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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r 14. 2021

주식이 사람 잡지, 암만!(3)

 '바이 코리아(Buy Korea)' 펀드는, '외환 위기 극복 위해 주식을 사자.'는 마케팅으로 출시된 상품이었다. 나름 애국의 기치를 든 펀드였던 셈이다  종류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내가 가입했던 펀드는 주가 지수가 목표치에 도달하면 투자 원금의 10퍼센트를 이자로 주는 상품이었다.

주가는 고속으로 상승했다. 어떤 날은 단 하루 만에 목표치를 달성하기도 했다. 만약 천만 원의 돈을 투자했다면,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단 하루 만에 백만 원이 입금됐다는 얘기다.


 서른 살였던 나에게 돈을 번다는 건 취직이나 장사를 하는 것이었고, 그것은 스트레스에 찌들거나 뼈마디가 으스러지게 일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직하게(?) 돈을 벌어 착실하게 은행에 입금하는 것만이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줄 알고 있었다. 엄마는 우리 형제를 키우면서 늘 적금이나 곗돈을 부었다. 훗날 아버지의 반대로 곗돈 붓기를 중단했지만 적금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은행의 적금통장은 당신의 분신과도 같은 것이었다. 안방의 화장대 서랍에는 엄마가 수십 년 동안 가입하고 (만기) 해지했던 적금 통장이 훈장처럼 쟁여있었다. 그걸 보고 자랐으니 그런 건 줄 알았다. 돈이란 건 직장에 다니며 처절하게 벌어서 따박따박 은행에 모아두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하나 까딱  했는데 통장에 돈이 꽂혔던 것이다. 기분이야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뭔가 어리둥절했고 어쩐지 두렵기도 했다. 골똘히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법을 어기거나 죄를 저지른  없었으니 잘못한 것도 없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은 세상은 아비규환의 도가니였다. 사람들은 피신하거나 파산했고 서로를 파괴하거나 스스로 파멸됐다. 노숙자로 전락해 길거리에 나앉았고 비명과 통곡은 도처에서 쏟아졌다. 타인의 불행이 안개처럼 눅진한 곳에서 내게 굴러온 행운을 챙기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화장실에서 뒤를  닦고 나온   찝찝하고 더럽던 기분은 한동안 계속됐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이  탓은 아니었다. 아니라고 생각하니 정말이지  잘못은 아니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좀 두툼한 이자를 받았을 뿐이야.',

나는 주입하듯 다독였고 애쓰며 합리화했다. 불편한 마음도 시간이 흐르자 조금씩 익숙해졌고 서서히 잊혔다. 그에 비해 넝쿨째 굴러든 돈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이는 경이로움은 더할 나위 없이 황홀했다. 금전의 달콤함은 불편한 죄의식을 상쇄하기에 충분했고 심지어 남아돌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시작으로 주가 지수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IT주가의 거품이 붕괴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의 증시는 투자자들의 모가지에 밧줄을 매고서 동반 추락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바이 코리아(Buy Korea) 펀드'도 사라졌다. 바이 바이(bye)~ 한 마디 인사도 없이 말이다.

"왜요? 정말요? 이젠 없어졌다고요?"

 펀드를 가입할 수 없단 말을 듣고 놀란 내가 되물었지만, 창구 직원은 자기도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대신 그녀는 내게 새로 나온 상품의 가입을 권유했다. 아주 괜찮은 펀드라고 했다. 이미 펀드의 단맛에 한껏 취했던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펀드에 가입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주가는 보란 듯이 또 폭락했다. 어찌나 하락의 폭이 컸던지, 주가는 몇 개월이 지나도 바닥을 박박 기며 헤매더니 뱃대기를 내놓고 뒤집힌 벌레처럼 그예 발라당 자빠져 버렸다.

그해 겨울, 나는 펀드를 해약했고 원금이 두 동강 난 해약금을 받고 돌아서야 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너덜너덜 쥐어뜯긴 마음(실은 반토막 된 원금)이 시리고 아파서 나는 무작정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비척비척 힘겨운 걸음을 내딛으며 나는 다짐했던 것이다. '내가 다시 펀드에 가입하면 나는 개다, 나는 개야.'

