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톢이 Jul 02. 2017

제주 웨딩촬영 2

헬퍼의 길

눈을 일찍 떠야 했다. 웨딩촬영은 오전 10시. 메이크업은 오전 7시. 다들 새벽 5시부터 일어나 부리나케 준비 중이다. 게으름 장인인 난 가장 늦게 일어나 머리만 감고 언니들이 차려놓은 빵을 집어 먹고 모른 척 밖으로 나왔다.

카페 조천리 2층에선 웨딩 헤어, 메이크업을 겸업으로 한다. 언니와 김농부씨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는 동안 카페 인테리어를 구경하고 책도 한 권 읽었다. 조천리 앞바다를 바라보고 고요한 제주 햇살을 맞으며 스트레칭도 해본다. 잔깐이지만 그 시간과 공간은 전부 내 거였다.

남 부러워서 꼬장부리는 나

예뻐진 언니와 친한 척 친하게 인증사진을 찍고 김녕 성세기 해변으로 갔다. 머리가 망가져 가장 마지막에 해변 촬영을 하는데 다행히 오늘 바람이 불지 않아 오전부터 촬영을 할 수 있단다. 어제처럼 구름도 없고 뜨거운 날이었다. 

오랜만에 온 김녕 성세기 해변은 여전히 맑고 미역이 많이 생겼다. 난 헬퍼 본분을 잊고 바다에 홀려 이리저리 미역처럼 떠다녔다. 

사진작가라는 직업이 쉽지 않음을 함께 다니면서 알았다. 그늘 없는 햇빛 속에 반나절 혹은 하루 종일 서있는 모델도 대단하고,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사진도 찍고 소품도 챙기고 운전도 하고 돌아가선 몇천 장 사진을 고르고 보정까지. 그냥 고급 감성 노동자시다. 

아부오름 뒤뜰엔 수국이 가득이었다. 아직 개방을 안 한 정원인데 정원사 아저씨가 수국 관리를 자랑하면서 구경 오라며 나를 안내했다. 근데 정말 이쁘다. 처음 보는 수국 형태였다. 갤럭시 S8에 빅스비가 산수국이라고 알려줬다. 나는 산수국을 보며 구슬아이스크림이 생각났고 수린 언니는 브로콜리라고 선미언니는 안개꽃이라 했다. 각자 취향이 드러난다. 그런 의미로다가 바나나맛 구슬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마지막 촬영지인 사려니숲에 오니 너도나도 웨딩촬영 중이었다. 숲에 가지런한 나무 때문에 헬퍼에 본문을 잊고 또!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각질이 벗겨지는 나무는 오하라 신사에서 본 브로콜리 나무랑 비슷했다. 그리고 빼곡한 나무를 보며 고어 영화를 떠올렸다.

헉헉헉헉헉 <- 사람이 도망가는 소리

착착착착착 <- 살인마가 뛰어가는 소리

캬!!! <- 죽는소리

숲 살해장면이 생각난다. 공기 맑고 조용한 숲에서 산책하는 척 머릿속엔 저딴 생각을 하곤 한다. 

가장 수고가 많았던 선미언니가 모두를 위해 어등포 해녀촌에서 우럭 정식과 한치물회를 사 주었다. 주먹으로 뿌셔뿌셔먹는 우럭과 튀김 같은 아삭한 우럭 비닐이 맥주 안주로 굿. 연해서 호로록 잘 넘어가는 한치물회도 맛이 좋았다. 

발목 아픔을 감수한 수린언니는 정신력이 대단했다. 그 와중 짐도 들고 사진도 찍는 진정한 헬퍼였다. 그저 난... 그 사이에 있었을 뿐... 허접한 헬퍼는 땡볕에 있던 게 힘들었던지 과식 후 누구보다 빠르게 잠이 들었다. 

빨꼬락 모래자국

낮잠 효과로 머리는 개운하고 속은 더부룩했다. 빌렸던 턱시도를 반납할 겸 제주시 근처 바다로 나갔다.

이호테우 해변에 상징인 쌍말 등대가 보인다. 해가 지는 시간이라 차가움이 감돌았지만 건강한 아이들은 물가에서 뛰어논다. 반면 우리는 옷을 훔쳐 입고 모래를 밟으며 호박맛이 나는 한라봉 주스와 한라봉 맛이 나는 당근주스????를 마시기도 했다.

마지막 목적지는 제주에 유일한 몽돌이 있는 알작지 해변. 공사 중이라 더러운 바다와 비린내만 가득했다. 그래도 선셋 포인트 명성이 남아있던지 멀리서 보이는 노을은 아름다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 기억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