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아름다웠어
로마, 피렌체, 베니스 여행을 함께한 일행과 헤어지고 혼자만의 장기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태리 남부에서 보낸 2박 3일의 나 홀로 여행 이후 베로나를 시작으로 14일의 나 홀로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베로나는 산지미냐노와 더불어 이탈리아 도시 중 마음에 콕 박힌 곳이다.
난 소도시를 좋아한다.
(그나마) 깔끔하고 조용한 길을 좋아한다.
한산함이 좋다.
널따랗게 보이는 게 마음이 트여 좋다.
두 동네가 그러했다. 그래서 정이 더 갔나 보다.
아레나 옆 브라 광장은 프랑스 수학여행객으로 붐볐다. 이탈리아 도시 여행 내내 프랑스 학생들이 함께하는구나. 수다를 떨고, 합창 연습을 하고, 기타를 친다. 학창 시절 다녀온 수학여행과 분위기가 다르다. 이것들은(?) 너무 자유롭다. 프랑스 학생들은 통제가 적은 지 선생님 몰래 담배도 많이 피우고 낮에 맥주도 먹는다.
학생들이 점거한 광장에서 쉴 곳을 찾았다. 베로나 주부님 옆자리가 비어 양해를 구해 앉았다. 주부님의 남편은 아가랑 놀고 있고 주부님은 흰색 스틸레토 힐을 바닥에 던져놓고 담배를 태우며 힐에 혹사당한 발가락을 말린다.
학생들과 주부님의 소소한 일상인지 일탈인지 구분은 안 가지만 자유로워 보인다. 광장에서 쉬는 우리 모두 자유인이다!!
줄리엣의 집을 가기 위해 에르베 광장을 지났다. 이날은 장도 섰다. 소박하고 낯선 유럽의 광장에서 동네 아파트 장 서는 날이 떠오른 건 기분 탓이겠지.
줄리엣이 없는 줄리엣의 집이다. 사랑의 염원이 담긴 러브레터 벽은 험악한 그라피티 벽이 되어있었다.
줄리엣 동상의 가슴을 만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있다. 그곳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줄리엣 가슴 만지는 사진에 열성을 기울이던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 새로운 사랑을 바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찍으신 건가요? 그렇다면 파이팅!
산 피에트로 언덕을 가기 위해 강길을 지났다. 동네 안에서 강길로 슬슬 올라오니 엽서에서 본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이런 강길에서 매일 산책하고 자전거 타는 기분은 어떨까? 비가 내리면 어떠한 분위길까, 평화로운 풍경도 매일 보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던데. 매너리즘에 빠질 정도로 바라보고 싶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베로나의 도시 광경은 감동적이었다. 이탈리아 도시 뷰 중 최고다. 바티칸, 피렌체, 로마에서 본 뷰보다 베로나의 광경이 눈 속에 가득 차 마음까지 넘치려 한다. 비슷할 수 있는 그저 그런 도시 뷰 일수 있는데 왜 베로나가 유독 마음에 들었을까.
큰 도시를 담아낼 만큼 마음의 크기가 크지 않아 그런가 보다. 산지미나뇨, 베로나 크기의 도시가 마음에 담을 수 있는 도시의 크기인 거지.
그냥 둘러보고 돌아가는 건 많이 아쉬웠다. 아른거리는 풍경 앞이 나를 붙잡는 바람에 자리를 잡고 구석구석 내려다보았다.
아름답다. 예쁘다.라는 형용사 말고 다른 단어가 뭐가 있을까도 떠올렸지만 잘 모르겠다. 그냥 있자~ 아 좋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