 


 매도고 매수고 아무것도 클릭하지 못했던 며칠 전에 내가 그토록 당황했던 건, 펀드로 원금을 잃었던 트라우마 때문인지도 몰랐다. 겨울 거리를 헤매며 다짐했던 '나는 개다. 나는 개야.' 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울렁대는 듯도 싶었다. 자꾸만 그 시절이 오버랩됐고 무심코 지나가다 괜한 욕을 처먹은 듯, 기분이 나빴다.

'내일은 증권 계좌의 돈을 죄다 빼서 다시 은행으로 입금해야겠어.'

당장이라도 실행하고 싶었지만, 그러나 주식 장이 끝났으니 계좌의 돈을 뺄 방법이 없었다.


 옷장에 있는 옷을 죄다 꺼내서 다림질을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서서히 열이 오르는 울분을 식힐 방법이 필요했다. 이열치열, 열을 열로 다스리는 나만의 해소법이었다. 한참을 앉아서 다림질에 열중했더니, 다림질이 끝날 무렵 다리에 쥐가 났다. 밖에 나가 있던 딸아이가 들어온 것은 그때였다.

"엄마, 카톡 봐봐. 그거 하자."

아이는 가방을 아무렇게나 던지며 내게 바짝 다가와 앉았다. 그러고 보니 좀 전에 카톡 알람이 울리긴 했었다. 그러나 다리가 저려서 휴대폰이 있는 곳으로 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뭔데?"

"공모주 청약하자고."

"공모주가 뭐야?"

"나도 몰라. 근데 사면 좋대. 내 친구가 그러는데 걔네는 가족이 전부 살 거래."

딸아이는 나를 대신해서 휴대폰을 가져오더니 카톡을 열어 보여줬다. 유튜브 동영상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주식 초보도.. 공모주 청약.] 어쩌고 하는 제목이 얼핏 보였다.

"어휴, 나 안 해. 네가 사라던 A주식도 하락했잖아. 뭔 주식을 또 사?"

"그래? 그럼 엄만 하지 마."

짜증을 한껏 실은 내 말투에 기분이 상했던지, 딸아이는 두 말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요즘에 주식 안 하는 애들 없어."

아이는 얼마 전에 그렇게 대답했었다.

"주식은 도박이야. 그런 건 안 배우는 게 좋아." 하고 내가 말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나를 향해 대놓고 눈을 찢으며 째려봤는데, 억울하고 답답하단 마음이 묘하게 콜라보된(말하자면 매를 부르는) 표정이었다.

내 잔소리 따위는 아랑곳 않고 아이는 하루 종일 주가의 명멸하는 숫자를 지켜봤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뛰어나오더니 외쳤다.

"엄마, 나 이천오백 원 벌었어!"

"이천 오백 원 벌려다가 눈알 빠져서 굴러가겠다. 온종일 그것만 쳐다보고 얻어낸 게 기껏 이천 원이야?"

"아직 초보잖아. 그리고 이천 원이 어디야. 땅 파봐. 이천 원 나오나."

아이는 갈라파고스 거북이 등짝에 올라탄 듯 신이 나서 날아다녔지만, 나는 아이 마빡에 이천 원을 집어던지고 내친김에 휴대폰마저 아작 내고픈 욕구를 참아내느라 아예 기진맥진할 지경이었다.

저토록 청량하고 어여쁜 청춘이 주식이며 투자며 하는 것들에 열중하다니, 대체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그것은 마치 한 편의 블랙코미디를 보는 듯도 했는데, 이게 다 돈 없는 부모를 만난 탓인가 싶어서 나는 문득 서글퍼졌다.


 잠시 후에 쥐가 났던 다리는 조금 편안해졌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으므로, 나는 무심결에 딸아이가 보내준 동영상을 열었다. 동영상은 공모주 분양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꾹 참고 한참을 봤지만 도무지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어쩐 이윤지 알고 싶다는 욕구가 훅 솟구쳤다. 나는 포털 사이트를 열고 공모주 청약을 입력해봤다. 그러자 며칠 뒤 판매가 시작된다는 공모주 이름이 쏟아졌다. '공모주, 무조건 사야 한다. /이번 것도 따상 갈까?/ 따상상은?' 등등의 연관 검색어가 줄줄이 따라 나왔다.

'응? 으응? 이거 뭐지? 으응?'

나는 흔들리는 동공의 기운과 함께 웅숭깊은 어딘가에서 울리는 심장의 북소리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 이거 봐라  이거 장난 아닌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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