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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연 Mar 06. 2021

뚱뚱한 게 죄는 아니잖아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들에게 가장 흔한 질병은 아무래도 근골격계 관절 쪽 질환일 것이다. 허리를 숙여 기저귀를 갈거나, 어르신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내려줘야 하는 과정 속에서 근육의 힘을 밀고, 당기고, 들어 올리는데 반복적으로 몰아서 쓰기 때문에 손목, 어깨, 허리 등에 자연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왜소한 어르신이라고 해도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하다. 더구나 요양보호사들 대부분이 50, 60대 여성들이다 보니 그 모든 일들이 힘에 부치는 것은 당연하다. 


김금이(가명) 어르신은 하루에 한 번 거실로 나와 점심 식사를 하고 프로그램까지 참여하는 게 날마다의 일정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능한 요양보호사일지라도 그녀를 혼자서 휠체어에 태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체중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우리 요양원에 처음 왔을 때보다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지만, 덩달아 살집도 점점 불어서 상당히 뚱뚱한 몸이 되었다. 다른 와상 어르신들은 대체로 마른 몸을 유지하고 있으나 그녀만은 예외다. 게다가 건강이 좋아지자 그동안 막혔던 말문이 터지면서 다소 신경질적이고 짜증을 내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심지어 지난 설 명절 때는 집으로 며칠 외박 나가려고 했던 게 집안 사정으로 취소되자 마음이 많이 상했는지, 이후 오랫동안 사사건건 우리들에게 시비를 거는 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왜 여기다 가둔 거야?” 

“우리 집에 전화 좀 해봐” 

“우리 남편 좀 불러줘” 

“이렇게 살기 싫어, 싫다고” 

“아유, 불편해. 불편하다고!!”

밤에는 이유 없이 고함을 지르거나, 침대에서 떨어지려고 일부러 몸부림을 치기도 했다.

이럴 때 날카롭고 매서운 그녀의 작은 눈은 무섭도록 형형한 색을 띠어서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친 적도 있다. 


그녀의 몸이 갈수록 비대해지다 보니 이제는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거나 내릴 때 한꺼번에 요양보호사 세 명이 달려들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단순히 그녀를 돌려세워 기저귀를 갈 때도 손목에 무리가 갈 지경이다. 할 수 없이 젊은 남자 사회복지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 역시도 허리가 아프다며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다. 

나도 그녀를 옮길 때는 바짝 긴장을 하게 된다. 그녀를 휠체어에 태울 때마다 손목이 종종 꺾여서 몹시 아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따금 정말 뜬금없이, 끙끙대는 우리들에게 그녀가 

“정말 미안합니다”

라는 말을 할 때면 한없이 측은한 마음이 든다. 뚱뚱한 게 죄는 아니지만 뚱뚱하기 때문에 요양보호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니까 말이다. 아무리 치매에 걸렸다고 해도 달가워하지 않는 우리들의 태도를 그녀가 언제까지나 눈치 못 채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즘 그녀를 휠체어에 태우거나 내리는 일은 요양원에서 유일한 남자 사회복지사가 아예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럴 때 흔하지 않지만 요양원에 남자 요양보호사가 있으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특히 남자 어르신이 있는 곳에는 여러모로 꼭 필요한 일손이기도 하다. 내가 처음으로 아주 잠시 일했던 경기도에 있는 요양원에서는 예전에 남자 요양보호사 한 분이 있었다는데, 여자들 틈바구니에서 불편했는지 오래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늘 투덜거리는 그녀가 이따금 말없이 허공을 응시하는 모습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할 때가 있다. 

하루 종일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그녀가 밤에 잠을 자며 심한 잠꼬대라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꿈속에서라도 자유롭게 걷고 뛰어다니길 바라게 된다. 


걸을 수 있다고 허망한 고집을 부리며 내려달라고 떼쓰는 그녀 때문에 짜증이 나면서도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점점 살찌는 그녀가 위험해 보이면서도 식사 수발을 들 때면 한 숟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마음은 또 뭘까. 


귀여운 곰들이 잔뜩 새겨져 있는 앙증맞은 잠옷을 입고, 예쁜 손거울을 베갯머리에서 떼 놓지 않는 그녀의 유난히 작고 오동통한 손등을 잠시 쓸어 본다.

‘어르신, 지금 편안하신 것 맞죠? 그래요, 조금 더 살찌셔도 좋아요. 그저 더 아프지 말고 늘 이렇게만 계셔 주세요. 이렇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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