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이 돈이면 나는야 10억 자산가
‘예전 평균 학력이 낮았던 시절엔 엄청나게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만든 그 어려운 문장의 뜻을 헤아리지 못해 그저 깊고 높은 뜻이 있겠거니 울며 겨자 먹기로 그 권위를 받아들였지만, 이제 발골하듯 판결문을 세세하게 분석하고 해석해 버리니 판결문 공개하는 게 불편하고 쪽팔리나 보다.’
손정우 사건 등 근래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전남진 님이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AI 판사 도입 시급]
‘다 털렸다’ 우리만의 고급 정보도 스킬도 모두 싹 털려버렸다. 고도화한 온라인 마케팅 환경은 크리들에게 멍 때림과 몰입의 시간을 빼앗아 그 자리에 무수한 삽질을 꽂아 넣는 중이다.
정신없이 처내다 보면 인풋 없는 크리 저장소는 ‘바닥을 뚫고 저 지하까지’ 내닫는다.
‘어떻게 살 것인가’
편집장인 광고주, 따라가기 벅찬 MCN, 쏟아지는 짤과 밈의 세계에서 ‘아는 척 생존 매뉴얼’을 만들어야 할 때다. 카피라이터는 천재적인 댓글러들을, 디자이너는 짤방 마스터들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모여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현장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나도 생성 소멸을 반복하며 존버 끝에 베오베가 된 양질의 콘텐츠를 갈무리해 모아둔다. 간혹 운이 좋아 베스트 게시물을 생산하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그게 뭐라고 ㅜㅡ
짤방을 수집한지도 10년이 넘었다. 컴퓨터 한켠 최신 짤방 폴더를 마련해두고 매일 업데이트한다. 유머사이트 최신 글들을 섭렵하는 건 기본이다. 저세상 위트 번뜩이는 묘한 댓글들은 베스트 폴더에 별도 저장한다.
예전엔 책 속에 길이 있었지만, 요즘은 짤 속에 크리가 있다. 인문학으로 광고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책상을 장식?해온 책들도 치운 지 오래다. 이 시점에 회사에서 정독, 탐독을 감행할 수 있는 용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3년 전 모 제품 영상 광고에 도입부에 넣었던 카피도 실은 유명 댓글의 변형이었다.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이 요거트 CM 메인 아이디어는 ‘함정카드’ ‘밈’이다.
사례도 부지기수. gs25 광고로 재탄생한 신봉선 짤, 모 제약회사 광고가 된 김성모 작가의 짤, 정관장 광고가 된 이누야샤 짤까지...
사이버 낭인이 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아이디어다. 그러나 크리들의 온라인 콘텐츠 이용시간은 오히려 점점 줄고 있다. 어쩌면 일반 소비자보다 적을 수도 있겠다. 위기다.
광고주와 소비자보다 트렌드에 뒤처지는 현상도 종종 벌어진다. 정기 리포트나 대충 훑고 너튜브 담당자의 트렌드 강좌를 빙자한 ‘상품 소개’를 들으며 넋 놓고 있다간 ‘그것도 모르세요?’라는 핀잔을 나처럼 매주 듣게 될지 모른다.
특히 온라인 크리들은 그 정도가 심하다. 유머사이트를 돌아다니기는커녕 매일 쏟아지는 크고 작은 콘텐츠 제작에 피가 마를 지경이다. 설사 여유가 생겨도 너튜브 창을 열고 유머 사이트를 보는 것을 일이라 여기지 않는 것도 문제다. 그래서 모니터엔 의미 없는 파워포인트 파일이 방어기제로 둥둥 떠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크리는 어떻게든 세상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아니 가능하다면 반걸음이라도 앞서가야 한다. 이 업의 숙명이다. 광고인만의 지적 허영에 룰루랄라~했던 황금기는 오래전에 끝났다. 평범한 이들이 비범해진 지금, 자기만의 방법으로 각자도생해야 한다. 필사적으로 짬을 내어 컴퓨터 폴더와 스마트폰에 꽉꽉 채워 넣어야 광고인 커트라인 ‘트능 5레벨’ 이상을 달성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 나는 트위터를 택했다.
트위터 슬로건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이곳에서 날씨를 보고, 뉴스를 읽고, 지진을 누구보다 빨리 접하며, 가짜 뉴스를 스크리닝해 고퀄의 최신 정보를 스크랩한다. 또 각계각층의 생각을 140자로 압축하여 자기화할 수 있으며 여론과 시장의 맥을 읽는데도 도움이 된다. 서두에서 만난 전남진 님처럼 존경해 마지않는 3천여 팔로워 분들은 큰 재산이다. 필력 배양은 덤, 그리고 저절로 겸손해진다.
검색 기능 활용도 쏠쏠하다. ‘브랜드’와 ‘이슈’를 검색하면 트윗이 ‘짹짹짹’ 떨어지는데 실제로 온라인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많다.
우리 일은 생각의 접목이다. 쌓아둔 게 있어야 말문이 트이고 의견이 어우러져 아이디어가 익는다. 생각하기보다 지시에 익숙해지거나 시대를 읽기보다 눈치만 빨라지는 걸 경계하자. 크리의 생명은 그 길로 끝이다.
온오프가 따로 없고 창작자와 소비자가 뒤섞인 지금, 당신은 어떤 방식으로 생존을 도모하는가. 찾아서 모으고, 매일 공부하며, 어제보다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려는 크리들이 더 오래오래 일하고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기를 소망한다.
뽀에버 영! 김경석 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