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골목길
기대감의 과하면 현실 여행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피렌체의 경험으로 베니스의 로망과 기대감을 낮추기로 했다. 다행히 기대보다 베니스가 좋았지만 또 별로라는 생각을 했다. 베니스 하면 곤돌라와 함께 로맨틱한 신혼여행지의 이미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없고 나의 첫 베니스의 느낌은 무섭다 였다.
역에서 광장이 가깝길래 (뱃삯도 비싸고) 슬슬 걸어갔다. 구글이 알려주는 데로. 이 길이 맞니? 라며 구글을 의심하며 걸었다. 가는 길은 대부분 좁았고 막다른 길도 많았다. 몸을 숙여 지나가야 하는 길도 있었다. 인적도 없는 골목에 낮인데도 스산하고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무섭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가끔 운치 있는 골목의 모습도 있지만.
다음날은 무라노와 부라노 섬에 다녀왔다. 주말이라 사람이 가득이었다. 비수기인데도 배 한대를 보내고 30분을 다시 기다려서 무라노가 목적지인 배를 탔다. 섬 간의 거리가 먼 것보다 배의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오래 걸린다. 50분 정도 흔들리는 배에 서있으니 걷는 것보다 다리가 더 아팠다. 이렇게까지 힘들게 가야 하나 싶었다. 섬에 내리니 생각이 바뀌었고 다리 아픔을 감수할만했다.
사실 본 섬과 비슷하게 생겼다. 비슷한 분위기라 누군가는 부라노 섬에 가야 할까 고민할 수도 있다. 되려 본 섬과 비슷한데 덜 번잡해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 사람이다. 본 섬은 조금만 걸으면 치이고 여유 있게 바다를 볼 여력이 없다랄까. 성수기엔 이 섬에도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과 배를 탔는데 다들 어디 갔을까? 조용함이 본 섬에서의 번뇌를 달래준다. 섬을 여유롭게 한 바퀴 돌고 부라노 섬으로 이동했다.
부라노 섬은 무라노 섬보다 더 작았다. 섬을 한 바퀴 도는데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형형색색 칠해놓은 집은 아기자기했다. 초등학생이 크레파스로 무지개 칠한 모양새 같다. 인위적이지만 동심이 느껴지는 섬이다. 인생샷 찍기에 바쁜 섬이고 그중에 나도 하나였지만 인생샷은 없다.
부라노 섬 끝쯤 작은 공원에 날이 개어 사람들이 일광욕을 하더라. 나도 빠질 순 없다. 같이 눕자. 이탈리아 여행 내내 풍경과 함께 본 하늘을 이 날은 누워서 바라보니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파랗네
구름이 예쁘네
얼굴 타겠네
그렇지만
이렇게 건물 없이 하늘만 바라보기는 오랜만이네
10살쯤 하늘색 하마가 그려진 티를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던 내가 떠오르는 하늘의 모양이다. 구름 보며 떠오른 추억. 그러다 또 잠이 들었다.
골목길의 무서운 느낌이 강해 베니스가 별로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여행을 끝낸 뒤 브런치를 하며 베니스를 곱씹게 됐다. 여전히 무서운 골목이 생각난다.
하지만 어느 곳을 가야 골목 옆에 물이 있을까? 아마 내가 아는 곳 중엔 베니스밖에 없지 않을까. 본 섬에서 젤라토를 먹으며 걷던 운하길, 무라노 섬에서 유리공방을 보며 산책하기, 부라노 섬에서 컬러 집과 매직아이 구름. 곱씹고 나니 베니스는 별로가 아닌 아름다운 도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