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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r 09. 2021

주식이 사람 잡지, 암만!(1)

주린이의 주책쇼 에피소드.

  증권사 앱을 다운 받아서 주식을 샀다. 운명이었을까. 첫 주식 투자하는 날 주가가 마구 하락했던 것이다. '주식은 떨어질 때 사는 거랬어. 하늘이 내린 찬스가 이런 거지!'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네이버와 카카오톡을 질렀다. 한 주당 삼사십 만원씩 하는, 나름 단위가 큰 주식들이었다. 잠시후엔 딸아이가 정보를 물어왔다.

"엄마, A주 사래. 전문가가 알려준 거야."

아이고, 내가 주식 시작한 줄 어떻게 알고 주식이 확 떨어지더니, 이번엔 고급 정보까지 날아오고! 이게 바로 돈 버는 기회라는 거구나.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딸아이가 전해준 정보에 따라 거금(내 입장에서)을 넣고 A주를 질렀다.  


네이버와 카카오톡은 내가 주식을 사자마자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빨간 숫자가 초단위로 바뀌기 시작했다. 숫자가 변할 때마다 내 붉은 심장도 팔딱팔딱 뛰었다. 이러다간 재벌 등극도 어려운 일이 아닐 듯했다.

워런버핏이 별 거냐. 이러다가 워런버핏도 되고 잡스도 되고 머 그런 거지... 어쩌면 내가 바로 주식 투자의 귀재였던지도 몰라. 오늘날 투자의 재능을 꽃 피우기 위해 나는 그토록 궁색했던 것인가... 벼라별 말도 안 되는 그러나 말이 됐으면 하는 이유를 들이대고 환호성을 지르며 나는 마구 흥분했다. 그러나 내가 흥분을 금치 못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깨춤을 추는 사이, 거금을 부어 구입한 A주의 주가는 조금씩 조금씩 하락하기 시작했다. 살짝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주가가 떨어지고 있으니 곧 오를 거라고, 나는 정신 승리 기초를 다지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네이버와 카카오톡은 굳건히 빨간 숫자를 유지했다. 비록 A주의 손실이 적지는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양호한 상태였다. 이 상태를 유지만 해도 거하게 외식 한 번 지를 수 있는 돈은 마련한 듯했다.


 그런데 세 시 반이 되니 정신없이 널뛰던 숫자들이 일제히 멈췄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주식 시장에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앱이 멈춰버린 건가, 혹시 휴대폰에 문제라도 생긴 건가.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댔고 등줄기에선 식은 땀이 흘렀다. 급히 휴대폰을 끄고 켜서 다시 앱을 실행했다. 그제서야 나는 주식장의 마감 시간이 세 시 반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아니, 왜 증권사는 은행보다 일찍 끝나는 거야? 이 사람들이 돈을 쉽게 버는구먼.

혼자 중얼대다보니 웃음이 터져나왔다. 장이 열리고 끝나는 시간도 모르는 초짜 주제에 뭔가를 탓하는 것도 우스웠지만, 여유자금의 절반 이상을 주식에 쏟아부은 무모함도어이가 없었다. 내가 아닌 다른 내가, 불현듯 좀비처럼 움직이면서 여기 있던 돈을 저기로 옮겨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돈이 들었던 저축통장의 숫자는 눈에 띄게 줄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고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정신 승리의 깃대는 확실히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내일이면 주가가 상한가를 칠 것이고, 빨간 숫자로 도배될 거야. 그러면 바로 매도해야지.'

그래도 나름의 계획이랍시고 순서를 잡아 머릿속을 정리했다.


 세상은 그러고보면 요지경이 맞긴 맞는  같다. 재밌다. 숫자가 마구 바뀌면서 돈이 된다.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다음날 크게 오를 주가의 기운을 점쳐보며 잠자리에 들었다.  생애  주식 투자는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긴 했다. 사실,  모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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