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었다.
뭔가 의욕적으로 시작하려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의 존재감 없다는 채찍질로 한번 고꾸라졌다. 매년 상반기에 실시하는 상사와의 면담에서, 열심히는 하는 것 같은데 윗사람들이 보기에 뭔가 뚜렷한 특징이나 눈에 띄는 점이 없다는 거다. 앞으로 50대가 돼서 소위 '확 꺾어지기' 전에 마지막 피치를 가하라는 충고였는데 나는 그만 힘이 빠지고 말았다. 상사 입장에서는 독려지만 당사자가 느끼기에는 회심의 일격이었다. 100m 출발선에서 엉덩이를 막 쳐들려는 순간 걷어차 인 것처럼.
계절은 초여름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힘을 내서 다시 흰색 선에 섰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차려 자세를 취하자마자 이번에는 냉방병에 걸려 한 달간 골골 거려 다시 주저앉아야 했다. 더위에 치명적인 방송 장비를 위해 에어컨을 팡팡 틀어대는 스튜디오에서 장시간 무리한 결과였다.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을 하고, 팟캐스트 낭독 및 편집에 다른 아나운서들의 낭독 녹음까지 도맡아 엔지니어 역할까지 하려니 몸이 버티지 못했다.
어느 날은 오전에 컨디션이 최악인 상태에서 먹은 감기약이 탈이 나더니 급기야 오후에 있던 TV 프로그램 녹화를 하다가 뛰쳐나가고 말았다. 식은땀이 흐르며 눈앞이 빙빙 돌더니 속이 메슥거려 마이크를 찬 채로 화장실에 급하게 다녀와야 했다. 창피하게도 속을 게워내는 소리가 리시버를 찬 카메라 감독님들에게 고스란히 들렸으리라. 24년 방송 경력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녹화방송이었기에 망정이지 생방송이었다면 더 큰일로 이어질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쉬엄쉬엄 한 달을 보낸 후 한여름에 들어섰다.
다시 정신이 든 순간 결정타가 날아왔다. 대결을 신청하며 소파에서 몸을 날린 미취학 아들 녀석과의 충돌로 오른쪽 발톱이 뒤집어진 것이다. 그걸로 끝나면 별일 아니라 애써 무시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작은 불행도 연달아 이어지니 은근히 힘이 커졌다. 불편한 오른발을 대신해 절뚝거리며 열심히 다니던 왼쪽 발마저 넘어져 인대가 찢어지는 손상을 입었다. 오른쪽 발은 드레싱 한 붕대를 감고, 왼쪽 발에는 깁스를 한 우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왜 무언가를 의욕적으로 시작하면 꼭 일이 터질까?' 뭘 해도 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하늘의 게시일까? 아님 이런 거 가지고 동기부여가 사그라지고 동력을 잃어버리는 나 자신이 너무 나약한 건 아닐까?'
우울한 마음에 자책감까지 더해졌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파고들어 복잡해졌고 몸보다 마음의 컨디션이 더 땅으로 꺼질 듯 가라앉았다. 존재감 없다는 상사의 평가에 냉방병 그리고 연이은 부상. 하늘의 뜻이라면 세 번 아니 네 번이나 주의를 줬으니 이쯤 되면 그만 둘 법하다. 어차피 열심히 하나 안 하나 회사에서 존재감도 없다는데 대충 다니고 대충 월급 받으면서 살자 싶은 생각도 들었다(녹록지 않은 현실에 무지한 나만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내가 올해 들삼재라더니 삼재라 그런가? 뭐든 어설프게 할 거면 아예 하지 말라는 의미인가?'
싶으면서도 가만히 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이대로 있으면 심신이 편하고 여유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더 처지고 퍼질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도 정말 눈치가 없는 편인데 이번에는 하늘의 계시든 운명의 장난이든 삼재든, 아예 눈치를 보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살던 대로 살아야 하는 법. 발톱이 뒤집어져 드레싱을 하느라 샤워를 제대로 못 한 2주를 넘기자마자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반깁스를 한 왼발 때문에 타이트한 운동복으로 갈아입기가 불편하니 끝단이 헐렁한 반바지를 입었다. 한번 들린 오른쪽 엄지발톱을 탈지면과 일회용 밴드로 단단히 동여맨 채 맨발로 절뚝거리면서 사내 헬스장을 다시 출입했다. 운동은 행여 다시 넘어질까 봐 재활 및 상체운동을 중심으로 살살 시작하고 샤워 역시 미끄러질까 발목 보호대를 착용한 채 조심조심했다. 아침마다 헬스장에서 만나는 분들이 깁스 투혼이라며 농담을 건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잘 낫지 않을 거라며 우스갯소리도 했다.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점차 가라앉았던 기분이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답답한 마음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울분을 어디엔가 토해내고 싶었는지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글쓰기만큼 안전한 것도 없다. 글이 떠오르지 않을 때 마냥 깜빡이는 커서를 보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글을 쓰는 동안은 어디 넘어지거나 다치지 않는다. 게다가 꼼짝없이 침대에만 앉거나 누워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서는 그나마 자유로운 양팔과 손을 사용해서 얼마든지 써 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내친김에 13년 전쯤인가 개설만 해 놓고 방치해둔 블로그에 급하게 프로필 사진을 띄우고 자기소개 글을 작성했다. pc를 사용할 수 없을 때는 블루투스로 연결된 키보드가 휴대전화 화면을 모니터로 쓸 수 있어 아쉬운 대로 쓸만했다. 그리고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들이 보내준 사연에 답한 내용들, 현재 답답한 심경들, 책에서 읽은 보물 같은 글귀들, 앞으로의 계획까지 구분 없이 닥치는 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법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분다.
내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들에게 고맙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글쓰기는 안전하다.
독서가 위안이 되고 책 읽기가 이끈 글쓰기는 치유가 되어준다.
우연히 발견한 글쓰기 플랫폼 덕분에 시간이 흐른다.
힘겹게 느릿느릿 지나가는 올 한 해.
겨울에는 행여 로또처럼 나에게도 작가가 되는 행운이 찾아와 줄까 기대도 살짝 해본다.
여전히 눈치는 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