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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Mar 31. 2021

주식이 사람 잡지, 암만!(4)

 공모주라는 이름이야 들어보긴 했지만, 그걸  어떻게 한다는 건지는 아는 바가 전혀 없었다. 검색으로  기사를 읽어도 이해가   됐으므로 나는 딸아이가 보내준 동영상을 다시 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듣고나서야 조금 감이 잡혔다. 일단 주식 계좌부터 터야했다. 나에겐 펀드를 가입했던 증권사의 계좌가 있었다. 공모주를 어떻게 사야하는 건지는 딸아이가 가르쳐 주겠다고 했지만, 돈을 다루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하는 것이었다. 면대면으로 상담도 안 하고 한번도 해본  없는 공모주를 산다는  수영도   모르는 사람이 바다에 뛰어드는 일과 다름없는 짓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주식 계좌를 여러  만들고 순식간에  사용에 익숙해지는 딸아이가 한편으론 부러웠지만, 나는 어쩔  없는 구시대의 중년이었다.


생각해보니, 컴퓨터라는 신기한 물건을 만났을 때가 딸아이와 비슷한 나이였던 스물  무렵이었다. 컴퓨터 자판을 누를 때마다 혹시라도 잘못을 저지를까 비싼 물건을 고장내는  아닐까  불안했다. 본체의 파워를 누르고 부팅을 기다릴 때면 모니터에 깜빡대는 커서처럼 심장이 콩콩 뛰기 일쑤였다. 사랑하는 애인을 더듬듯 더듬더듬 자판을 눌렀고 보듬어 안으며 컴퓨터를 다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것은 애인보다 자주 까탈을 부렸고 끊임없이 관심을 요구했다. 도스를 거쳐 윈도우까지, 하나가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낯선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오래된 컴퓨터나 전자제품을 바꿀 때마다 먹통이  기계처럼  머리는 로딩했다. 낯선 사람을 만나 어색하고 조심스럽게 마주하는 자세로 매번 새로운 컴퓨터 환경에 적응해야했다. 어느새 386이니 486이니 하는 말들은 정치계 인사상징하는 단어로 남았고, 디스켓을 집어넣거나 확장자 이름 같은  외우던 시대는 빗살무늬 토기만큼이나 오랜 유물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러고보면 간신히 배워낸 것이 휴지짝처럼 쓸모없는 지식이 돼 버리는 일은 흔했다. 디지털 카메라며 엠피쓰리 같은 기계에 적응하려고 애써 노력했지만, 익숙할만하면 새로운 사양이 등장했고 어느 날인가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곤 했다. 간혹 허무하고 때로 섭섭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워내고 집의 평수를 조금씩 늘리거나 자동차를 여러 번 바꾸는 일에 기계를 다루는 지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평균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매 순간 주어진 일에 충실했으며 선택의 순간에 신중했다고 생각했으므로, 잘 살고 있다고만 믿었다. 전진하는 수레 위에서 발을 살짝 빼냈다한들 그게 대수일 리 없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은 광속만큼이나 급하게 달렸다. IT산업이 세상을 훤히 밝혔을 때 나는 노안이 시작된 침침한 시력의 중년이 돼 있었다. 배를 문대며 기어다니던 아이가 두 다리로 서서 걷는 데는 일 년이 걸렸지만, 컴퓨터를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컴퓨터 자판 위에서는 아이의 손가락은 날아다녔고 휴대폰을 다루는 능력은 신의 영역을 접수한 듯 보였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몇 번의 터치가 실패를 거듭해야 회원가입을 간신히 끝내는 내가, 아이 눈에는 답답한 구닥다리 기계인 듯 보였을 것이다.

아이에게 휴대폰의 기능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에 관해 물어보면 말싸움이 나는 것도 흔한 일이었다. 나는 아이가 무성의하다고 질책했고 아이는 충분히 설명해줬는데 내가 못 알아듣는다고 타박했다. 큰 소리가 몇 번 오가고, 결국 "자식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나의 '18번 푸념'을 써먹고 나서야, 아이는 인상을 쓰며 곁에 와 앉았다. 그러나 예전에는 하나 하나 설명해주던 아이가, 이제는 휴대폰을 통째로 들고 가서 내가 원하는 바를 실행한 뒤 돌려주는 일이 잦아졌다. 아이는 바빴고 나는 무력했으므로 우리는 그 간격을 이해했고 인정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간격은 더욱 커질 것이다.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런 것이겠다. 쾌속으로 질주하는 세상에서 퇴화를 반복하며, 기어코는 무용지물로 남았다가 떠나는 일 말이다. 자식이나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나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거라고, 늙는다는 건 그러나 무엇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아이에게 외면을 당할 때마다 나는 중얼대곤 했다.

