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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말피에서

Salerno-amalfi-ravello

by 성포동알감자

이탈리아 남부 여행 사진을 고르는 중 화가 났다. 나름 좋은 카메라로 장만했는데 유독! 이태리! 남부! 사진만! 왜곡이 심하다. 화질도 거지다. 초점도 나갔다.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동네에서 추억할만한 사진이 별로 없다니 아름다운 나의 바다 나의 파도 마음속 기억으로만 간직할게 오 나의 살레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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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여행의 중심은 나폴리지만 무서우니까 살레르노를 거점 삼기로 했다. 살레르노에선 생애 첫 에어비앤비를 이용했고 성공적이었다. 일단 숙소가 심각하게 깔끔했고 주인이 매우 친절했고 조식도 훌륭하였다.

대문, 방문을 못 열어서 낑낑댔던 일도 떠오른다. 문과 사투를 벌이다 위층 주민분의 도움으로 대문을 열었다. 이번엔 방문을 못 열어 옆방의 오스트리아 소녀가 열어주었다. 알고 보니 키를 넣고 여러 번 돌리는 식의 잠금. 대문은 다섯 번을 탈칵탈칵, 방문은 세 바퀴 돌리니 문이 열리더라. 어휴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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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불고기파스타..........

왠지 이 날은 맛있는 음식을 사 먹고 싶었다. 트립어드바이저로 맛집을 찾아 들어갔다. 이 동네 물가가 상당히 저렴한데? 로마에선 파스타 한 그릇에 15유로쯤인데 이곳은 파스타 + 그릴 요리 + 사이드 메뉴 + 미네랄 물 2L = 8유로였다. 양도 많아서 반 정도 먹고 나머지는 전부 포장해왔다. 사실 파스타는 굉장히 짜서 반밖게 못 먹었다. 웨이터가 '정말 다 먹은 거야?'라고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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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말피와 포지타노를 가기 위해 오전 일찍 버스정류장에 갔다. 비수기라 버스가 아홉 시 반에 올꺼란다. 벗, 위풍당당 아말피행 버스는 10시 10분에 왔다. 구불진 산길을 한참을 기어가 열한 시 반쯤 아말피 해변에 도착했다. 아말피에서 포지타노 해변도 1시간쯤 가야 한단다. 그래서 포지타노 해변을 빠르게 포기했다. 나의 포기는 라벨로를 다녀오면서 더욱 현명하다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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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자마자 강한 햇살이 눈을 찌르며 환영했고 일렁이는 파도와 투명하게 보이던 지중해 바닷물이 어서 오라고 했다. 세로로 지어진 집들이 레고처럼 쌓여있다. 어우러지던 능선, 해안, 투명한 바닷물, 유난히 맑았던 하늘. 훅 빨면 앞의 풍경들이 입속에 저장되고 훅 불면 그 장면이 다시 튀어나오는 마법을 고안할 만큼 오랫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정신을 차리니 2시쯤이었다. 포지타노는 이미 포기했고 가까운 라벨로라는 마을을 가려고 버스를 알아보는 찰나 막 출발한단다. 타이밍이 좋았다. 20여분쯤 산길을 올라가 라벨로에 도달했다.

라벨로는 위에서 아말피 해안을 바라볼 수 있는 산 중턱의 마을이다. 밑에서 바라보는 아말피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이나 대신 위에선 바다의 모양과 결이 잘 보인다. 바다는 파란색으로 배틀 중이고, 산과 절벽의 신기한 레고 집들은 어떻게 지었을까 어떤 방법으로 올라와지었을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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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걷던 로마와 다르게 넋을 놓고 바다를 바라보니 마음의 긴장감이 풀렸다. 혼자 여행에 꽤나 긴장을 했다보다. 아무도 나를 신경도 쓰지 않는데 혼자 의식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에게 아무도(슬프게도) 관심 없다. 넌 자유인이야!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아말피 해안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렸다.

20분만 가면 되는 버스는 1시간이나 지연되어 도착했다. 프랑스 관광객이 유독 많았는데 버스에서 온갖 불어로 된 욕을 들었다. 불어를 모르지만 이건 확실하게 욕이다.

살레르노로 돌아와 산책길을 걸으며 피자와 젤라토도 먹고 마지막 여유를 부렸다. 치안이 안 좋다던 남부를 걱정했는데 유독 친절한 사람들을 많았던 (유독 버스시간이 안 맞던) 짧은 남부 여행이었다. 정말 호의로 매너로 캐리어를 날라주던 주민들, 차량을 통제해주고 길을 건너게 해준 경찰, 모두 그라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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