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 곰곰이 따져보니 원인은 당시 담임 선생님에게 있었다. 선생님을 집에서는 '이모'라고 부르는 조카딸이 반장이고 공주였던 반에서, 일하느라 바쁜 엄마를 모셔오지 않는다고 조용한 나를 사고뭉치라고 칭했던 담임선생님.
개구쟁이 짝꿍과 말 수 없는 나는 사이가 좋았다.
'자연'시간이었던가 과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살아있는 개구리를 2인 1조로 관찰해야 했다. 투명한 직육면체 모양의 통속에 제법 큰 개구리가 한 마리씩 들어있었고 역시 투명한 덮개는 손으로 쓱 밀면 스르륵 열리는 구조였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짝 녀석이 뚜껑을 확 밀어버리자 개구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뛰어올랐고 나는 깜짝 놀라 '악'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그때도 이미 연세가 제법 있어 머리에 흰 가루가 내렸던 선생님은 "누구야?" 엄하게 소리치셨다. 그렇지 않아도 선생님 때문에 주눅이 들어있던 아이들은 이내 조용해졌다. 선생님은 소리를 지른 장본인이 나임을 알아채고는 비아냥대듯 말씀하셨다. "으이그, 저 사고뭉치."
수업시간에 누군가 놀라 소리를 질렀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선생님이라면, 사고뭉치라고 내쏘기 전에 무슨 일이냐고, 괜찮냐고 물어봤어야 한다. 그 후에 누가 그랬냐고, 그러면 안된다고, 생명을 다루는 관찰 시간이니 장난치지 말고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고 타일렀어야 한다. 밑도 끝도 없이 사고뭉치라니. 놀란 가슴은 이내 알 수 없는 서러움과 섭섭함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어떤 해명이나 항변도 하지 못했다. 나이가 어려서였는지 내성적인 성격 탓이었는지 입 다물고 고개 숙인 채 영문모를 상처만 끌어안았다.
한 번은 일기 쓰기 검사를 받는 날이었다. 새로운 필기구 '샤프'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내가 샤프펜슬을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을 것이다. 가는 흑색 심을 넣고 몸통 끝부분을 누르면 심이 조금씩 밀려 나오는 모습이 신기해서 연필을 제쳐두고 숙제할 때마다 애용했다. 숙제나 일기 검사를 받는 날은 각자 과제물의 해당 페이지를 편 채로 일렬로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는 했다. 드디어 내 차례.
한참 내용을 살펴보시던 선생님은 방백인지 독백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리시고는 도장을 꾹 눌러 찍으셨다.
"얘는 글씨는 잘 쓰는데, 글씨가 춤을 추네, 춤을 춰. 엄마 모셔와야겠네."
가는 샤프심은 종이를 지르밟지 못하고 오히려 종이에 치인다.
'연필로 꾹꾹 눌러쓰지 않고 샤프펜슬을 써서 그러신 건가?'
창피했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잘못은 했지만 학교에 엄마가 소환될 정도는 아닌 듯 한 생각도 설핏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말씀드렸다.
엄마가 학교로 찾아간 건 그 며칠 후였던 것 같다. 바빠서 아이에게 소홀했노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었을 것이고 담임 선생님은 아니라고 인사치레를 하면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그리고 대화뿐 아니라 다른 것도 오갔을 것이다. 지금은 꿈도 못 꿀 일이지만 당시는 관행이었다. 그 관행이라는 걸 지키지 않아 장사하느라 정신없던 엄마는 학교로 불려 갔고 나는 그때까지 정서적 학대를 당했다.
사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오시자마자 정신없이 잠드는 엄마에게 학교일은 말하지 못하고 있었다. 개구리 사건, 일기장 사건 그리고 미술시간에 바다를 초록색으로 그렸다고 지청구를 들은 사건 등등까지도.
그러는 동안 소심한 10살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말과 눈빛들이 여과 없이 속을 파고들었고 몸속 곳곳에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눈알을 빼놓을 듯 후벼 파고 치아를 깨부수고 위를 쥐어짜서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게 만들었다. 나중에는 빈 속에 쓴 물만 넘어왔다. 귓속에서는 쉴 새 없이 일개 대대가 행군을 했다. 저벅저벅 군화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자려고 이불을 덮으면 천장이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어렸을 때는 그게 스트레스인 줄 모르고, 요즘 말로 언어폭력인 줄도 모르고 선생님께 모진 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파 아이야."만 했었다.
증상이 심해지자 엄마는 뇌에 혹시 무슨 병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하시면서 병원에 데려가셨다.
