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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톢이 Jan 03. 2023

잘리는 것과 자진퇴사는 매우 다르다

 다니던 회사에서 12월 31일 자로 계약종료되었다. 시 민간위탁기관이었는데 직접운영 명목으로 11월 11일 자 공문으로 전 직원 해고통보 했다. 행정일은 회계연도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12월 말까지 모든 것을 끝내야 해서 급작스러웠다.

 전에 다니던 반도체회사는 자진퇴사였다. 4년 정도 다녔고 정신적 쉼을 위한 퇴사였다. 사직서를 냈을 때 도비가 자유를 얻은 듯 기분이 평안했다. 일을 쉬면서 못 가본 해외여행 계획을 짜고 쉬는 동안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생활비 계산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이번에 갑자기 잘리는 바람에 정신이 아찔했다. 매달 고정비를 지출이 있고 버틸 돈 따위 모을 시간도 주지 않아 생존문제가 생겼다. 심지어 일 구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자진퇴사 때 직접인계는 하지 않았다. 당시 상사가 자료만 정리해서 남겨두라했다. 원래 회계일이 자료만 잘 정리해두면 다음 사람은 흐름 파악하고 매뉴얼도 업체별, 프로그램별로 있어서 경력이 있으면 금방 업무가 가능하다. 물론 잘 정리해뒀을 경우에...

 공무원에게 하는 인수인계는 최악이었다.  나는 저 안에서 회계일을 했었다. 정확히는 급여, 예산 등 돈과 관련된 일을 해왔다. 노무나 회계 이슈는 나의 몫이지만 나도 퇴사를 당하기에 퇴사 부분은 행정공무원에게 넘겼다. 미리 정산도 생각했지만 전문가에게 상담한 결과 십원단위 까지 맞춰야 하는 행정 쪽은 미리 정산 시 금액이 틀어지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답변이었다.

충분히 찾아볼 수 있게 비밀번호 및 모든 자료를 정리해서 컴퓨터에 남겨두었다. 신고해야 할 리스트와 순서까지 남겨두었다. 그런데 인계를 받아야 하는 담당공무원이 소득세가 뭔지도 모르는 똥멍청이이라 정산방법을 전부를 매뉴얼로 남겨달라며 요구했다. 기관별로 나보다 훌륭한 매뉴얼들이 있다고 설명하고 무시했다. 업무 마무리가 안돼서 12월 마지막주까지 야근하고 일하는데 그 와중에 눈치 없이 책상 뺏어가서 사실상 제대로 인계할 시간도 없었다. 해준다 한들 알아먹을 리도 없다.

 일을 잘해도 열심히 해도 잘릴 수 있다. 한국은 정치적 문제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는 나라다. 토시하나 민원 안 걸리려고 더럽고 치사하게 나온다. 그리고 행정 쪽 일에 필요한 일엔 거머리처럼 질질 질척거린다. 행정공무원들이 본인도 피해자라고 말한다. 너희는 차라리 속 시원하게 잘렸지만 이 상황에서도 일을 해야 하는 공무원들 본인을 이해해 달라며 이것저것 개같이 말도 안 되는 것들은 부탁했을 때 그들의 팔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더럽고 추운 과정 속에서 지지하고 걱정해주는 친구들과 동료들이 많았다. 그동안 애썼다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까 액땜이라고 생각하라고 앞으로 나아가라고. 그래도 세상은 앞으로 나아간다고 위로받았다. 이 위로를 잘 기억해서 누군가가 부당하거나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연대하고 지지할 수 있는 기운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2023년이 왔을 때 거지 같은 2022년이 지나가서 너무 기뻤다. 잘 버틸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지난겨울 많이 힘들었나 보다. 해고스트레스는 꽤나 충격이 크다. 통잠을 자는 편인데 요즘은 자다가 화병 때문에 자주 깬다. 봄에는 내가 심어놓은 꽃들이 겨울을 버티고 필 거다. 추운 날은 버티다 보면 지나가니까. 나란 사람 나아질 거라고 믿고 존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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