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서비스와 협치
시민참여나 민관협치 정책을 이야기할 때 자주 언급되는 개념이 하나 있다. 아른슈타인의 참여의 사다리이다. 참여의 사다리는 시민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는 수준을 8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아주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단계부터(1단계) 매우 적극적으로 재량을 위임받아 참여하는 단계까지(8단계) 구분해 놓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고 있는 공청회의 경우 형식적 의견수렴(4단계)과 명목적 의사결정 참여(5단계)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 듯하다. 지방정부에서 시민참여 정책을 기획할 때 참여인식 설문조사의 기준으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이 그림을 가지고 온 이유는 따로 있다. 참여의 사다리를 공공서비스 관점에서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다. 시민참여, 민관협치 정책을 진행할 때에도 목표가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 민관협치를 해야 하는가? 앞서 우리는 문제해결,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서 민관협치를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다른 현상도 나타난다. 바로 참여의 수준, 재량의 위임, 그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정책결정과정에 다양한 시민이 참여하는 경로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참여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우가 있다. 당연히 참여 자체가 목표가 된다면 그 참여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또한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요새 많이 언급되는 ‘자치’와 ‘분권’의 관점이라면 이것 또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권의 대상은 꼭 시민과 행정조직만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에도 분권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 여하튼 분권 관점에서는 참여의 수준을 높이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을 듯하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공공서비스 관점에서의 시민참여나 민관협치는 좀 다르다. 정책의 유형에 따라 민관협치 접근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처럼, 다양한 공공정책 유형별로 그에 적합한 참여의 수준이 존재한다. 애플이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설계에서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는 것은 높은 스펙이 아닌 최적화 설계 능력이다. 무작정 스펙이 높은 것보다 최적화(customize)를 얼마나 잘할 수 있느냐가 승부를 좌우한다. ‘적합성’이 중요한 것이다.
민관협치도 마찬가지이다. 각 공공정책의 유형별로 적합한 참여 수준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정책사업의 경우 형식적 의견수렴이 적합할 수도 있고, 때론 공동의 의사결정이 적합할 수도 있다. 민간파트너의 장점이 확실하다고 판단되는 때에는 적극적 재량 위임 단계가 적합할 것이다. 예를 들면 반민간재나 직접재 성격의 정책은 적극적 민관협치가 꽤 유용하다. 하지만 공공재의 경우 아주 소극적인 참여 수준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정책사업의 특성별로 그에 필요한 최적의 참여 수준과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공공서비스 관점의 민관협치에 대한 의미와 맥락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번 챕터를 마무리하며 공공서비스 관점에서 민관협치를 접근할 때 3가지 질문으로 시작하는 것을 제안한다.
첫 번째, ‘지방정부(행정조직)가 이 사안을 완수할 책임이 있는가?’ 어떤 사회문제나 현상에 대해 그것을 해결해야 할 책임이 지방정부에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 때론 어떤 사안은 민간영역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해당 사항이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인가에 대한 고려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두 번째, ‘지방정부가 직접 수행해야 할 임무인가?’ 고민하고 있는 정책사업의 유형을 먼저 파악해 보자. 수혜대상의 범위에 따라 공공재, 반민간재, 직접재의 여부를 파악하자. 더불어 이해관계자 복잡도, 정책의 사각지대 여부, 섬세한 운영이 필요한 문제인가에 대해 검토해 보자. 만약 해당 사항이 공공재가 아니라면, 민간파트너의 참여가 필요한 유형이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세 번째, ‘민간파트너가 협력해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할까?’ 민간파트너가 필요하다고 판단이 되었다면 참여의 수준과 재량 위임의 수준을 결정하자. 재량 위임의 범위와 그에 따른 적합한 실행방식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계약관계와 협력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본다면 계약 관계는 결정권한이 발주기관으로 쏠려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재량을 적극적으로 위임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면 기존의 계약방식을 넘어 새로운 협력방식이 필요할 수도 있다. 당장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면 기존 방식을 활용하면서 협력관계라는 상징적 문구나 내용을 계약 서류에 추가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어렵겠지만 행정파트너와 민간파트너 간의 신뢰 관계를 형성하려면 작지만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