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부적응자
가기 전부터 걱정이 많았다. 모 유럽 카페의 이탈리아 게시판의 키워드 대부분이 소매치기, 강도, 집시이다. 물고기도 뜯어먹는 만만인데 로마에서도 뜯길까 가기 전날까지 잠을 설치며 긴장했다.
하지만 공항에 내리고 만난 나태한 직원, 한인 단체 관광객을 보니 이상하게 긴장이 풀렸고 가장 무서운 곳은 숙소가 있는 테르미니 역이라 하여 가방을 단디 메고 내렸으나 군인과 경찰이 많아서 놀랬다. 알고 보니 그 주에 EC(유럽 경제동맹) 60주년 행사가 있던 것! 토요일엔 관광지 통제가 있을 예정이며 반 EU시위를 조심하라던 한국대사관 공지도 떴다. 이것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덕택에 안전한 로마여행을 하였다.
여행 첫날부터 시차 적응 실패로 새벽 4시쯤 눈이 떠졌다. 잠도 안 오길래 이리저리 연락을 했더니 '새벽의 유럽이라니 운치 있다'라는 수린 언니의 말에 글쎄... 하는 마음으로 날이 밝아지는 대로 나갔다. 사실 운치보단 더러운 거리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더러움에 익숙해지니 차분함이 느껴지다 그제야 운치가 다가왔다.
새벽의 찬 공기를 맞으며 가장 먼저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이 느낌 뭐랄까 차가 사고로 부서졌는데 그대로 놔두고 이건 유적이다 하는 표현은 너무 비약인가.
이른 오전의 트레비 분수는 돈을 수거 타임이었다. 아름다운 돈벌이다! 로마의 휴일의 로망으로 번 돈이다! 돈이 많아 감탄했었다. 다 내 돈이었으면...
새벽부터 걷다 보니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를 만큼 여유가 있는 정신머리는 아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만 둘러보자 한 것이 25km 걸었더라고. 길을 잃어 들어간 판테온의 웅장함에 놀라고 천장은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장기 비행과 시차 부적응였고 정신없이 유령처럼 걸어 다녀 그런가 결국 빨려 들다 잠이 들었다.
가장 좋아라 했던 나보나 광장. 분수의 조각상이 물을 토해내는 모습이 마음이 들었다.
밤의 로마는 낮보다 사람이 많았다. 다시 방문한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는 사람을 구경했고, 나보나 광장에선 사람들이 미친핑크날다람쥐를 구경했다(?) 그리고 보세게세 미술관을 가다 길을 잃어 만난 얼굴이 뿅뿅 박힌 특이한 건물들도 잊을 수 없다.
진실의 입을 가려고 내린 지하철역 앞에 엄청 드넓고 뻥 뚫린 공간이 시선을 끌었다. 마침 지나는 길. 이곳이 팔라티노 언덕이란다. 너의 이름은 처럼 작은 운석을 하나 정도 쳐 맞은 후 시간이 흘러 잔디밭이 자란 느낌. 그리고 말없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폐허들의 분위기가 압도적이고 대견해 보였다. 이곳 말고도 로마를 걸으면서 폐허와 도시의 조합이 되게 아이러니한 감성을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서진 돌, 돌길, 폭격 맞고 오래된 건물에 1층은 맥도널드, H&M, ZARA가 있었다. 과거에 현실을 레고처럼 끼었다고 해야 할까. 에라~모르겠다.
내가 좋아했던 나보나 광장엔 감성팔이 화가, 풍선 장사꾼, 야광 제기 파는 흑인, 꽃 파는 집시 덕에 흡사 건물과 풍경만 다르지 하는 짓은(?) 오이도와 같았다. 이것도 너무 비약인가? 에라~모르겠다~호
로마제국의 흔적이 몇천 년 남아있는 휼륭진 동네에서 오이도를 느껴서 미안하다. 찬란한 유산에 이런 싸구려 감성 미안해 로마야!
스페인 광장에선 훈남 점원이 주는 폼피 티라미수로 인생 티라미수를 먹었고 단테 카페에선 훈중년 바리스타가 내리는 에스프레소로 충분한 커피를 즐겼다. 훈남 직원이 유독 있던 스페인 광장. 이것이 로마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