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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톢이 Jun 29. 2022

제주도 대정읍 VIBE

요양인가 여행인가

 3월에 직원 퇴사, 4월에 직원 채용, 감사 준비. 5월 시정 감사로 정신없이 몇 달을 보냈더니 몸과 정신이 삐꾸가 되었다. 똥꾸빵꾸가 된 나는 일이 끝나자마자 휴가를 선전포고 후 4박 5일 제주도로 도망치듯 떠났다.

 4박 5일 일정 중 2박은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머물렀다. 딱히 가고 싶어 간 곳은 아니다. 부리나케 내려가다 보니 사람 많은 기간에 가게 되었고 사람이 그나마 적은 동네에 머물자 해서 정한 곳이었다. 숙소는 호텔 케니 모슬포에서 머물렀는데 에어컨 필터까지 깨끗한 호텔이었고 읍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건강한 정신에서 건강한 체력이 오는데 너덜너덜한 나 때문에 도착한 당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날을 먹고 자고 산책으로만 지냈다. 도착한 날도 산책겸 모슬포항까지 나가게 되었다. 읍을 지나 도착한 모슬포항은 스산했고 배가 많았다. 버려진 밭에는 민트가 잡초처럼 자라기도 했고 뿔소라를 캐는 시기가 적힌 간판도 보여 기념품으로 뿔소라 껍데기를 챙겼다. 올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만나고 길고양이도 만나고 하루를 천천히 보냈다.

 대정읍 돌아다니다 만난 사계생활. 사계생활은 어반플레이라는 회사가 유휴공간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꾸고 소비하게 하는 로컬 브랜드를 만드는 곳이다. 지역색이 담긴 굿즈나 공간을 개발하며 제주를 담은 매거진도 발행 중이었다. 로컬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지역주민과의 합의도 있어야 하고 요즘 감성도 살려야 해서 어려운 지점이라 생각했는데 사계생활 말고도 힙한 연남장, 연남 방앗간, 캐비닛 클럽 등 꽤나 많은 로컬 브랜드를 만들어낸 저 회사 부럽다!!!

 매출이 얼마인지도 장사가 잘 되는지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지역에 일을 만들어주고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로컬 브랜드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로컬 브랜드는 환경을 생각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편이라 길냥이 보급소도 있고 친환경 제품 굿즈도 있고 일반 가게보단 다양성이 풍부하다. 하지만 지향하는 지점이 애매한 부분이 있고 위에도 썼듯 얼마 버는지도 잘 모르겠고 결국은 돈이 벌어져야 상생되는 부분이라 생각해 로컬 브랜드에 대해선 나의 지역 사람들과 더 고민하고 토론해 봐야겠다.

 현재 사계생활은 지역 농협을 리모델링해서 사용 중이라 기존 은행 모습이 살아있어 재미있는 공간이 많다. 일부 빈 공간에선 제주도에 사는 일러스트 작가 전시 중이었다. 이곳에서 고사리 모자가 기념품으로 팔았는데 간지가 철철나서 하나 샀다. 제주도 지역 잡지인 iiin(인)도 발행한다. 계절별로 4번 나오는데 벌써 34권이나 나왔다. 내용도 꽤나 재미있었다. 특히 할머니 상담소가 재미지다. 지역 청년들이 제주 할머니들에게 상담받는 이야기인데 정말 저세상 쿨함이다.


홈페이지 : 브랜드 (urbanplay.co.kr)

인스타그램: @sagyelife



 우리들의 블루스에 나온 카페. 이곳은 산방산이 보이는 온실형 요즘 스타일 카페이다. 페츄니아를 온실 천장에 대롱대롱 걸어놓았고 밖에 정원을 구성해놓았다. 커피는 물론 맛이 엄청 없다. 커피도 당연히 비싸고. 그냥 드라마에 나왔다길래 들렀는데 커피가 쓰레기(강조)지만 분위기는 좋았다. 문제는 이곳에서 내가 가방을 놓고 왔는데 숙소 들어갈 때까지 몰랐다는 점. 가방에 벗어놓은 양말이랑... 쓰레기만 가득이었지만 가방을 놓고 나온 걸 까먹은 정신에 내가 나에게 놀랐다. 물건 잘 안 흘리는데 물건을 놓고 왔다는 건 정신이 맛탱이 갔다는 건데 정말 난 휴식이 간절했던 상황이었나 보다. 다행히 내 가방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아 밤에 잘 찾아왔다. 휴

 대정읍엔 멋진 로컬 브랜드도 있고 도시재생사업도 하는 동네이다. 뭔가 힙해지려고 드릉드릉 한 느낌이 났다. 태양광 시스템이 있다가도 다방이 나오고 요즘 느낌에 정갈한 가게가 있다가도 다방이 나오고 예쁜 카페가 나오다가 다방이 나오고 진짜 다방 투성이었다. 대정읍에 무슨 일이지? 다방이 50개 이상이다. 밥 먹으며 식당 아주머니께 왜 이 동네는 다방이 많은가 물어보았다. 대정읍은 모슬포항이 있어 생선도 바로 팔고 또 마늘이 많이 나는 동네라 농산물도 파는 동네라고 한다. 물건은 주로 현금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현금이 도는 동네란다. 나름 돈이 많은 동네? 그래서 그 현금을 바로 다방(유흥업소)에 쓰면서 노는 거지. 낮에는 영업 안 하다가 노을 질 때쯤 되면 수많은 다방이 문을 연다.   

 그리고 대정읍은 월정리 같은 곳에 비해 동네 주민들이 사는 곳인지 저렇게 고무대야에 식물이 많았다. 비싼 소철이 고무대야에 꿋꿋하게 자라는 모습이 제주스럽다. 돌마다 담벼락마다 식물을 키워내는 소소함이 있는 동네였다. 나도 동네 주민처럼 친구와 복권을 사러 갔는데 버려진 복권으로 종이 아트를 하시는 할머니에게 감동. 할머니의 꼼꼼한 손재주로 만든 복권새. 너무 잘 만드신다고 예쁘다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도 좋아하셨고 계속 버려진 복권으로 새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선물하신다고 한다.

 동네엔 편의시설인 편의점, 약국, 병원, 빨래방, 식당이 있어 한달살이 하는 여행객들도 많다고 한다. 내가 돌아다닐 땐 만나지 못했는데 밥시간이 되니 혼자 살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보이던 게 이런 이유였나 보다. 이틀의 짧은 대정읍 여행을 마치고 다음 여행지인 성산읍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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