 들리는 우렁찬 목소리. 

자신이 요구하는 것을 들어줄 때까지 쉬지 않고 외치는 박송녀(가명) 어르신이 요양보호사를 부르는 자신만의 언어다. 때로는 집요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녀는 양보를 모르는 외골수다. 주로 물을 달라거나 커튼을 쳐 달라는 사소한 것이지만, 일손이 달려 바로 실행해주지 않으면 해 줄 때까지 쉬지 않고 소리를 지른다. 

“따아~ 따아아아아~~~따따” 

바쁜 일을 먼저 처리하느라 돌아볼 여유가 없을 때 그녀의 목소리는 거의 소음 공해에 가깝다. 그녀에게 남을 위한 배려나 기다림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녀만의 욕구 충족을 무엇보다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다른 어르신에 비해 머리맡 상두대에 늘 먹을 것이 가득하다. 한 번에 각종 과일과 과자 그리고 두유 한 팩 정도는 기본인 그녀의 먹성은 우리 요양원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먹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일인 줄 아는 그녀는 요양원에 있기에는 비교적 젊은 나이지만 와상 환자다. 뇌졸중으로 인해 편마비가 된 상태이고 심한 언어 장애를 앓고 있다. 

멀쩡한 왼손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며 ‘떼떼떼’ ‘요요요’ ‘따따’ 그리고 겸연쩍은 듯 웃는 활달한 웃음이 그녀의 주요 의사소통 수단이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뭘 원하는 건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한참을 헤매곤 한다. 


진한 눈썹 아래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질을 하며 무언가를 절실하게 얘기하는 그녀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그녀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다. 그러고 나서 원하던 것이 이루어지면 ‘아오~~’하며 자신이 마치 큰일이라도 한 듯 긴 한숨을 내쉰다. 무엇을 원하는 건지 몰라서 그녀와 실랑이하느라 진이 빠져 짜증이 나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결국 미안한 마음에 함께 웃게 된다.


사실 그녀는 다른 방들과는 달리 902호실에서만 종종 풍기는 고약한 냄새의 주범이다. 하루에 마시는 물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보니 늘 그녀의 기저귀에는 소변이 넘친다. 게다가 먹는 족족 대변도 수시로 보는 터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기저귀를 갈아 줄 때마다 ‘아오~~’하면서 몹시 힘든 일을 한 듯 큰 숨을 내쉬는 그녀에게 

“어르신, 어르신이 뭐 힘들다고 한숨을 쉬세요? 힘든 건 우리인데?”

하고 웃으면, 그녀는 민망한지 일부러 과장되게 ‘껄껄껄’ 호탕하게 웃으며 우리의 손을 덥석 잡는다. 그래서인지 잦은 기저귀 교환으로 힘들게 하는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무언가를 먹을 때 너무나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말을 못 할 뿐 인지가 있는 상태인데도 하루 종일 누워서 먹거나 TV 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다가 의사 표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며 지루한 시간들을 견디고 있는 걸까. 

이따금씩 늘 밝은 얼굴의 그녀에게서 보이는 무섭도록 차가운 표정에 가슴이 섬뜩해질 때가 있다. ‘한없이 쏟아내고 싶은 절절한 이야기들을 가슴에 담아놓고만 있어야 하는 울분 때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정확한 의사 전달이 안 되니 그녀의 요구 사항은 늘 뒷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그녀의 반복되는 생활 습관을 조금만 알면 금방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임에도 말이다. 애교 띤 웃음을 자지러질 듯 좋아하고, 사소한 스킨십마저 그저 행복해하는 그녀에게 좀 더 관심을 주는 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유난히 고약한 냄새를 맡으며 자주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것이 힘든 건 사실이지만, 기약 없는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하는 그녀만큼 지치고 아픈 일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두 달 가까이 계속됐던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한여름 폭염이 시작된 지 며칠째. 야근 후 이틀을 쉬고 아침에 출근했더니 밤새 그녀가 많이 아팠다고 했다. 전날 보호자인 남편이 와서 평소처럼 좋아하는 음식을 먹였던 모양인데 심하게 체했는지 밤새 토하고 열이 오르고 했다는 것이다. 얼굴을 보니 유난히 눈이 퀭하고 낯빛이 몹시 창백했다. 

“어이구 어르신, 그러니까 적당히 드셨어야죠... 좀 어떠세요?”

라며 타박하는 듯한 얼굴을 했더니 힘없이 ‘떼떼 떼’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열도 내리고 안정되었다는 그녀의 안색은 여전히 나빠 보였다. 이날 그녀는 처음으로 금식을 해야 했다. 

그런데 한 시간 뒤 진정되는 듯했던 그녀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되기 시작했다. 손과 발을 바늘로 따고, 서둘러 엄청난 양의 관장을 했으며, 산소호흡기를 꼽았지만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보호자에게 연락했으나 내내 기다리다가 퇴근 시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가 되어서야 결국 그녀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밤 요양원으로 돌아온 그녀가 회복되지 못하고 갑자기 운명했다는 얘기를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듣게 되었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그토록 허망하게, 그녀를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계실 때 좀 더 친절하고 다정하게 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너무나 후회됐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고집스럽게,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902호실 터줏대감으로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그녀가 누워있었던 텅 빈 침대에는 그녀가 그토록 싫어서 늘 커튼을 쳐달라고 ‘떼떼’ 거렸던 따가운 햇살만이 가득 넘쳐흐르고 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코끝이 찡해져 성급히 돌아서는데 불현듯 그녀가 민망할 때 웃는 호탕한 웃음소리와 ‘따따따’ 소리가 등 뒤에서 들리는 듯했다. 


‘가까이 있을 때 잘하라’는 지극히 평범한 말이 이토록 절실하게 다가온 적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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