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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천국과 지옥을 오간 시간

             

‘삐융삐융삐융삐융~~~웨에이이이이잉’

한밤중 모두가 잠든 요양원의 적막을 깨고 갑자기 고막이 찢어질 듯한 사이렌 소리가 사방에서 울렸다. 새벽부터 비가 조금씩 부슬거리며 내려서 더욱 어둡게 느껴졌던 시간. 

시계는 정확히 오전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르신들의 기저귀를 갈아준 후 잠시 라운딩을 돌던 나는 화들짝 놀라 거실로 뛰쳐나왔다. 사방으로 어지러운 빛이 퍼지며 비상등이 요란하게 깜빡이고, 귀청을 때리는 사이렌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순간 화재에 대비해서 장치해 놓았다는 거실 창문이 기분 나쁜 소음을 내며 자동으로 열리고 있었다.

‘이건 진짜다. 분명 화재 훈련이 아니다.’

‘정말로 건물 어디선가 불이 났다!’


초보 요양보호사로 요양원에 들어온 지 이제 한 달 남짓. 나는 화재 훈련 한번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무엇부터 해야 하나. 비상구가 어디였지? 며칠 전 관리자가 가르쳐 준 탈출 통로가 어디 있었는데... 그런데 어느 어르신을 먼저 모셔야 하지? 걸을 수 있는 어르신? 그럼 와상 어르신은? 내가 먼저 나가면 안 되겠지? 어르신을 몇 분이나 탈출시킬 수 있을까? 아, 어떻게 해... 꼼짝없이 여기서 죽는 건 아니겠지? 나 혼자라면 옥상으로 올라가서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을 텐데. 어르신들을 두고 갈 수도 없고, 다 같이 죽을 수도 없고... 어떡하냐고!!’


정말 그 긴박하고 짧은 순간에 셀 수도 없이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 요양원은 고층 건물에 있었다. 물론 뛰어내릴 수도 없는 높이였다. 선임 요양보호사들도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숨을 몰아쉬고 침착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 앞뒤 비상구 문을 열어 어두컴컴한 계단에서 연기가 올라오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직까지 연기가 보이진 않았다. 큰 소리에 놀란 몇몇 어르신들이 하나둘씩 거실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안정시키는 사이 선임 요양보호사가 확인을 한다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거실에 모인 어르신들은 나만큼 놀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사태에 대한 판단력이 떨어져서인지 아님 우리들을 믿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연기가 올라오기 전에 옥상으로 모시고 대피할 수 있는 어르신은 불과 몇 명일 터였다. 그렇다고 대다수 나머지 어르신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거실 창문이 열렸으니 소방차가 올 때까지 문틈을 젖은 수건으로 막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이렌 소리는 여전히 멈출 줄 모르고 심장이 터지도록 급박하게 울리고 있었다. 우왕좌왕하면서도 어찌해야 할지 누구한테 물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한순간 그렇게 요란하던 사이렌 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건물 밖에는 이미 소방차 한 대가 와 있었고, 소방대원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다행히도 건물에 불은 나지 않았다. 

다리가 풀려 나도 모르게 스르르 주저앉았다. 울컥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난생처음 겪어본 지옥과 천국을 오간 시간이었다.

지하실에 있는 경보기가 누전되면서 문제가 생겼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며칠 전에도 낮에 잠깐 사이렌이 울렸었는데 또 그럴 줄 몰랐다는 것이다. 

‘이런 된장... 그런 일이 있었으면 모두에게 사전에 주의를 줬어야지. 관리자들의 불감증이란... 쯧쯧’하고 혀를 차며 그저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너무 분했다.


보통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도시에는 고층 건물에 입주하고 있는 요양원이 적지 않다. 처음 근무했던 경기도에 있는 요양원도 가장 번화한 도심 한가운데 있는 건물 15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그런 곳에서 불이 난다면 어떻게 신속하고도 안전하게 어르신들을 대피시킬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많은 희생이 뒤따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이후 틈틈이 화재 대피 경로를 파악해 두는 게 습관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이 보이고, 또 어떤 어르신을 먼저 모시고 남겨야 할 것인지에 대해 답을 찾지 못했다. 솔직히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는 어르신들을 모두 버리고 본능적으로 내가 먼저 살겠다고 탈출할지도 모른다.

 사고는 늘 불시에 일어난다. 살 만큼 살았으니 적당히 해도 된다고 부모님을 맡긴 보호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층 건물에 있는 도시의 요양원에서는 화재에 대비한 보다 현실적인 훈련과 어르신들 안전을 위한 대책이 꼭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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