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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희영 Sep 18. 2021

<병상일기 1>

 사고를 당한 지 나흘이 지났다. 약속 장소를 찾던 중이었다. 비가 많이 왔으므로 폰을 들여다 보기 쉽지 않았다. 간판을 둘러봤지만 위치를 식별하기도 어려웠다. 잠시 비를 긋기 위해 움직이던 찰라였다.


악! 비명과 함께 미끄러지며 길바닥에 엎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발이 돌아가 있었다. 미끄러지면서 발목에 힘을 주었던 가보다. 끔찍한 통증과 함께 눈앞이 캄캄해졌다.


여성 한 분이 괜찮냐며 말을 걸어오기까지 수십만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았다. 부지불식간에 사라졌던 내가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다시 나타났는데, 대한민국 서울, 지하철 입구 앞의 길바닥이었다. 비가 무수히 쏟아지고 우산을 쓴 채 한 치 앞만 보며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하늘에서 툭, 내가 떨어진 것이다.


여성 한 분이 나를 부축했지만 돌아가버린 내 발목은 꿈쩍도 하질 않았다. 여성의 한쪽 손에는 스벅인지 어딘지에서 테이크 아웃한 커피가 들려 있었다. 비는 또 무수히 내려 플라스틱 컵을 따라 눈물처럼 흘러내렸다. 이어서 다른 여성 분이 무슨 일이냐며 우리 곁으로 왔다. 그녀의 오른 손에도 무언가 들려있었다. 그들이 마구 윽박질렀다.


- 엠블런스를 부를까요? 누구 부를 사람 없어요? 전화해 보세요!


정신이 까무룩히 잦아드는데 약속 장소에서 나를 기다릴 사람들만 생각났다. 폰을 열고 그들의 이름을 찾으려했지만 단 한 명의 이름도 떠오르질 않았다. 옆에 있던 여성 분이 또 소리쳤다. 전화했어요? 찾아드려요? 아무래도 구급차를 부를까요?


정신은 혼미한데 그들의 외침이 바늘처럼 가슴을 찔렀고 나는 어쩌지도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잠깐만요. 이 분 기절하신 거 같아요.


여성들 중 누군가가 말했다.


그녀들은 초조해보였다. 제 갈 길을 가던 중이었으니 어서 서둘러야 할 것이었다.


아니요, 종합병원은 코로나 검사하고 그러다보면 너무 늦어요. 근처 어디…


내가 한 말이었다. 어디든 빨리 병원엘 가고 싶었다. 그럼 우리한테 기대라며 그녀들이 어깨를 내주었다. 가늘고 앙상한 어깨였으므로 나는 다친 발에 힘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몸무게를 실었다간 같이 나뒹굴지 몰랐다. 문득 어깨를 내준 여인의 간호사 가운이 눈에 들어왔다. 아, 이 사람이 남성이었더라면 나를 들쳐업고 뛰어줄텐데. 얄팍하게도 나는 그녀가 하필 여성이란 사실이 원망스러웠다.


바로 앞에 정형외과가, 그것도 번듯한 병원이 있었단 건 불행 중 다행이었다. 병원 문까지 어떻게 걸어 갔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병원 입성에 성공한 나는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병원 관계자들이 재난 영화를 보듯 나를 쳐다봤다. 그러나 원장은 수술 중이었고 한 시간 반을 더 기다린 후에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복숭아뼈 두 개가 나갔고 발꿈치쪽도 나갔다. 도합 세 군데 골절, 중상이었다.


다음 날이 돼서야 수술을 받았고 이틀 동안은 극심한 통증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을 찾지 못해서 힘들었다. 입원 후 삼일째 되던 날이 돼서야 내 상황을 천천히 돌아볼 수 있었다. 그 날 밤, 한쪽 다리를 쿠션에 올리고 한쪽 팔을 얼굴에 올려둔 채 나는 염불을 외듯 중얼거렸다.


“아… 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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