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오하라
교토 북쪽 산쪽 오하라에 꽃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전 일찍 버스에 탑승했다. 이런 핫 소식을 나만 알리가 없지... 버스는 교토역 부근에서 탔음에도 불구하고 만석에 미어터지더라. 정거장을 지날수록 할매+할배 승객이 늘어났고 엉거주춤 서있는 상태로 한 시간쯤 가다보니 종점인 오하라에 도착했다. 아이고 허리야!
오하라에 가까워질수록 산세와 색이 예뻤다. 물론 버스에 서있어 삭신이 쑤셨지만 아픔이 무뎌질 정도로 산색이 한국과는 다르고 신기했다. 짙은 소나무가 가득한 우리산과 달리 연두색과 핑크색이 어우러진 산이었다. 낑겨있어 사진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쬐끔 한국 갬성과 다른 산을 보며 오하라에 벚꽃 기대가 더 커졌다.
오하라에 절 산젠인. 벚은 지고 있었다. 하늘에서 핑크 쓰레기가 우수수 떨어진다. 오전에 바람이 세차게 분 덕에 핑크 꽃잎비를 맞았다. 일본에 파릇하고 정갈한 정원에 흩뿌려진 핑크 점묘법이 나를 취하게 했다. 사케가 필요한 타이밍이다. 실제로 마시지 못해 아쉬울 뿐. 절에 사는 분들은 핑크 쓰레기를 치우자고 생각하겠지.
산젠인에 귀요미들. 아직도 귀엽고 평생 귀엽겠지. 누군가는 머리카락이 생기기도 했다.
다 져가는 동백꽃도 다른 꽃쓰레기와 섞여 존재감을 뿜뿜한다. 산젠인에 만개한 꽃을 보며 절에 대표 차를 한잔 마시며 운치를 즐겨야 하는데........ 비싼 차에 금 좋은데..... 엄청 비렸다. 차에 무슨 짓 한 거야!! 나한테 바닷물 준건가? 산젠인에 비싸고 핫한 차 맛이 충격적이다. 웩
꽃구경을 마치고 교토 시내로 돌아오니 반나절이 휘릭 지나갔다. 맛없는 오믈렛으로 위장을 채운뒤, 커피도 먹고 싶고 네네노미치도 가고 싶어 네네노미치 아라비카 커피를 방문했다. 가게는 코딱지만 한데 워낙 유명해서 바글바글했다. 어쩔 수 없이 거리에서 맛을 보았고 커피 맛은 굿이었다. 유지방이 가득한 일본 우유로 만든 라테는 꼬수웠다. 하지만 나는 락토프리 인간이니 한 입 먹고 아메리카노나 먹어야지. 아메아메아메아메아메 아메아메아메아메아메
이노다 커피에 들러 기념품도 사 갈 생각이었는데 이 동네는 다섯시면 문을 다 닫냐. 불 켜짐과 동시에 문 닫는 상가를 보며 숙소로 발걸음을 돌리는데 갑자기 굵은 비가 미친듯이 내렸다. 모르는 가게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길 기다렸고 마침 그곳에 우산꽂이가 있었다. 씩 훑어보니 가게엔 손님이 없고 우산꽂이엔 투명우산 하나가 빼꼼히 서있었다. 눈알 굴리며 눈치 보다 누군가 손님이 놓고 간 우산임을 알고 자연스럽게 내 우산인 척 쓰고 숙소로 무사 귀가했다. 하하하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