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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Aug 16. 2021

돌아올 수 있겠니.

 돌아감과 돌아옴은 말하는 사람의 입장 차이겠다. 돌아감은 내게서 가는 것이고, 돌아옴은 내게로 오는 것이다. 돌아감은 흔적과 아련함을 남기지만, 돌아옴은 설렘과 기대를 안긴다. 모든 돌아감과 돌아옴이 그런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가, 함께 집으로 가야할 그가 일이 있어서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을 , 그래서 지하철  앞에서 우리가 안녕을 인사했을  나는 제법 섭섭했다. 여자 혼자 돌아가기엔 늦은 밤이었고 무엇보다 그와 나누고 싶은 말들이 아직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을 들키지 않을 심산이었으므로 단칼에 돌아섰다. 그가  뒤통수를 지켜 보고 있다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서 다시   고개를 돌려 환하게 작별을 인사해야 예쁠 일이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뒤통수에 껌처럼 붙은 그의 시선은, 유달리 길고  계단을  내려올 때까지 끈적하게 붙어있었다. 순식간이었을  시간이 지구  바퀴를 걸어온 것인  길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결코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났다고 느꼈을 , 그제서야 나는 막았던 숨통을 터뜨렸다. , 심호흡을 하며 눈가에 맺힌 눈물  방울을 훔쳐냈다. 역시나 매몰찬 것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지하철 노선 두 개가 겹친 그곳은 꽤 복잡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리고 또 올랐다가 내렸다. 타야할 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와 만났다가 헤어졌단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다음 열차가 도착할 시간은 좀 길었고 나는 숨을 할딱거리는 중이었다. 바로 앞에 벤치가 있었다. 엉덩이를 붙이고 숨을 내쉴 때, 그제서야 그가 생각났다. 지하철 입구에 벌여둔 좌판처럼, 돌아서던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던 그가. 곰처럼 우뚝하고 미련하고 곰처럼 단단하고 의젓하던 그가.

어쩐지 그곳에 그가 곰처럼 웅크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열차가 들어오고 있다는 안내 방송이 들렸다. 그리고 기적처럼 눈앞에 곰이 출현했다. 그는 뛰어오고 있었다. 아니, 돌아오고 있었다.

왜 돌아왔냐고도, 왜 돌아왔는지도 우리는 묻지 않았다. 돌아서는 내 뒷모습이 걸렸을 거라고 나는 짐작했고 돌아오고말 그를 기다렸을 거라고 그는 상상했던 거라고, 우리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 앞에 우뚝 선 그에게선 땀냄새가 물씬했지만, 내가 맡은 것은 비릿한 사랑내였다.


 여자의 괴성을 들은 것은 대낮이었다. 조용한 대낮의 아파트 단지에서 그녀는 찢어질 듯 날카로운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아파트 벽면에서 반사된 소리는 뜨거운 아스팔트 바닥에서 파편처럼 부서졌다. 날카로운 파편이 심장을 스친 듯, 나는 쓰라린 통증을 느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다툼이었는데 어쩐지 알 것 같았다. 쇳소리처럼 날카롭던 그녀의 비명이 용암처럼 뒤틀며 뜨거워질 때, 그러니까 그것이 더 이상 비명이 아니고 울분만도 아니고 어쩌지 못하는 그저 몸부림이될 때 그것은 생을 갉아먹는 절망이었다.


여자는 남자를 따라가는 중이었다. 남자는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둘은 서로를 향해 고함을 질렀는데, 어느 순간엔가 여자를 외면하며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허리를 꺾어가며 고함을 지르다가 기어코는 남자의 캐리어를 발로 찼다.

"내가 뭘 잘못했어?어?"

그러자 남자가 그녀를 무섭게 노려봤다. 그리고는 무어라고 대답을 했다. 다시 그녀가 몸을 비틀며 소리를 질렀다.

"니가 사람이야? 우리한테 니가 그럴 수 있어?"

남자가 대답했다. "들어가!"

그들 앞에 택시가 도착했다. 남자는 캐리어를 싣기 시작했고 택시 기사가 남자를 도왔다. 여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택시의 주변을 돌았다.

"가! 다시는 나타나지 마!"

남자가 택시 뒷자석에 올라탔다. 여자가 뒷좌석 문을  닫게 막아서자, 기사가 여자를 말렸다. 여자는  남자가 어떤 사람인  아냐며, 우리에게 어찌어찌했다고,  남자가 정말 나쁜 자식이라고, 어른에게 일러바치는 아이처럼 억울함을 호소하며 소리를 질렀다. 기사는 여자에게 뒤로 물러서라며 손으로 제지했다. 닫히는 문을 향해 그녀가 포효했다.

"가!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면 죽여버릴 거야! 그땐 죽일 거야!"

문이 닫힌 택시가 불에 덴 망아지처럼 한 번 펄쩍 뛰더니 그대로 달려나갔다. 홀로 남은 여자는, 죽여버릴 거야, 죽여버릴 거야...소리를 내며 걷기 시작했고 기어코는 울음을 터뜨렸다. 멈추지 않고 걸어가면서 팔뚝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그녀는 계속 웅얼댔다. 죽일 거야. 죽일...거야.

그녀의 작고 마른 몸이 울렁이며 멀어져 갔다.


그때 생각했다. 돌아오는 것에 관해. 타고 가던 택시를 돌려 남자가 돌아오고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 것도 묻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둘이 부둥켜 안는 장면을 상상했다. 상상만으로도 어색했다.

그러나 돌아올 수 있다면 그러는 게 좋다고, 왜냐하면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엔 너무도 많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곰처럼 우직하고 답답하고 그러나 단단하고 의젓하던 그가 내게 돌아왔을 때도 그랬다. 그로 인해 울었지만 그가 돌아옴으로 웃었다. 아무것도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았다. 돌아옴으로 내게 옴으로, 모든 게 좋았다. 그녀에게 그가 돌아가면 좋겠다. 죽여버린다고 협박한 그녀의 손에 그가 죽었으면... 그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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