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은 항상 어떤 날씨에도 조깅한다. 나도 그런 외국에서 조깅하는 갬성을 느껴보고 싶어 9시부터 공복에 거리를 나섰다.
늦은 아침인데도 출근하는 방콕 시민이 많았다. 대부분 상가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지만 노점은 아침밥을 파느라 바빴다. 더불어 차소리와 클랙슨과 매연이 가득했다. 아...... 잘못 나왔음을 직감했다.
원래 계획은 호텔 로비에서 타이죽을 아침으로 먹을 생각이었는데 거리의 꽃을 보며 걷다 보니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 더 멀어졌다. 결국은 아침부터 34도를 기록하는 방콕 거리에서 일사병으로 쓰러지고 싶지 않아 근처에 아점 먹을 가게를 찾았다.
아점은 비건 레스토랑으로 정했다!
부자동네라 거리가 깨끗하고 꽃도 많지만 걷는 사람은 청소부, 경비 아저씨, 가게 알바생 그리고 나뿐이었다. 가게에 땀을 뻘뻘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야채 롤과 차이 라테를 시키며 더위를 식혔다. 그리고 더운데 따뜻한 거 시켰다. 주문한 롤은 350바트(한화 12,000원)로 비싸지만 크기가 커서 반밖게 못 먹었다. 초록 풀떼기가 질긴데 김치 맛이 살짝 나서 으깬 두부랑 맛이 어울렸다. 토마토, 버섯, 양파가 있고 살짝 매운 소스에 튀는 맛없이 밸런스가 좋았다. (약간 두부김치 맛) 한국 가서 만들어 먹고 싶을 정도인데 초록 채소 정체를 모르겠다. 가게엔 나처럼(?) 조깅하다 들어온 서양인들이 브런치 먹으러 꽤 들어왔다. 내 앞에 앉은 외국인은 모르는 척 나랑 똑같은 메뉴를 먹었다. 처음엔 롤을 시켜서 그 큰 걸 전부 먹더니 후식으로 따뜻한 차이 라테까지 따라 시켰다. 나한테 그냥 메뉴 물어보지. 키키.
먹고 나니 몸이 한층 더 쳐졌다. 걷기는 무리라 충격과 공포의 창문 없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가는 길에 구글이 마사지 장인이 있다고 해서 마사지 가게도 들러 풋 마사지도 받았다. 근데 장인 답지 못하게 ㅂㄹ...
휴식을 취하고 오후 늦게 미리 찾아놓은 갬성식물카페를 가자며 어슬렁 나왔다. 1.6km 거리라 걸어갈만해서 가는데 가도 가도 가게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카페가 망했잖아!
나는 그렇게 길을 잃고 멍해졌다. 아무도 걷지 않는 습도 가득한 거리를 목적지를 잃은 채 걸었다. 택시라도 탈 걸, 카페 망한 것에 충격받아 생각 없이 걸었다. 그러다 정신이 들어오던 길에 새 모양이 그려진 카페에서 타이 커피를 마시며 정신을 챙겼다.
그래도 방황한 덕에 망고를 하나에 팔백 원에 살 수 있었다. 말도 안 통하는 방콕 할머니가 망고도 깎아줬다. 낮에 길 잃으면서 발견한 세계 푸드 광장에서 저녁도 먹었다. 이곳은 술 마시기 좋은 분위기라 외국인과 제3성의 언니들이 많았다. 나는 술 대신 팟타이와 생수를 먹었다.
오랜만에 혼영이라 감을 잃어 여기저기 다녔지만 더운 도시여행에선 갈 곳을 정하고 돌아다녀야 땀을 덜 흘리겠구나, 물을 잘 챙겨 먹어야겠구나, 뻔한 것들이 다시 떠올리며 내일은 더 잘 챙겨 먹고 덜 걷기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