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33, 설날에 죽기로 결심했다

by 뜨레

(*픽션입니다)


나는 음력으로 1월 1일 그러니까 설날에 죽기로 결심했다.


이 모든 것은 꿈에서 시작되었다.


내가 평소에 꿀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런 부류의 이상한 꿈이었다.

12월의 어느 날, 아주 평범한 하루였지만, 그 날밤 꾼 그 꿈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한 남자를 보았다.

하얀 정장을 입은 그 남자는 어느새 나의 아파트에 들어와 있었다.

그의 존재, 그의 패션, 그의 모든 것이 이 공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고, 나의 아파트가 마치 전혀 다른 공간으로 느껴질 정도로 위화감을 풍겼다.


그는 처음부터 나를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베란다 창가에 서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천천히 돌아서며 말했다.

"당신은 가야 합니다. 때가 됐어요."


그가 뱉어낸 단어들은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 따로따로 전달되었고, 나는 당장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가 하는 언어가 한국어인지 아니면 다른 언어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약 두 번 정도, 깊게 심호흡을 하고 나자 나는 그의 뜻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짧은 단어들을 느릿느릿 뱉어낸 그 남자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아마 미소를 짓고 있었던 것 같다) 나의 눈을 쳐다보았고 그렇게 나는 꿈에서 깼다.


너무나도 강렬했던 이 꿈 때문에 나는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이내 곧 이것이 답이라 느꼈고, 나는 33살이었던 올해를 마지막으로 나의 인생을 끝내기로 결심했다.


죽기까지 이래저래 준비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니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 양력이 아닌 음력 1월 1일에 죽기로 결심했다.


다음 몇 주는 기억이 흐릿하다.

나는 유언장을 쓰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렸다.

설득을 할 수 없었기에, 일방적인 통보를 했다.

아내는 처음 몇 주간 내 생각을 돌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내 포기했는지 매일 같이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상조회사에 전화해서 견적을 받아보았고, 그 외에도 필요한 장례식 준비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내가 얼마나 아이들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아이들이 행복하기를 원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가족들과 매일 함께 식사를 했고,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결국 올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고, 시계는 12시를 가리켰다.

내 안은 이상하리 만큼 고요했다

나는 이것이 옳은 일이라 믿고 있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베란다로 나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날의 밤하늘은 유난히도 맑았고 공기도 청아했다.


나는 손을 들어 "안녕, 세상아."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뛰어내렸다.


귓가를 스치는 공기들은 고요함으로 가득했고, 세상은 10배쯤 느리게 흘러갔다.

가슴에 야릇한 온기가 느껴짐과 동시에 여태 보았던 그 어떤 것보다 찬란한 빛이 내 눈에 보였다.

그 빛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 빛 속으로 들어갔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쾅하는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나는 온전히 빛으로 감싸였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나는 나의 아파트 베란다 창가에 서서 아름다운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꿈에서 본 그 남자가 서있던 바로 그 위치였다.


내 가슴은 아직도 두근거리고 있었고, 지난 시간들이 환상이었는지, 현실이었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흰 양복을 입은 남자가 지난밤 꿈속에 내가 서있던 바로 그 위치에 서있었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가버렸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밤하늘을 잠시 바라보았고, 이내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더 이상 33살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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