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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r 13. 2021

주식이 사람 잡지, 암만!(2)

 주식을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주가는 다시 한 번 곤두박질 쳤다. 파란색으로 변경된 숫자들은 땅굴이라도 파고 들어가려는 듯 마이너스 부호를 앞에 달고 고꾸러졌다. 전날에 상한가를 기록해서 나를 들뜨게 했던 카카오톡과 네이버의 주가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딸아이가 추천받았다며 알려줬던 A주식은 더욱 가관이었다. 지구 내핵까지 관통할 추세로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은 전날에 매수할 때도 클릭을 잘못했었다. 가격을 써 넣고 조금 기다려야 했는데, 뭣도 모르고 시장가로 구입하는 바람에 그날 최고의 가격으로 사들였던 것이다. 모르긴 해도 그때부터 재수가 옴붙은 듯했다.

'이러다가 큰일 나겠어. 더 잃기 전에 팔아야해.'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손절(손해보고 판매)'을 결심했다. 재수 옴붙은 것은 어서 털어버리는 게 현명한 일이었다. 그러나 눈꺼풀의 껌뻑임보다 잽싸게 바뀌는 숫자의 변화 앞에 나는 그만 제대로 쫄아버리고 말았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매도 버튼을 클릭했지만, 금액을 입력하기 전에 숫자는 번개불에 콩 궈먹듯  정신 없이 바뀌었고, 내가 얼마를 입력하려고 했던 건지 단위가 어떻게 됐던 건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도무지가 이게 뭔 날벼락인지 깨달을 틈도 없었다. 앉은 자리에서 코 베인단 말은 촌놈이 서울 입성했을 때나 듣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게 딱 그 상황이었다.


 나는 무기력 상태에 빠져 버렸다. 가히 번아웃의 지경에 이른 것이었다. 예상했던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나는 이것이 꿈이 아닌 현실 상황임을 깨달았다. 어찌할까 고민해봐도 답이 없었다. 매수고 매도고 뭣이고 간에 죄다 때려치고 싶단 기분만 들었다. 투자 원금의 삼분의 일은 이미 증발된 상태였다.

'그나마 원금이 얼마 안 됐길래 다행이지. 주식도 배우려면 수업료를 지출해야 하니까. 사실 손실이 이 정도면 한 달만 허리띠 졸라매고 살면 돼. 까짓, 돈이란 게 돌고 돌고 또 돌다가 턴해서 나한테 오고, 뭐 그런 거 아니겠어?' 나는 정신 승리 깃대를 마구 흔들며, 아무도 뭐라하지 않는데 누구든 덤비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사실 내가 직접 주식에 투자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증권사의 펀드에 가입했던 경험은 몇 번 있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다. 학원 강사를 하던 시절, 증권사 직원이 교무실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가 권했던 적금은 은행보다 이자가 꽤  높았다.

"복리 상품예요. 이자가 붙을 때마다 원금에 합해지고 거기에 또 이자가 붙는 거죠. 아주 좋은 상품이라 꼭 가입하시라고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습니다."

말끔한 양복에 세련된 넥타이를 하고 있던 그는 교무실의 선생들에게 자신의 명함을 돌리며 말했다. 나는 마침 적금에 가입할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다. 그러나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들고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여서, 나는 차일피일 은행 가는 일을 미루고 있던 참이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증권사 직원은 아마도 실적 압박을 받고 있던 중이었나 싶다. 그는 꽤 간절해보였다. 허리를 살짝 굽힌 채 상품 설명을 하는 그는 쉴새없이 자신의 손을 마주 잡고 부비작댔는데,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들 뻘 되는 청년이 영업하는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나이 지긋한 선생님 한 분이 적금을 들겠다고 손을 들었다.

"근데 지금 현금이 없어서... 나중에 찾아가서 가입할게요. 여기 명함에 적힌 성함으로 찾아뵈면 되죠?"

나이 지긋한 선생님이 직원의 명함을 손에 쥐고 흔들면서 말했다. 그러자 증권사 직원의 얼굴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우물쭈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방문하시면 기다리셔야 하니까요. 지금 가입서를 미리 작성해주시면... 언제 오시든 제가 바로 처리해드리겠습니다."

