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단식? 내가 한 번 해보지!

아널드 홍 외 지음, 한국경제신문

간헐적 단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예외 없는 규칙은 없다고, 해서는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채 안된 임산부는 간헐적 단식을 하면 심각한 부작용을 겪을 수 있다.

적어도 내 경험에 의하면.


1. 난임


결혼한 지 13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

늦은 출산이었고 한 번의 아픔이 있었기에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도 안심할 수 없었다.


뒤늦은 임신은 의학기술의 힘을 빌려야 했고 한 달에 몇 번씩 두꺼운 바늘을 아랫배에 찔러 넣어야 했다.

어느 날은 사내 연수에서 조별 체험활동으로 팀원들이 다 같이 손수 만든 제기를 차다가도 화장실로 쪼르르 달려가 챙겨 온 주사기를 시간에 맞춰 놓은 적이 있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의사가 정해 준 날짜에 하필이면 자정 이후까지 이어지는 선거 개표방송이 걸려 아쉽지만 다음 달을 기약하기도 했다. 난임 부부를 위한 건물이 따로 마련된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방송 카메라가 들이닥친 적도 있다. 취재 차 온 아는 얼굴들이었고 당황한 나는 들키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알은체를 하기는커녕 뒤쪽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나를 후배 여기자는 센스 있게 모른 척해주었다.


그렇게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꽤 오랜 기간 여러 차례 병원을 들락거렸지만 결과는 늘 신통치 않았다.

진작에 건의한 인공수정을 남편은 망설이고 있었다. 주변에 시험관 시술로 쌍둥이를 얻은 선배가 있는데

두 아이 중 한 명이 불행히도 자폐 증상이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대로는 몸이 너무 힘들고 지쳐 포기할 것만 같았고 남편은 입양을 언급했지만, 내 삶도 책임 못 지고 있는 나는 자신이 없었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아이 아빠는 결심을 했고 시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과는 첫 번에 성공. 확률이 희박해 로또에 당첨되기보다 더 힘들단다.

축하 인사와 함께 나는 난임 병동에서 산부인과 병동으로 이관되었고 최고령 산모라 특수 검사를 안내받았다. 잠깐의 고민 끝에 검사를 받지 않기로 했다. 아이가 어떤 상태이든 존재 자체로 내가 책임질 수 있는 한, 사랑을 듬뿍 주고 싶었기에 굳이 결과를 알 필요가 없었다. 결과를 안다고 한들 임신부가 취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성별을 알게 된 날은 친구처럼 지낼 딸이 아니라 살짝 실망도 하고 아이 아빠는 본인 같은 녀석이 나올까 심란한 마음에 혼자 못 마시는 술도 마셨단다. 6개월간 이어진 고된 입덧으로 임신 초기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 놓지 않은 채 정차해 놓은 가로수 차가 슬금슬금 후진해 내 차를 들이받는 바람에 핸들에 부딪힌 풍선만 한 배를 안고 근처 산부인과로 급히 뛰어간 적도 있다. 우회전을 하며 좁은 골목길로 진입하자마자 주인 없는 가로수 차가 떡하니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뒤차는 바짝 다가와 있었으며, 바로 옆쪽에는 마주 오던 차가 지나가고 있어 옴짝달싹 할 수 없었다.

다행히 아이는 무사했다. 뱃속 양수가 일종의 쿠션 역할을 해줬단다.


2. 출산


마침내 출산 날짜와 시간이 잡혔다. 너무나 오래 기다렸고 너무나 어렵게 얻은 아이라, 건강상 문제는 없다지만 자연분만에 자신이 없었다. 두 눈 가득 실핏줄이 터질 건 뻔했고 난산이 쉽게 예상됐다. 분만실에 들어가는 대신 수술대 위에 누웠다.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둘 중에 하나를 살려야 하는 극적인 상황도 예상해 봤다.

당연히 아이였다. 진작 가족들에게 미리 당부해 둘 걸. 아차 싶었다. 부분마취와 전신마취 중 후자를 선택했기에 간호사가 인공호흡기를 씌우려고 했다. 갑자기 호흡이 가빠지며 가슴이 답답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청한 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르려 애썼다. 그리고 그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뜨니 몸이 몹시 추워 사시나무 떨 듯 떨렸고 주변에 사람들 소리가 와글와글했다.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 사람들은 다른 일로 매우 분주한 듯했고 내 옆을 바삐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입 밖으로 말을 내뱉을 힘조차 없었다. 바들바들 떨며 겨우 온몸에 남은 힘을 겨우 끌어모아 모기만 한 소리로 외쳤다. "추....... 추워요......."


