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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통 Nov 13. 2020

#01 책 출판에 앞서서

책은 왜 쓰는가?


   어제 깁스를 풀었다. 5주 만에. 하지만 깁스를 푼다는 기쁨도 잠시, 의사 선생님은 한마디를 던지고 톱으로 깁스를 자르신 후 사라지셨다. “앞으로 더 힘들 겁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운전을 하고 집에 온 후, 차에서 내리려는데 다리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너무 아파서. 같은 자세로는 괜찮지만, 조금만 다리의 움직임을 바꾸려 할라치면 극심한 고통이 수반되고 제대로 움직여지질 않는다. 그제야 의사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 느끼는 상황에 그 녀석(나의 공황장애)은 언제나 당황해한다. 그 녀석은 새로운 환경을 극도로 싫어하니까. 아니 너무 좋아서 난리 치는 걸 수도 있다. 아무튼, 밤새도록 그 녀석은 나를 괴롭혔다. 밤새도록 꿈 속에서 청소를 해도 끝없이 청소해야 했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계속 짓누르며 또 당황한채로 밤새 잠을 설쳤다. 짓눌러진 압박감은 고스란히 신체의 통증으로 전달되었다. 강렬한 두통으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의 친구인 타이레놀을 먹으며 진정을 시켰다.

온몸에서 한기가 느껴지고, 귀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달그락 소리가 나는 게 감기가 오려는 건지, 공장이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건지 헷갈리지만 대부분 약을 먹으면 진정이 되긴 하다. 그러면 이게 신체의 문제인지 정신의 문제인지 결국엔 알 수가 있긴 하다.


청소는 쌓여있는 설거지 때문인지, 쌓여있는 빨래들을 개야 한다는 하는 무의식의 상념인지 모르겠다.


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올봄에 써 온 낯부끄러운 작품들 두 개를 출판해보려고 한다. 예전에는 출판사와 컨택해서 여행기를 출간한 적이 있긴 하다. 하지만, 교정, 교열도 봐주시긴 하지만 내가 한 번 더 봐야 했었고, 디자인은 만들어주시긴 했지만 이번 책은 많은 디자인도 필요치 않아,할 일도 없으니 1인 출판에 도전해보려고 하다가 그냥 출판사도 만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큰 차이는 없지만, 그래도 출판사에서 출간하면 서지 정보라도 입력되니까.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쓸 예정이라 (아이디어가 넘쳐흘러서), 어차피 계속 출판할 예정이면 출판사가 있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출판 작업에 앞서, 내가 왜 글을 쓰게 되었는지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서 그 궤적을 돌이켜 보기로 했다.


어릴 때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4살 때 영화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따라 극장에 처음 갔다. 그때 봤던 게 플라시도 도밍고 주연의 오페라 영화였던 것 같다. 몇 년 전까지 제목이 기억났는데 이젠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 기억났다. ‘오델로!’ 그렇게 난 극장의 신비로움에 빠졌다. 그리고 혼자,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을 티브이 앞에서 매주 빠지지 않고 봤다. 정말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게 또 있나 싶을 정도였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는 신문광고에 나온 영화 광고들을 오려가며 간직했다. 이 영화들을 보러 가고 싶다 등. 그러다가 초등학교 몇 살인지 모르겠는데 꽤 어린 나이인 듯싶은데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아빠는 출장 중’을 봤다. 저학년인 애가 유고의 정치적 상황을 이해할리 만무하지만, 내 또래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아빠에 대해 그리워한다는 감정이 왜 그리 깊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나에게도 닥칠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약간의 알 수 없는 예감이 겹쳐졌던 탓일까! 이 영화에 대한 감상문을 원고지에 써서 학교에 제출한 적도 있다. 그래서 내가 글짓기 상을 탔는지 안 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뭐 그렇게 영화는 일상이 되었다. 영화를 보며 그 영화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미술 공부를 했고, 철학 공부를 했고, 언어학, 문화 인류학 등 등 나의 관심사도 자연스럽게 다방면으로 넓혀졌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깊게 그 분야에 대해 공부했다는 건 아니고 그냥 말 그대로 책을 펼쳐보고 알아가는 정도이긴 하지만.


그러다가 고등학교 때 마티유 카소비츠가 <증오>라는 영화로 깐느에서 감독상을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첫 작품이다. 그의 나이는 23세인지 24세인지 그 무렵. 그래서 나도 목표를 카소비츠로 잡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어처구니 없는 망상이었지만.  나도 23세나 24세에는 세상에 뒤흔들 작품을 내놔야겠다 생각했다. 남들은 어느 대학, 어느 과가 목표일 때 나는 카소비츠가 내 생애 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을 등한시하고 판타지 세계에 빠져서 지냈던 나는 자신만만해했던 수능을 처참히 망쳤다. 그래서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야말로 멘털붕괴에 빠졌다. 다시 재수를 해야 하는 건지, 성적에 맞춰 대학에 일단 들어가 보고 반수를 해야 하는 건지, 그 무엇 하나 선택할 수 없는 나 자신에 실망했다. 엄마 보고는 일단 문제집과 교재들은 버리지 말라고 했다.

