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905호실의 터줏대감 윤정복(가명) 어르신은 조선족 출신이다. 언제나 짧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키는 작지만 아직은 탄탄한 근육이 돋보이는 다부진 체격을 지니고 있는지라 한눈에 봐도 상남자다운 사나운 기운을 풍긴다.
그는 이방인인 조선족으로 이 땅에 와서 버거운 사람들과 부대끼며 가족들을 부양하느라 고생을 많이도 했을 것 같은 야무진 얼굴을 가졌다. 말도 거칠어서 ‘간나새끼’는 기본이고, 마음에 안 들면 같은 방 어르신들께 닿지도 않는 발길질과 목청껏 쌍욕을 수시로 날리는 분이었다. 사실 면회 오는 가족들의 인상도 그에 못지않게 만만치 않았다. 그들 중에서도 유독 작은 키에 조금은 사납게 보이는 그의 아내는 괄괄한 목소리에 목청이 컸는데, 올 때마다 다소 불신에 가득 찬 표정으로 이유 없이 우리들을 쏘아보곤 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요양원에 와서 마주한 그는 한없이 따뜻하고 자상했다. 치매가 있는 노인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의사소통에 별문제가 없었고, 일이 힘들 거라며 무엇이든 손수 하려고 해서 오히려 난감할 지경이었다. 선임 요양보호사들이 그를 이야기하면서 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는 처음에는 지팡이에 의지해 조금씩이나마 보행을 할 수 있었다. 복도를 천천히 오가며 산책도 하고 힘들면 스스로 휠체어에 앉아 쉬기도 했다. 혼자 화장실을 갈 수 없어서 편의상 기저귀를 착용하긴 했지만, 그 외에 다른 일로 우리들을 성가시게 하지는 않았다.
내가 요양원에 들어와 9층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905호실에 ‘요요요’ 어르신이 입소했다. 구척장신이라고 할 만큼 키가 크고 기골이 장대한 최만호(가명) 어르신이 그 주인공이었는데, 그는 전직 군인 출신으로 하반신을 쓰지 못하는 와상 환자였다. 그런데 언어 장애가 심해서 ‘요요요’ 소리밖에 할 수 없었다. 그는 젊은 시절엔 대단한 미남인 데다 카리스마 넘치는 장교였다고 했다. 그래선지 성격이 불같고 조금의 참을성도 없는 고집불통이었다.
그는 요양원에 들어와서도 당신만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요구했으며, 조금이라도 불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는 시정될 때까지
“요요요~ 요요요요요~~”
하면서 온 복도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또 라디오를 크게 틀어서 밤낮으로 노래 듣는 것을 즐겼는데, 노랫소리가 거실이며 복도를 온통 가득 채울 정도였다. 달려가서 소리를 조금만 줄여 달라고 사정을 해야 겨우 알아듣는 척하며 마지못해 줄이곤 했다.
어느 날은 자기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갑자기 선임 요양보호사의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통에 한바탕 난리가 나기도 했는데,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윤정복 어르신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다가와 그에게 욕하며 지팡이를 휘두르는 통에 큰 싸움이 벌어졌다. 하반신을 움직이지 못해도 최만호 어르신의 힘이 워낙 세서 지팡이를 잡고 방어한 덕에 서로 다치는 불상사는 없었지만, 그날 이후 두 어르신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앙숙이 되었다.
남자 어르신들이 있는 방은 왠지 티는 안 나지만 항상 전운이 감돈다. 힘없는 노인이긴 해도 살아 숨 쉬는 동안은 상남자들의 본성이 내재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무튼 방을 바꾸든지, 누구 한 사람이 나가야 해결될 것 같은 분위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런 와중에 최만호 어르신의 등에 욕창이 생길 듯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상 환자에게 가장 흔하면서도 무서운 질병이 욕창인데, 그는 고집스럽게도 체위 변경을 거부하기가 일쑤라서 요양보호사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를 태웠다. 이러다간 정말 위험해진다며 아무리 달래고 어르고 해 봤자 그에게 우리들의 말은 씨도 안 먹혔다. 원장이 와서 몇 번이나 호통을 치고서야 못마땅한 듯 겨우 옆으로 돌아눕곤 했다.
문제는 보호자들도 그에 못지않게 협조적이지 않다는 데 있었다. 요양원 탓만 하며 아버지를 설득하려고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예 그를 설득할 수 없다고 판단해서 포기한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두 상남자를 포함해 네 분의 남자 어르신이 있는 905호실에는 자잘한 사건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져서 조용할 날이 별로 없었다.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때때로 웃음꽃이 피는 여자 어르신들이 있는 방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두 달쯤 지났을까. 최만호 어르신이 갑자기 요양원을 떠난다고 했다. 보호자가 이런저런 트집을 잡았다는 얘기가 난무했을 뿐 사실관계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거의 매일 그에게 시달린 탓에 아무도 그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지는 않았다.
그가 떠난 후 요양원은 평화를 찾았고, 윤정복 어르신도 더 이상은 다른 어르신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김장수 어르신이 밤에 옷을 홀랑 벗고 활보하다가 그에게 들켜서 욕을 바가지로 먹었던 일만 제외하면, 그 누구도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여자 어르신만 있는 8층으로 내려가 반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내가 다시 9층으로 왔을 때, 그는 예전과 달리 많이 쇠약해져 있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다정하고 인자한 웃음을 보였지만, 치매가 상당히 진행되고 있는 듯했고 혼자 제대로 일어서지 못했다. 한밤중에 뜬금없이 걸을 수 있다며 우리의 눈을 피해 침대 밖으로 내려서려다 주저앉는 일이 반복되자 넋이 나간 사람처럼 우두망찰 앉아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는 눈물이 많아졌다. 아침에 하얗게 뒤덮인 턱수염을 면도하다가, TV 뉴스를 보다가, 가족들 자랑을 하다가도 갑자기 울먹였다. 왜 우느냐고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면 그의 크고 단단했던 등이 한없이 작아 보여서 애처롭게 느껴졌다.
한때는 가장 넓은 어깨를 가졌었지만, 어느새 일그러지고 가벼워진 우리 아버지의 헛헛한 무게가 그의 뒷모습과 자꾸만 겹쳐서 그를 볼 때면 더 마음이 착잡했다.
젊고 강했던 남자는 그렇게 노인이 되고, 울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자신을 인정하기 싫은 눈치다.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날이 많아지고, 기억력이 희미해져 간다며 자꾸만 훌쩍이고, 자주 걸리는 사래 때문에 밥 한 숟가락 뜨는 시간이 한없이 길어지는데도 언젠가는 다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는 말은 없지만, 언제까지나 당신이 요양원의 유일한 상남자로 남을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