나중에 엄마가 말씀하시길, 수술실 너머 건너편 보호자 대기실 쪽으로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단다. 간호사가 신생아용 침대에 갓난아이를 태우고 나오는데 손뼉 치며 좋아하는 엄마, 아빠와는 대조적으로 아이 아빠는 뚱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더란다. 애초에 아이가 간절했던 것도 아니니, 원래 그러려니,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와 나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한참 후에 아이 아빠가 입을 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를 데리고 간호사가 향하는 곳은 당연히 신생아실이다. 그런데 신생아 실로 곧장 들어가지 못하는 햇아기도 있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상태가 좋지 않아 NICU라고 하는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집중 검사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이다. 아이 아빠는 대기 장소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는 신생아 실과 왼편에 있는 집중치료실 중 간호사가 과연 어느 쪽으로 침대를 향할지 끝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아가가 신생아 실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단다. 정작 산모인 나는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의사 선생님의 도움으로 아이는 편하게 낳았지만 그 이후가 고생이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해 모유 수유 타이밍을 놓쳤고 아이를 돌보기보다 내 몸을 회복하는 게 우선이 되었다. 3.24kg 아이가 몸에서 빠져나왔는데 몸무게는 단 2kg만 줄었다. 나머지는 붓기와 부종이 채웠다. 아이 아빠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퉁퉁 부은 발을 주물러 주기도 했지만 수면양말을 신은 두 발은 성인 남자용 넉넉한 슬리퍼 앞쪽을 꽉 채우고도 넘쳤다.


3. 간헐적 단식의 나쁜 예


뒤늦게 만난 아이라 임신 초기부터 출산 후 몸매는 아예 생각지 않기로 했다.

젖병만 찾는 아이 때문에 모유 수유 대신 유축 수유를 하며 살 빼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직 한 달 반쯤 전부터 슬슬 원상복구를 하고 싶어 졌다. 한창 간헐적 단식 바람이 불고 있었다. 16시간만 참으면 된다는데 새벽형 인간이니 점심을 왕창 먹고 저녁을 굶은 뒤 다음 아침을 기다리면 되겠다 싶었다. 새벽 일찍 눈을 떴는데 아침 시간까지 한참 남았다 싶으면 동네를 산보 삼아 걷기도 했다. 초여름이라 해는 일찍 떴다. 장차 다닐 어린이집 답사도 겸했다. 태아 때부터 신청해 놓아야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해서 관할 구 내에 어린이집이란 어린이집은 있는 대로 다 신청했는데, 정작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려 골목을 누비는 재미도 있었다.


간헐적 단식과 공복 산책은 효과가 빨랐다. 임신 막바지 몸무게에서 앞자리가 한번 바뀌었고 복직 무렵에는 앞자리가 한 번 더 바뀌어 임신 전보다 더 날씬해졌다는 동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복직하자마자 예전에 하던 새벽 라디오를 다시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해 믹스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PD와 DJ를 겸했다. 작가는 있었지만 워낙 이른 시간이라 메일로 원고와 정리된 사연만 받고 스튜디오에는 혼자 들어갔다.


간헐적 단식은 아침 커피와 점심 한 끼 폭식으로 이어갔고 몸무게는 49kg에서 1kg이 더 빠졌다.

나름대로 내 생애 최저치와 타이기록이었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뭔가 좀 이상했다. 피가 머리까지 잘 올라오지 않는 듯 눈 앞이 깜깜해질 때가 많았다.

전기가 끊긴 전구 같기도 했고 접촉이 불량한 퓨즈 같기도 했다. 걷다가 자꾸 허리가 접혀서 복도를 걷다가도 벽에 손을 짚어야 했다.


한여름이라 모기가 극성인지 집에서 내 다리만 무는 듯했다. 긁어도 긁어도 가려움증은 그치지 않았고 다리에는 온통 피딱지가 앉았다. 알고 보니 집안에 모기는 없었다. 모기가 있었다면 나보다는 체온이 높고 살이 연한 아기를 먼저 공격했을 텐데 아기 피부는 깨끗했다.