무엇하나 결정할 수 없으니까. 그러나 시간은 자연스럽게 나를 대학의 문턱에 들이밀게 되었다.


그러다 여자 저차 해서 PC 통신 영화 만들기 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다. (PC 통신이라고 하면 정말 다들 옛날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써야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건, 그저 트뤼포가 말한 영화광의 마지막 단계를 밟고 싶다는 열망 정도였나 보다. 할 이야기도 없고, 보여줄 이야기도 없고, 쓸 이야기도 없으니 난 더 이상 영화감독이 아니다.


무엇을 세상에 던져야 할지 조차 결정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영화감독이냐. 내 인생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끌려다닌 주제에. 이런 생각들이 물밀듯이 펼쳐진 가운데, 한참 붐이었던 여러 영화제에 스태프로 참여한 친구들의 푸념을 들었다. 주로 성차별, 성추행,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민낯 이런 것들이었다. 이런 모든 상황들과 조건들이 맞물러 져 나는 영화에 대한 꿈을 접고 동호회도 접었다.


그리고 잊고 지냈다. 그러다 직장생활에 지칠 때쯤이면 한 번씩 강렬하게 ‘나는 왜 이야기를 못 쓸까?’ 하는 자책감에 빠져들었다. 왜 나는 할 이야기가 없을까? 나는 왜 아이디어가 없을까? 나는 왜 쓰기를 못할까? 등등


그렇게 또 잊고 지냈다. 또 세월이 흘렀다. 이젠 글 쓰는 게 뭔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스티븐 킹의 글쓰기 에세이집을 샀다. 그리고 정독을 했다. 아! 대충 글쓰기에 대한 감이 왔다면 거짓말이고, 그의 글쓰기 태도에 대해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는 스티븐 킹의 소설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쓰기 여정은 정말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갑자기 불어넣어줬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다. 나의 스트레스는 어느새 감당 못할 정도로 커버려서 내 신체 안에 가둬두기엔 너무나 커져버렸다. 그래서 그 녀석은 그렇게 불쑥 튀어나왔다. 의학명은 ‘공황장애’.

난 그렇게 내가 선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 사이에 자연스럽게 선택되었다. 쉬는 사람으로. 

그렇게 쉬다 보니 시간이 많아졌다. 시간이 많아지니 다시 영화도 보고 책도 이것저것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게 되었다. 읽는 동안 버지니아 울프가 나에게 ‘왜 글을 쓰지 않냐고’ 호통 치는 것 같았다. 하물며 꿈도 꾸었다. 꿈속에서 난 울프님에게 ‘알겠다고, 글을 쓰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러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러다가 많이 그리워했던 페도르 알모도바르의 <페인 앤 글로리>를 보았다. 영화 자체는 모든 면에서 훌륭하였다. 주인공(안토니오 반데라스 역) 이 예전에는 잘 나가던 감독이었지만 어느 순간 일을 하는데 자신감이 떨어진 상태로 나온다. 그러다가 일련의 사건 등을 거치면서 다시 시나리오를 쓰고 감독으로 컴백하는 순간, ‘아! 드디어 나도 써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쉬지 않고 끼니도 대충 때우고, 잠도 대충대충 자면서 2주 만에 60페이지의 소설을 완성했다. 그리고 몇 주 뒤 또 짧은 소설을 완성했다. 그건 짧아서 40페이지 정도 된다. 그리고 아이디어는 자꾸 떠올라서 컴퓨터 바탕화면에 ‘소설’ 폴더를 만들어서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그때그때 적고 있다. 마치 쌓였던 이십여 년간의 묵혀두었던 체증을 풀기라도 하듯이. 아직도 써야 할 글들이 5개 이상이다.


다시 출판으로 돌아와서, 그래서 출판을 하기로 결심했다. 무슨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려는 욕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의 내적인 창작욕을 배출하는 셈이고, 그 배출로 태어난 생산물들을 세상에 선보이는 게 목표인 셈이다. 그리고 연말에 지인들에게 훈훈하게 선물을 할 수도 있고.


앞으로의 과정은 이러하다. 과연 연말들에 지인들에 훈훈하게 선물할 수 있으려는지.... 나의 그 녀석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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