그는 적금 가입서류를 선생님 책상 위에 곱게 올려 놓았다. 하지만 서류를 받은 선생님은 망설이는 듯 보였다. 생각은 있었지만 막상 계약 서류를 들이미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반감이 생기기도 하고, 아마도 그런 듯 싶었다. 허긴 누구나 그렇지 않겠는가. 말과 행동은 일치가 어려운 법이고, 일순간의 결정은 스스로도 불안한 법이니까.


그 순간 내가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은 고질병 때문이었다. 누군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해결을 도와야 한다는 병, '사람으로 살아 남고, 가오로 살다 가자!' 하는 구호가 가슴에 들러붙은 병, 생의 중요한 고비마다 지옥을 경험하게 했던 치명적인 고질병, 나는 그런 병을 앓고 있던 중이었다.

"제가 가입할 게요!"

그리 덥지 않은 날임에도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던 그는, 희색이 만연한 표정으로 내 자리로 달려왔다.

"감사합니다. 돈은 지금 안 내셔도 되고요. 조만간 영업점으로 오셔서 입금하시면 됩니다."

나는 가입 서류에 사인을 했다. 나를 이어 몇 몇 선생님의 가입도 이어졌다. 그는 더이상 땀을 닦지 않았고 말을 우물대지도 않았다.  


 며칠 뒤 증권사에 방문했을 때, 그는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내가 모 학원의 강사라고 말하자 나를 친절하게 창구로 안내해줬는데, 돌아갈 때 보니 그는 무척 바빠보였다. 제법 그럴듯한 엘리트 사원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선생들 앞에서 식은 땀을 흘리며 난처해하던 모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삼십여 년이 흘렀으니 그는 지금쯤 회사의 임직원이 됐을 수도 있겠다. 아마도 중년쯤 됐을 그가, '라떼'는 말이야, 하며 학원에 찾아가 영업했던 과거를 자랑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자신의 젊은 시절처럼 용기와 도전정신을 배우라며 신입 사원들에게 꼰대질 중인지도 역시 모를 일이다. 그러나 민망하고 초조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식은 땀을 닦아내던, 젊었던 그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그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세월은 아귀처럼 달려들어 그악스럽게 젊음을 앗아가고 또 다른 세월은 은근히 스며들어 기억의 흔적마저 녹여내지만, '바람에 누웠던 풀'이 '바람보다 빨리 일어나는' 것처럼, 세월에 잊혔다가 불현듯 떠오른 지난 인연은 언제고 새록새록 기억의 표면에 떠오르는 법이다.



아무려나 그때의 적금은 내가 증권사에 가입한 첫 상품이었다. 삼 년의 기한이 끝난 뒤, 나는 상당한 이자가 붙은 적금통장을 거머쥐게 되었고 그 돈은 첫 펀드 가입의 '씨드'가 되었다.

딱히 목돈을  일이 없었던 나는, 증권사 직원의 권유에 따라 펀드에 가입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펀드는 황금을 낳는 거위처럼 돈을 불렸다. 때는 바야흐로 '바이 코리아' 펀드 열풍이 한반도를 뒤흔들던 주식 황금기였다. 펀드의 원금이   반이나 불어나는 데는   개월이 걸리지 않았다.


돈을 이렇게 쉽게 벌 수 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믿기지 않았다. 길거리를 걷다가도 피식피식 웃음이 터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볼따귀를 꼬집어보고 통장을 열어봤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통장에 찍힌 숫자를 손가락으로 짚어보며 단위를 세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세상이 나를 향해 이토록 우호적이면, 나는 나는 어쩌란 말이야. 나한테만 이렇게  해주면 미안해서 어쩌란 말이야. 고마워서 미치겠잖아. 계속   해주면 죽도록 감사할 거잖아.' 머리에  꽂은 미친 여인인 , 나는 밤마다 중얼대며 부푼 가슴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곤 했다.

그러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아니, 행운이라 알았던 것은 스쳐지나는 신기루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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