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여행 ver.2
호센인 - 산젠인 - 가츠규 - 이노다커피 - 카오산게스트하우스
어젠 후리스 점퍼를 하나 입어도 더운 날씨 더니 오늘은 춥다. 바람도 매섭고 배앓이를 할 정도로 급격히 추워졌다. 패딩을 입어도 추웠다. 오하라를 가기로 한 날. 하지만 길을 아는 현지인은 없었다. 정보라곤 네이버 블로그에서 얻은 17번 버스. 버스정류장은 A~F까지 있는데 어느 영어 정류장 17번 버스인가? 우리는 추운 가와라마치 거리에서 헤매었다. 장과 정신을 잃어갈 때쯤 나보다 체력이 더 저질인 수린 언니의 집념으로 오하라를 갈 수 있었고 교토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다.
1시간가량 달려 오하라를 가기 때문에 멀미 염려를 했지만 버스 안의 가을 풍경이 멀미를 잊게 해줬다.
오하라의 날씨는 요상했다. 왕무지개를 보았고, 비가 내린다. 그리고 또 맑아짐. 도깨비와 저승사자를 소환하고 싶은 날씨. 저는 아메온나입니다. 저승사자님 도깨비님 보고 싶어요♥
교토 사찰에 얼굴이 미세하게 박힌 조그마한 돌 조각상에 옷을 입히고 차를 대접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너무 귀엽다.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빨간 단풍, 장아찌, 노인들을 만났다. 평균 연령을 낮춰줄 정도로 노인분들이 오하라에 많이 오셨다. 일본 노인 핫플레이스에 왔군.
오하라에서 호센인에 먼저 방문했다. 호센인의 800년 된 소나무를 보고 싶었거든. 생명이 800년을 산다는 것이 신기했고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세월을 느끼고 싶었다.
호센인 입구에도 깔끔하게 옷 입은 미니미 신들이 귤을 드시며 나를 맞이해주었다. 이어진 빨간 단풍이 연못에 떠다니는 풍경. 이런 많은 단풍은 처음이었다. 물이 흐르는 연못을 따라가니 단풍이 빨갛게 얼룩져있다. 빨간 물 안에서 잉어는 수영을 한다. 그것을 바라보던 나는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그저 따뜻하고 싶을 뿐.
평온함과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색을 미러리스 카메라도 아이폰7도 담기지 못했다. 발 같은 손을 탓하고 눈과 마음으로만 담아가자.
아름다운 정원에서 넋을 놓은 뒤 위엄 넘치는 소나무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지만 (마음대로 소나무를 할아버지라 하기) 장엄했다. 그리고 영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낙낙~ 할아버지 제 말 들리세요? 도깨비 혹은 저승사자와 사귀고 싶어요. (나는 도깨비 드라마로 미친 거 같다)
호센인에서 영적인 대화에 실패한 뒤 산젠인에 들렀다. 꽤 큰 절이였다. 빈 나무들이 많은 것 보니 벚꽃이 피면 예쁠 사찰이었다. 바닥의 초록이들은 잔디가 아니라 전부 이끼였다. 가까이서 보면 좀 징그럽다. 사찰 주위엔 브로콜리처럼 생긴 키가 굉장히 크고 마른나무들이 빼곡하게 있었다.
산젠인에는 동자승 같은 조각상이 숨어있는데 숨바꼭질인가? 내가 너희들을 찾아내었다. 니들 너무나 귀엽구나. 여유롭고 행복한 표정으로 숨어있구나>_< 특히 머리 크고 꽃받침 한 동자승은 무엇 때문에 행복한지 궁금하다. 방금 초콜릿을 먹었느냐? >_<
오하라에서 가와라마치로 돌아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언니에게 규가츠가 꼭 먹고 싶다 했더니 폰토초거리에 유명한 규가츠 체인점이 있다며 찾아갔다. 폰토초거리는 카모강 안쪽의 작은 선술집 골목이다.
가게에서 메뉴를 보고 있는데 '3번이 맛있어요' 라며 잘생긴 일본인 주방장이 한국말을 하더라고. 잘못 들은 줄 알았더니 한국인 직원이란다. 훈남 직원이 추천해준 무를 함께 간 레어에 가까운 규가츠를 먹었다. 언니는 생계란에 미디엄의 규가츠를 골랐다. 육회를 좋아하는 나로선 무 + 파 + 레어 규가츠의 풍미와 식감이 좋았다. 소고기가 고소하게 씹히고 느끼함은 무와 파가 잡아주어 조화를 이루는 또 먹고 싶은 맛이랄까.
후식으로 이노다커피에 갔다. 가게는 80년대에 선 봐야 할 것 같은 경양식집 느낌.
조금 작은 잔에 진하게 로스팅된 커피와 스트레이트 잔의 얼음물과 크림을 준다. 원래 블랙을 좋아하지만 커피가 센 느낌이라 각설탕 두 개 + 물 + 크림을 때려 넣었다. 다행히 믹스커피맛은 안 난다. 커피맛도 살고 맛도 부드럽더라고 캬~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둘째 날 일정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