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친구들과 함께 간 무주 산골영화제
회사에서 일은 안 하고 무주산골영화제 티케팅 했던 게 생각난다. 인기가 그렇게 많은 영화제인 줄도 몰랐고, 완전 피케팅이었다. 할머니 죽기 전 백만장자가 되는 법 예매에 겨우 성공했다. 영화값은 겨우 6천 원이었다.
우리의 산골영화제 가이드인 지현이 영화 시간표도 보내주고 사야 할 것도 정리해 주고 무대에 오는 밴드들도 알려주고 숙소도 예약해 주고 알아서 다 해주었다. 그래서 정말 뇌 빼고, 아무 생각 없이 무주 산골영화제로 출발했다.
우린 현충일 새벽에 무주에 내려가기로 했다. 수민과 정아가 한 차를 타고, 나는 동네 주민인 김가지와 함께 차를 끌고 출발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같은 안산에서 같은 시간에 출발을 했는데 수민팀은 3시간 만에 무주에 도착했고 우리는 5시간이 걸렸다. 안산에서 막히고, 화성에서도 막혔다. 우리 차가 진입하기만 하면 어김없이 길이 막혔다.
김가지와 나는 무주산골영화제에 가기도 전에 5시간 동안 이어진 정체에 이미 지쳐버렸고 무주가 지긋지긋 해졌다. 도대체 사람들은 몇 시에 도착한 건지, 이미 엄청난 인파가 피크닉 자리를 선점한 채 놀고 있었다.
계단식으로 된 자리에 돗자리를 겨우 깔았다. 내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고 볕이 꽤 뜨거워 우리는 메인무대를 나와 근처 잔디밭에 누워 뒹굴거렸다.
새벽부터 무주까지 내려오느라 이미 지쳐있었고, 낮기온도 너무 뜨거워 영화를 볼 기력이 없었다. 영화제는 뒷전이었고 우리는 피크닉을 즐겼다.
이곳에서 파는 음식은 꽤 맛있었다. 줄이 길었지만 이것저것 사 먹었다. 게다가 제로웨이스트 차원으로 음식물 수거와 용기수거를 해줘서 좋았다. 쓰레기 많은 축제에 반감이 있었는데 이런 축제라면 환영이다.
저녁까지 피크닉을 즐기고 덕유산에 가기 전, 숙소에 먼저 들렀다. 숙소는 영화제 장소에서 차로 40분을 더 가야 했다. 그리고 도착한 숙소는… 너무 좁았다. 분명 넓다고 했는데, 현실은 붙어서 자야 하는 방이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젊은이에게 맡겼다. 낡고 지친 언니들은 영화제의 핫함을 전혀 모른 채 모든 걸 맡기고 내려왔고, 그 결과 길은 막혔고 밥은 제대로 못 먹었고 방은 작았고 영화 티켓팅도 시원치 않았다.
숙소에서 적당히 뒹굴거리며 빨리 안산에 올라갈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여기까지 왔는데 영화 하나라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나왔다.
결국 우리는 덕유산 야외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것도 덕유산까지 올라가는 버스를 타야 한다는 점이었다. 줄은 엄청나게 길었고, 스텝들은 대부분 동네 주민이나 학생들이었다. 윤 정부에서 이 핫한 영화제의 예산을 줄이면서 버스 운행도 줄었다고 했다. 그래서 어디든 줄이 길었고, 동네 주민들이 총 출동해 일하고 있었던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예산과는 반대로, 무주산골영화제는 역대급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 해라고 했다.
주민들은 기뻐하면서도, 적은 예산으로 버텨야 한다며 힘 빠진 하소연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30여 분을 더 기다린 끝에, 우리는 덕유산 야외상영장에 도착했다.
너무 깜깜해서 사진은 못 찍었지만, 지금도 생각날 만큼 운치가 좋은 곳이었다. 산속의 스산함과 고요함이 오히려 영화를 더 집중하게 만들었다. 낮에는 그렇게 뜨겁더니 밤에는 롱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추웠다. 나는 으슬으슬한 몸으로 졸다 깨다 하며 '붉은거북'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았다. 무인도에 사는 남자가 붉은거북과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바다를 향해 떠나는 한 사람의 생애를 은유처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과학적으로 거북이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느니, 왜 거북이가 여자로 나오느니 하며 투덜거리면서 봤는데도, 이상하게 그들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다음 날, 나는 피케팅에 성공했던 영화를 취소하고 김가지와 빠르게 안산으로 올라오기로 했다. 아침에 차도 마시며 늦장을 부렸더니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올라오는 길에 ‘나무와 그릇’이라는 카페에도 들렀다. 이곳은 완전 무주의 핫플레이스였다. 주인의 솜씨가 좋은지 음료도 맛있고, 시골집을 아기자기하게 정말 잘 꾸며 두셨다.
그제야 좋은 날씨와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못나서, 못난 마음으로 내려오는 길에 지쳐버려 무주가 별로라고 했을 뿐이다. 하지만 무주는 죄가 없다. 아주 좋은 곳이다. 쏴리 무주! 다음엔 여유로운 마음으로 놀러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