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과 협치
사회적 자본의 범위는 매우 넓다.
사람 간의 신뢰도, 공동체 지수, 사회활동의 수준 등 그 종류가 단순하지 않다. 그 가운데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대화’이다. 사람 간의 대화. 우리가 흔히 일상적으로 나누는 사람 간의 대화는 분명한 잠재력과 사회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상호 간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자본이 창출된다는 것은 여러 연구에서 언급되고 있다. 대화를 통해 사람 간의 접촉면을 늘리고,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경험의 공유를 통해 지식과 역량이 향상되고, 사람 간의 신뢰도가 높아진다. 사회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사람들이 경제적 요소보다 정기적인 모임에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처럼 대화는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이지만 그 효과를 만만히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변화가 있다. 흔히 밀레니얼 세대(1986년~1994년)로 접어들면서 스마트폰과 모바일 라이프가 일상이 되었다. 그 이후 일상적 대화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먼저 얼굴 보며 만나서 이야기하는 대화가 줄었다. 많은 밀레니얼 세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 영상통화, 화상회의 등을 통해 소통하고 대화한다. 이 또한 시공간을 초월할 수 있다는 장점과 그로 인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기존에 대화를 하며 사회적 자본을 쌓았던 과정과 다소 차이는 있을 것이다.
대화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학자는 꽤 많다. 많은 심리학자, 사회학자들이 언급하고 있다. 그중에서 영국의 학자 시어도어 젤딘은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옥스퍼드 뮤즈라는 비영리단체를 통해 무작위 사람들에게 신청을 받아 저녁식사와 함께 대화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낯선 사람과의 대화는 사람들에게 꽤 흥미로운 만족감을 주고 있는 듯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밥 먹으면서 수다 떠는 것이 뭐가 좋을까라는 의문도 들지만, 한편으로 낯선 사람과의 수다가 더 편할 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대화, 좀 더 편하게 수다는 삶에서 꽤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수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꼬리에 꼬리를 물며 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대화, 수다에 방향성이 생기면 어떨까? 수다에 주제가 생기면 어떨까? ‘협치의 나날들’에서도 언급했지만 수다에 주제를 잡는다면 그것은 꽤 의미 있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주제가 있는 대화를 좀 어렵게 표현하면 ‘숙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에 우리는 숙의와 공론이라는 표현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숙의와 공론을 간단하게 구분하자면 숙의는 어떤 주제에 대해 좀 더 깊이 대화하는 것이고, 공론은 깊이보다는 더 넓게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런 깊이 있는 대화, 숙의는 조금씩 제도화되고 있다. 새롭게 개정된 지속가능발전기본법에서 정부는 관련 정책과 계획을 수립할 때 다양한 사람들과 숙의,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으고 그것을 반영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정책 영역에서 숙의공론과정이 도입·적용되었지만 ‘숙의’라는 표현이 기본법에 명시화 된 것은 꽤 의미가 있다.
공공정책에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또 하나의 영역이 있다. 바로 계획영역이다. 사실 계획은 모든 정책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틀이다. 모든 정책은 기본계획과 실행계획을 수립하고, 계획에 따라 예산을 집행한다. 이런 측면에서 계획은 매우 중요한 형식이자 틀이다. 이런 계획에도 종류가 있다. 허드슨이라는 학자는 계획을 총 5가지로(종합적, 점진적, 협력적, 옹호적, 급진적) 분류했다.
이 중에서 대화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협력적 계획이다. 대부분의 공공정책 계획은 종합적 계획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협력적 계획은 조사, 분석, 목표 달성이라는 부분에 더해 계획수립과정에서 사람들과의 상호 소통, 교류, 대화를 매우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다. 계획의 평가(목표달성여부)에서도 인간의 존엄성, 협력을 통한 성장 가능성 등 사회적 영향과 효과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협력적 계획을 연구한 패치 힐리 교수는 이런 상호 대화를 통한 성장과 협력의 경험 자체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사회적 자본 축적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협력적 계획의 비중은 높지 않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와 같은 과정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 아직 한국의 공공행정은 이런 과정에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흐름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적 계획 유형인 도시기본계획 수립 과정의 경우에도 시민참여나 협력적 계획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일부 적용되고 있다. 느리지만 앞으로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