가려움증은 점점 심해져 온 몸으로 퍼졌다. 특히 다리와 팔이 심했는데 의외로 잘 가려울 법한 살이 접히는 부분이라던가 관절이 꺾이는 부위는 정도가 그나마 덜했다. 너무 이상해서 피부과를 찾아가 약을 먹고, 가장 독하다는 피부과 주사도 맞아봤다. 몇 번을 지속했는데도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은 선배 산모는 없었다.


사내 의무실을 찾아갔더니 한의원을 소개해주었다. 맥을 짚어본 한의사는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소양증이었다. 맥도 너무 약해서 잘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건강을 크게 해칠 수 있다며 한약을 처방해 주었다. 하루 세 번, 3주 치를 우선 지었다.


그때가 마침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시기였다. 해외출장을 갈 필요는 없었지만 매일 출퇴근도 할 수 없어 갓난아기를 엄마에게 맡기고 3주 치 짐을 쌌다. 국내라 딱히 모자랄 것도 아쉬울 것도 없어 짐은 가벼웠지만 문제는 그만큼의 한약이었다. 양도 많은 데다가 무게도 엄청났다. 먹기 좋게 담겨 있었지만 진액이라 행여 터질까 일명 뽁뽁이라 불리는 에어캡으로 63개의 진공 파우치를 포장했다. 부피가 더 커져서 이민가방에 옷가지와 같이 담았다. 인천 IBC(각 나라 중계진들이 모여 방송 제작, 출연 및 송출하는 곳)에 도착하니 예상대로 내 짐가방만 거대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냉장고에 한약 파우치를 채웠다. 아파트에 방이 3개라 세 명이 나눠 쓰는 형태였는데, 그나마 냉장고가 커서 다행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인천에서 한약을 먹기 위해 밥 세끼를 꼬박꼬박 먹고, 챙겨간 한약도 빠짐없이 먹었다. 동료들과 외식도 하고 해설진들과 야식도 먹고, 회식 때는 못하는 술도 한두 번 마셨다. 살은 금방 붙었고 몸도 어느새 좋아져 있었다. 더 이상 가렵지도 어지럽지도 않았다.


어차피 출장 가면 밥 세끼 챙겨 먹을 텐데, 한약을 먹지 않아도 될 뻔했다. 한약이 큰 역할을 했을 텐데 막상 낫고 보니 약은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돈 들여서 다시 찌울 거라면 굳이 힘들게 굶지 않아도 될 뻔했다.

헛고생을 했다.


하지만 살을 한번 빼보았으니 언제라도 살을 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은 건졌다. 더불어 간헐적 단식은 그야말로 어쩌다 잠깐잠깐 할 뿐 오래 지속하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을 거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4. 편견을 깬 저자들


그래서 <간헐적 단식? 내가 한번 해 보지!>는 처음부터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간헐적 단식을 하다가 크게 한번 덴 데다가, 저자가 세명이라니 이른바 몸짱 트레이너들이 before& after 사진 보여주며 나 따라 해 봐요 요렇게로 시작해서 으쌰 으쌰 로 끝맺는 전형적인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그리고 가슴으로 느끼고 발로 실천하는 독서를 어설프게 실행하려다 보니 읽으면 반드시 간헐적 단식을 다시 해야만 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 사실 간헐적 단식의 후유증을 크게 겪고도 살을 급하게 빼야 할 때면 살짝살짝 다시 시도해보곤 했다. 효과는 좋았으니 건강검진이나 사내 다이어트 이벤트 때 임박해서 목표 숫자만 맞추고 금방 중단하면 되겠거니 싶어서였다. 하지만 간헐적 단식도 두세 번 반복하니 효과가 없었다. 몸도 간헐적 단식에 면역력이 생기는 건지, 어지럽기만 하고 몸무게는 당최 빠질 생각을 안 했다.


먹을 적마다 16시간 이후를 계산하려 시계를 쳐다봐야 하고, 시간 안에 한 입이라도 더 먹으려 꾸역꾸역 폭식을 하고, 잘못하면 건강을 도리어 해칠 수 있고, 이제는 효과마저 기대할 수 없는 간헐적 단식은 그렇게 나와 상관없는 다이어트가 되어갔다.


