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과 협치
인간의 오감 중에서 가장 발달한 감각은 시각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잘 믿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설령 진실이 아니더라도 눈에 잘 보이면 쉽게 마음이 간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어려운 이유도 직관적으로 눈에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때론 눈에 너무 잘 보이는 것일수록 의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일상에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매일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다. 너무나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우리 사회는 결과가 중요하다. 최근 들어 과정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과정이 정당하지 않으면 비판을 받는 경우도 생기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체감하기 쉽지 않다. 특히 보수적이고 트렌드에 민감하지 않은 행정조직에서는 더욱 체감하기 어렵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결과, 특히 숫자가 동반되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중요하다.
이런 측면에서 사회적 자본은 약점이 있다. 사회적 자본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자본은 과정이 중요하고, 과정에서 산출되는 무형의 자산이 핵심이다. 대화와 상호작용, 그 과정에서 형성되는 신뢰 관계, 경험의 공유, 역량의 성장 등이 사회적 자본의 핵심 목표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매우 주관적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를 이해해 달라고 하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 줄까? 글쎄, 아직은 만만치 않다. 협력적 계획이나 시민참여, 민관협력을 정책단위로 진행하면서 이런 정서적 호소를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이브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다.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다. 세상에 쉬운 일은 별로 없다. 아직 우리 사회가 과정에 대한 무형자산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그 시대적 요구에 맞춰야 한다. 숫자가 동반되는 결과물, 어떻게 보면 형식적이겠지만 필요하다면 보여줘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방법이 과연 있을까? 이런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만 언제나 그렇듯 전문가들은 그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마침 우리 사회는 데이터 전성시대가 되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예전에는 측정을 못하던 것들도 측정이 가능해졌다. 30년 전 코펜하겐의 도시설계이론가 얀겔은 공공공간의 활성화를 측정하기 위해 수작업으로 유동인구를 측정했고, 그 이후 CCTV를 통해 유동인구를 측정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GPS 이동데이터를 통해 공공공간의 유동인구를 측정할 수 있다.
무언가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측정을 해야 한다. 기술의 발달을 활용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어렵더라도 측정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호작용의 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협력적 계획의 과정도 측정이 필요하다. 1차원적인 접근이라도 측정을 해야 한다. 몇 년 전 서울시에서 진행한 협력적 계획은 1차적으로 회의 참여자 수를 측정했다. 수많은 회의마다 참여자를 측정하는 것이 귀찮고 어렵지만 과정의 시간이 모이면 기록의 힘이 나타난다. 한 번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하면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참여자의 연령별 추이, 분야적 특성 등의 참여주체 속성에 대한 분석이 가능하고, 월단위 참여 추이 등 시계열 분석도 가능하다. 더불어 지역별 참여 추이와 특성에 대한 비교 분석도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행정조직은 데이터 측정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다. 일단 측정의 과정이 귀찮고, 누군가 그 업무를 지속적으로 담당하는 것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방법을 배워야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도 있을 것이다. 당연히 비용도 동반한다. 그래서인지 행정조직에서 지속적인 측정, 모니터링을 의미 있게 진행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울시 협력적 계획 사례에서도 측정을 시작할 때 아무도 선뜻 동의하지 않았다. 이것을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분석을 할 것인지, 누가 할 것인가에 대해 자신 있는 대답을 못한 것이다. 측정과 분석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행정조직의 조직 운영과 업무 성격 관점에서 보면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 등 많은 선진 사례에서 데이터 측정과 기록에 대해 적지 않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측정을 시작할 때 기억해야 할 부분이 하나 있다. 누군가 측정의 프레임을 짜야한다.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에 대해 꽤 깊게, 시간을 할애하여 고민하는 것이 좋다. 쉽게 말해 조사항목이다.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는 결국 향후에 무엇을 분석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다. 측정을 시작할 때 최종 분석의 프레임이 함께 나와있어야 한다. 측정을 시작하면 중간에 조사항목을 바꾸기 어렵다. 물리적으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바꾸기 전의 측정 데이터의 활용성이 떨어진다. 기껏 오랜 시간 동안 힘들게 데이터를 모았는데 활용이 어렵다면 실망감을 감추기 어려울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떠올리자.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측정은 빠르게 시작하는 것보다 잘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