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자본과 협치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기 때문인지 ‘돈’에 민감하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고, 행복의 결정적 요인이 돈은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유 있는 돈은 삶을 편리하게 한다. 행복 연구 권위자는 돈과 인간이 느끼는 행복감에 대한 연구에서 두 요소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결론은 돈이 행복감에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고, 그 한계를 연봉 10만 달러 정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경제적 관점에서 한 달에 천만 원 정도 수입이 있으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낀다.
어쨌든 우리는 자본에 민감하고, 경제적 숫자를 중시한다. 이것은 공공정책이나 공공사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뉴스 플로우에서 GTX 등 대규모 공공 투자사업의 경우 B/C분석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이다. B/C분석은 사업성의 유무를 판단하는 것인데 1이 넘냐 못 넘냐 가지고 각종 논쟁이 시작된다. 우리는 1을 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공공정책은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사업이기 때문에 그것의 효과에 대해 민감하다. 효과가 정확하게 측정되지 않는다면, 효과의 숫자가 떨어진다면 해당 공공사업은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항상 경제적 효과가 얼마나 되냐에 촉각을 세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자본은 또 불리하다. 사회적 자본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뭐라도 눈에 보이게 측정하고 기록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문제는 측정한 후에 경제적 분석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다.
한 마디로 정성적인 내용을 정량적으로 만들어 분석해야 하는 상황이다. 행복을 예로 들어보자. 행복을 측정하라고? 행복을 측정할 수 있을까? 행복을 어떻게 측정할까?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경제적 효과로 환산하지 않으면 좋으나 싫으나 공공정책에서 예산을 편성, 집행하기는 만만치 않다. 상황이 어쨌든 경제적 분석을 해야 한다.
역시나 누군가 이런 작업을 하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자본,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몇 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해외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을 표현하는 임팩트(impact) 혹은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다양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본격적인 움직임은 ESG와 연계하여 민간기업과 기업 재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SK는 몇 년 전 사회적가치연구원을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를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기업의 ESG를 넘어 비영리단체의 활동에 대한 화폐화도 시도하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화폐화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회투자수익률(SROI), 조건부가치측정법(CVM) 등이 있고, 많은 기관에서 나름의 공식을 적용하여 방법론을 발전시키고 있다. 물론 분석 방법론에 대해 이런저런 논쟁도 있고, 허점이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거의 없다. 대다수의 연구방법론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소한의 한계를 전제하고 분석결과를 해석하는 경우가 많고, 최대한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앞으로는 결과와 더불어 과정이 중요해지는 시대이다. 그리하여 많은 영역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과 사회적 영향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할 것이고, 공공사업에서 창출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그리고 난 후 해당 사회적 가치를 측정하고 경제적으로 환산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이다.
최근 들어 사회적 가치와 화폐화를 키워드로 하는 논문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관련 논문을 발간하고 있다. 사회적 자본(사회적 가치)은 대체로 사회적경제, 시민참여, 민관협력, 비영리활동, 환경, 공동체 등의 영역에서 많이 나타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도시계획, 인프라사업 등에서도 관련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아래 그림은 물리적인 SOC사업(인프라사업)에 대한 사회적 가치 요소를 도출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인프라사업 영역에서도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사회적 가치를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대답은 ‘Yes’이다. 많은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는 동시에, 그것을 경제적으로 환산하여 눈에 보이게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때론 사회적 가치를 꼭 경제적으로 환산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인가? 어쩌면 환산하지 않아야 할 것을 환산하는 것은 아닌가? 사회적 가치의 화폐화가 세상을 더욱 건조하고, 삭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산으로 들어가 살지 않는 이상 현실을 피할 수 없다. 그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고 좀 더 나은 접근을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