간헐적 단식에 대한 오만과 편견 때문에 진입장벽이 키보다 높아졌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그 오해는 평생 갔을 것이다. 책은 망치처럼 무지에서 비롯한 오해를 하나하나 깨기 시작했다.


우선, 앞서 밝힌 대로 간헐적 단식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시작하기 전, 반드시 사전 점검할 항목이 있다.

한창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 극심한 영양실조나 저체중, 대사질환자, 배가 불러오는 임신부 그리고 아이를 낳은 지 1년이 채 안된 모유수유부 등은 해서는 안된다. 진작 이 체크리스트 마지막에 해당되는 줄 알았더라면 아마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 돌잔치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막상 다이어트는 오히려 쉽다는 사실이었다. 유지가 어려운 것이지.

실제로 살을 뺀 후 요요현상을 없애려면 최소한 6개월이 필요하기에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사람은 많아도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사람은 그중에 0.2%에 불과하다고 한다.


간헐적 단식을 빙자한 간헐적 폭식 때문에 먹어도 먹어도 허전하고 아쉬웠다. 열량만 섭취했지 몸이 필요한 영양소가 결핍되어 몸에서는 계속 아직 나는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는 거였단다. 인스턴트식품, 액상과당과 msg가 들어간 음식이 나쁜 이유와 이후 간헐적 단식이 효과가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됐다.


더불어 다이어트에는 인슐린 수치가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스러웠다. 인슐린의 양보다 빈도가 중요한데, 적게 먹어도 살이 찌는 게 이상하다면 자주 먹어서 그런 건 아닌지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 무릎을 탁 치게 했다.


그리고.......

꼭 16시간 동안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었다!

16시간이 부담되면 우선 10시간부터 차근차근 시간을 늘려가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면 6시간이나 남는 셈인데, 그 시간이면 굳이 한 끼를 굶을 필요 없이 간단히 원하는 걸 더 먹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하루쯤 참지 못했다고 해서 지레 포기하거나 자책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이 아니라면 내일부터 다시 시작해도 괜찮았다. 무리할 필요가 없으니 단기간에 치고 빠져야 하는 억지 다이어트가 아니라 평생을 두고 쉬엄쉬엄 실행할 수 있는 식이요법이었다. 기록 경신의 부담을 가지고 뛰는 전력질주가 아니라 날씨 좋을 때 나가고 내키지 않으면 집에서 빈둥거려도 되는 가벼운 산책 같은 거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게 힘이라더니. 알고 나니 막연한 불안감과 편견이 사라졌다. 한번 제대로 해 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아울러 그렇고 그런 몸짱들의 자랑 책이라고 성급히 단정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울 만큼 저자들의 이야기는 진솔하고 감동적이었다. 나는 이제 그들의 팬이다. 책 소개 영상을 sns에 올리고서 저자들의 감사인사를 답글로 받았다.


유튜브에 책을 소개하면서 나도 이제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부담감을 털어버리고 나니 긴장감도 사라졌는지 간헐적 단식을 해야 한다는 사실마저 자주 잊는다. 이제 글로도 적고 있으니 지금보다는 훨씬 덜 깜빡할 수 있을 것이다.


5. 불사조가 되려면


그런데 우리는 간헐적 단식을 굳이 왜 해야 할까? 10시간이든 16시간이든 왜 공복을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


나는 이유를 시르투인(Sirtuin)에서 찾았다. 장수 유전자의 정식 명칭인데, 공복 상태에서 노화를 억제하는 다양한 기능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살도 빼고 젊게 살 수도 있다면, 그리고 간헐적 단식이 나에게 맞는다면 미루거나 마다할 이유는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벌써부터 엄마 죽으면 어떡하냐는 아이에게 걱정 말라고, 엄마는 불사조라고 큰소리쳤는데, 아이에게 마음의 짐을 보태지 않으려면 두 주먹 불끈 쥐고 당장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다!


가만있자. 저녁을 5시 반쯤 가볍게 먹었으니 내일 아침은 열 시간이 지난 새벽 세시 반 이후로 아무 때나 먹으면 되겠다. 커피에 우유를 탄 부드러운 라테로 가볍게 공복을 깨야지. 정말 부담 없겠는 걸?


p.s. 현재 몸무게는 내 생애 최저치와 매우 동어져 있다(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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