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변희영 Apr 23. 2021

사막에서 날아온 나무

어디서 봤던가. 누군가의 포스팅에서 비슷한 물건을   같았다.  어릴 적부터 집안 어딘가에 놓여있던 . 수석인  알았다. 나무 모양의 수석인가? 그렇게 지나치곤 했다. 장소를 옮겨 배치하거나 청소할 때면, 엄마는 그것을 들었다 놓으며 ‘아구, 무거워.’ 신음소리를 냈다.


아빠가 외국에서 가지고 온 돌인 줄만 알았다. 귀한 건가? 미관상 참 못났는데 저 무거운 걸 아빠는 왜 집구석까지 챙겨왔을까. 당장 내버리라하면 신나게 던져버릴텐데... 거실 어딘가에 제법 넓은 자리를 차지했던 저 돌덩이가 내 보기엔 참 밉상이었다.


근데 얼마 전에 봤던 거다. 누구의 포스팅였는지 모르겠다. 그림 작품 옆에 저 돌나무가 놓여있었다. 제법 귀한 자태로 제법 장식물답게 말이다.


마침 아빠에게 온 김에 찾아봤다. 용케도 아직 집에 있었다. 재작년 이사오면서 아빠는 살림의 절반을 버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빠가 그랬지만. 평수가 줄어들었기도 했고 엄마가 아프기도 했으므로 오빠는 미련을 갖지 말고 쓸모없는 건 죄다 버리시라고 아빠를 설득했다. 거실 중앙과 부엌 벽 한 칸을 가득 채웠던 커다란 동양화를 버린 것도 그때였다. 엄마 말로는 꽤 비싼 값을 주고 구입했다던 그림들였지만, 처분되길 기다리는 다른 물건들처럼 아파트 공원 구석에 던져졌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버려진 그림들을 구경한다고 모여들었다. 나는 액자를 해체해서 그림만 가져가려고 시도했지만, 액자는 입을 다문 조개처럼 끝내 열리지 않았다. 잠시 후에 “내가 가져가도 되겠”냐고 낯선 남자가 물어왔다. 그는 아파트 관리실 잠바를 입고 있었다. 집이 좁아서 걸어둘 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림이 너무 좋아서 그런다고 했다. 나는 사진 찍을 시간을 좀 달라고 했고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했다. 잠시 뒤 그와 똑같은 잠바를 입은 남자가 도착했다. 그들은 낑낑대며 그림을 들고 갔다.


삼십 여년의 살림살이가 죄다 버려졌다. 엄마는 오빠집에 머무르고 있었고 아빠는 묵인했다. 거실벽을 이중으로 가리고 있던 책장도 마찬가지 운명을 맞았고, 책장에 꽂혔던 책은 절반 정도가 버려졌다. 수백 여권의 책들이 재활용품 종이 포대에 쌓였다. 주로 일본책이었다. 시내의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고 몇 권씩 사들고 오는 건 아빠의 취미였다. 그렇게 모이고 쌓였던 책들이었다.

오빠는 한 달에 걸쳐 매주 책을 내다 버렸지만, 나는 책을 고르거나 분류하거나 뭐든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때는 나도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참이었고, 아빠에게 말 걸기도 싫을 만큼 단단히 삐쳐있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것이었다. 나는 돌나무를 발견하자마자 덥썩 안아 들었다가 하마터면 거실 바닥을 빵구낼 뻔했다. 돌덩이 무게였던 것이 쇳덩이보다 더 무거워진 듯했다.

그제서야 나는 아빠에게 그것을 가져오게 된 내력을 물었다. 아빠는 명확히 기억하고 계셨는데, 그건 돌덩이가 아니라 화석이라고 했다.

“리비아에서 근무할 때 직원이 주더라. 사막에서 발견했다고. “

“화석? 돌이 아녔다고? 이렇게 무거운데?”

“그래. 지금은 사막이지만 그곳이 오래 전엔 밀림이었단다. 그 때의 나무가 화석이 된 거다.”


아빠가 리비아에서 근무하셨던 때는 80년대 초반이었다. 어느새 사십 여년이 흐른 셈이다. 사막의 땅속에서 오랜 시간 묻혀있던 나무는 땅 위에 올라와 사십 여년을 살았다. 지상에 올라온 나무가 머문 곳은 우리 집이었다. 우리가 작고 가벼운 아이었다가 돌돌 감겨 퉁퉁해진 털뭉치처럼 커갈 때까지, 찰진 밥알처럼 옹기종기 붙어앉아 떠들고 다투며 놀다가, 흩어진 쌀알처럼 제 둥지를 만들어 각자의 생활을 꾸릴 때까지. 사막에서 태어나 사막에서 죽었던 나무는 화석이 되어 우리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알고 있을까? 제 굳은 몸을 가장 많이 만져 주던, 쌓인 먼지를 털어주고, 때로 말 몇 마디씩 건네곤 하던 여인의 죽음을. 이제는 돌아와 화석 앞에서, 죽은 여인의 손길을 떠올리는 그리움을, 화석은 과연 알기도 할까.

작가의 이전글 주식이 사람 잡지, 암만!(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