그러나 공모주만큼은 내가 해내야겠다. 아이에게 당당하게 통장을 내밀며 니 에미가 해낸 일이라고 큰소리를 쳐야겠다. 그러려면 증권사를 찾아가서 직접 설명을 들어야 확실히 해낼 수 있을 것이었다. 그깟 공모주 분양받는 일 따위.., 남들 다 한다는데 내가 못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다음 날 찾아간 **증권은 입구부터 아비규환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처럼 공모주 청약을 위해 증권사를 찾은 사람들이었다. 딸아이가 보내준 동영상 속 유투버의 말은 사실이었다.

 "온라인으로 계좌를 만드세요. 만약 증권사에 찾아가면 지옥을 경험하실 겁니다."

유투버는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는데, 설마 증권사에 직접 찾아가는 사람이 있을  없다는, 그래서 우스갯소리 한번 지껄여봤다는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었다. 유투버의 얼굴은 영상에 드러나지 않았다. 또랑또랑한 말투로 주식 시장의 동향이며 공모주 분양 받는  등을 설명하는 그를, 모르긴 해도 삼십  후반의 건장한 사내일 거라고 나는 추정했다. 그는 발음이 명확했고 어려운 용어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는 재주가 있었다. 게다가 양념처럼 쏟아내는 그의 웃음 소리는 꽤나 매력적이었다. 그다지 유쾌하거나 재밌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 그는 스스로 웃겨 죽겠다는  자꾸만 웃음을 터뜨렸는데,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는 그런 이야기보다 그의 웃음 소리가 좋아서 괜히 히죽히죽 웃었다.  상상이란 , 때로 소리의 증폭처럼 범주를 넘어서곤 하는 법이 아닌가. 유투버의 목소리를 들으며 근사한 남성의 부드럽고 친절한 에스코트를 상상했단들, 그것이 중년 아줌마가 실성했다거나 음탕하다는 비난을 받을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어쩐지 나는 민망하기도 당황하기도 혹은 부끄럽기도  것이었으니, 세상의 잣대란  바람난 여인보다 요망스러운 것임이 틀림없다  


 증권사 입구에 바글대는 사람들을 목격한 순간, '아, 이거 잘못 걸렸네.'하는 불안이 엄습했다. 나는 앞을 가로막고 서있는 사람들 틈을 잽싸게 비집고 들어가 대기표를 뽑아 들었다. 번호표에 인쇄된 숫자는 45번, 창구에 명멸하는 번호판의 숫자는 7번이었다. 불안함에 암담함까지 가중됐다. '45-7=?' 쉽게 암산되지 않는 숫자를 떠올리며 아무려나 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대기 중인 거라고 퉁쳤다. 중요한 것은, 저 많은 사람들이 계좌 하나씩을 만들게 된다면 내 차례가 오기까지 한나절은 족히 소요될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자 내 머릿속은 주파수를 잘못 맞춘 라디오처럼 지직대기 시작했다. 기다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그것이 문제로다. 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이 마침 내 앞을 지나갔고, 나는 참새를 덮치는 독수리처럼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를 붙잡았다.

"저기... 제가 여기 통장이 있는데요. 공모주 때문에 왔는데... 통장만 만들면 되는데..."

내가 말하면서도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대듯 내뱉으며 나는 간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 통장이 있으세요? 그러면 바로 공모주 청약하실 수 있는데, 통장 번호 아세요?"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자기가 안내해 줄테니 따라오라며 앞장섰다.

'아이고, 이게 웬 떡이냐. 이렇게 바로 해결이 된단 말이야? 너무 비현실적인 거 아니야?'

나는 볼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신이 난 내가 그를 따라 돌아섰을 때였다. 아까부터 내 옆에서 혼잣말을 중얼대던 할머니 한 분이 앞서가던 그 직원을 불러세웠다.

"아니, 이것 좀 해줘봐요."

할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직원에게 들이밀며 말했다.

'아니, 이 할망구가 뭐라는 거야. 이 사람은 내 일을 처리해주려던 참이었잖아.'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쳐다봤지만, 할머니는 내 존재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 그렇게 하기로 이미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굳게 맘을 먹은 것이 틀림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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