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과 협치
사회적 자본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산으로 따지면 무형자산이라고나 할까.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무형적으로 쌓여가며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무언가이다. 사회적 자본에 관해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학자가 로버트 퍼트넘이다. 나 홀로 볼링이라는 책을 통해 사회적 자본의 개념과 중요성을 대중적으로 확산하였다.
로버트 퍼트넘은 사회적 자본 관련 대중서를 여러 권 집필했는데 최근 세 번째 책을 발간하였다. 바로 업스윙이다. 125년 동안의 다양한 통계 자료를 분석하여 사회 현상과 사회적 자본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 책 초반에 다음과 같은 문구와 그래프가 등장한다.
“나-우리-나의 시대”
최근 125년 간의 미국 사회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나-우리-나의 시대라는 것이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도 초중반까지는 개인주의 시대였고, 1900년대 초중반을 넘어가며 공동체주의가 강하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190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들어서는 다시 개인주의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곡선의 추이가 경제 성장을 비롯하여 다양한 사회 현상 추이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매우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적 자본이 잘 축적되었을 때 우리 사회의 다양한 긍정적 측면이 확산된다는 내용을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 사회적 자본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약해지는 이유도 함께 설명하고 있다. 내용을 읽다 보면 비단 미국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개인주의 시대, 개인주의자라는 키워드는 한국사회에서도 부상하고 있다. 이기주의와는 약간 다른 개인주의라는 것이 시대적 키워드가 된 것이다. 요새는 혼자서 밥 먹고, 영화 보고, 여행하고, 커피 마시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1인가구가 전체 인구의 33%가 넘어가고 있는 것도 한 몫하고 있다. 앞으로 이 추세는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다.
개인주의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알렉시 드 토크빌이라고 한다. 1830년대 초반 프랑스 귀족이 정부의 요청을 받아 아메리카를 여행했다. 그의 임무는 미국 감옥 제도를 이해하는 것이었다. 상시 신생 민주국가인 미국의 체제는 유럽 사람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과감한 실험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많은 국가들이 그런 미국에 대해 호기심이 있었고, 토크빌은 그런 의문점을 해소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토크빌은 미국에 있으면서 다양한 장면과 상황에 대해 많은 메모를 하였고, 그 과정에서 공동체주의와 개인주의가 서로 상호 견제하며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한국에서도 몇 년 전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는 책이 화두가 되었다. 판사출신 저자의 개인주의에 대한 생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얻었다. 1인 가구와 개인주의가 시대적 흐름이 된 우리에게 인상적인 여운을 안겨준 책이다.
이렇게 개인주의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혼자 사는 것에 대한 편리함을 많은 사람들이 깨달았다. 자의든 타이든 관계의 피곤함을 겪어본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의 반증일 수도 있겠다. 가까운 나라인 일본도 비슷하다. 개인주의의 장점을 우리보다 다소 앞서 깨달은 것 같다.
하지만 무엇이든 조화가 중요하다. 역사적으로도 중용이라는 가치는 매우 높다. 그렇다면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도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지 않을까? 중용이라는 관점에서는 꽤 설득력 있다. 일본 사회는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가 공존한다고 한다. 일상생활에서는 개인주의가 당연하지만, 국가 등의 위기나 상황이 발생하면 공동체주의가 강하게 발동한다고 한다. 그것이 어느 정도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공존을 추구한다는 것은 살펴볼만하겠다.
사회적 자본은 나-우리-나의 시대에서 우리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나의 시대도 물론 필요하고 장점이 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라는 단어가 완벽하게 사라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다양한 사회 현상도 '우리'의 개념이 필요하다고 가리키고 있다. 물론 그 우리의 범위와 형태는 개개인마다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거스를 수 없는 나의 시대에 어떻게 적절하게 우리를 끼워 넣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드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