나는 머리에 이상한 집게를 잔뜩 꽂고 정밀검사도 받았다. 물론 의사 선생님이, "아픈 아이가 이렇게 통통할 수는 없어요."라는 말로 안심시켜 주시기는 했지만. 그 후로도 증상은 나아지지 않고 고3 수험생 때는 극에 달해 조퇴를 밥먹듯이 해야 했다.
물론 지극히 일부 선생님들 이야기고 나만의 특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몰랐으면 더 좋았을 일, 겪지 않았더라면 다행스러웠을 일은 신체적 고통으로 남아 끈덕지게 수십 년을 들러붙어 있었다. 입사하고 한참을 지난 서른 중반까지도.
2. 수카와 두카
<요가매트만큼의 세계>에서 소개한 개념, 수카와 두카.
산스크리트어로 각각 좋은 공간과 나쁜 공간을 의미한다. 허약하거나 경직된 내 몸의 두카를 발견해 해소하면 이르게 되는 수카의 경지. 우리의 신체로부터 클레샤 즉 고통을 식별해 제거함으로써 성취되는 행복, 기쁨, 편안함, 축복의 상태. 요가는 두카에서 수카로 이르는 과정이란다.
그런 심오한 의미는 잘 몰랐지만 요가를 만난 건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수십 년을 괴롭히던 두통에서 마침내 해방되었다.
당시에 유행하던 요가 비디오를 구입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그 후에는 사내 고수의 재능기부로 역시 점심시간을 활용해 삼삼오오 모여 동작을 익혔다. 숨을 내쉬며 마음속 찌꺼기를 조금씩 내뱉었다. 잔뜩 들어갔던 힘이 빠지며 손끝과 발끝이 만나고 가슴이 바닥에 닿았다. 끝나면 다 같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조용조용 담소를 나누었다. 무리 없이 편안하며 자연스러웠다.
점차 찌릿찌릿했던 정수리가 진정되고 뻐근했던 뒷덜미가 잠잠해졌다. 안구의 밑부분까지 파고들었던 고통은 눈이 다소 침침한 수준으로까지 올라섰고 치통도 완화됐다. 어깨의 담은 견딜 만 해졌고 묵직했던 허리는 파스를 붙이지 않아도 되었다. 늘 차디찬 손발 끝도 조금은 온기가 돌았고 푸르뎅뎅했던 입술은 약간의 생기를 찾은 것도 같았다.
두카 쪽에서 수카 쪽으로 한 발짝 이동하니 생활의 질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책 저자에 비하면 내 수준은 요가라고 할 수도 없는 스트레칭 정도였지만 이제 더 이상 어디 가든 두통약과 검은 비닐봉지를 애써 챙길 필요가 없어졌다. 일생의 은인 같은 요가에 대한 내 불만은 딱 한 가지다.
"왜 이제야 왔니? 왜 이렇게 늦게 안거니, 우리?"
3. 오르가슴
총 42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다가 27장 수카와 두카를 지나 28장 '무엇을 행복이라 부를까'에 이르렀을 때다. 행복을 오르가슴에 빗댄 내용이었다. 순간 눈이 동그레 졌다가 흠칫 눈알을 굴러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들의 눈치를 살폈다. 평소 책을 읽고 있으면 갑자기 책을 확 잡아채서 관심을 유도하거나 책과 손 사이 공간에 머리를 밀어 올려 뭘 읽나 재빠르게 살피고는 하니 별안간 긴장이 됐다.
자칫하다가는 "엄마 오르가슴이 뭐야?"
아이는 고개를 쑥 들이밀며 난데없이 물어볼 것이고,
당황한 내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재빠르게 유추를 시작할 것이다.
"여자의 가슴이 유방이니까 오르가슴은....... 그럼 남자 가슴이야?"
호기심 많은 7살은 분명 가만히 있지 않고
"제가 엄마 책에서 읽은 낱말인데요......" 하며 가족과 일가친척들에게 오르가슴이 뭐냐고 묻거나,
"여자의 가슴을 보통 유방이라고 하죠. 그럼 오르가슴은 누구 가슴이게요?"
심지어 아는 척 퀴즈를 내며 토론을 벌일 것이다.
자칫하면 큰 파장과 후유증이 예상된다. 안되지 안 돼. 절레절레. 아들은 장난감 조립에 정신이 없었고 다행히 대처 가능한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오르가슴은 섹스, 포르노그라피와 더불어 굳이 선행학습을 안 해도 되는 개념 군이다. 얼른 페이지를 넘겨 다음 장, 또 그 다음장으로 넘어갔다.
4. 짧아도 내 몸
'그러니까 몸은 마음으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에둘러 가지 않고 헤매지 않고 자신을 곧장 만나기 위해 호흡하고 몸을 움직인다. 이것이 거창할 것 없는 요가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러 가는 가장 확실하고 빠른 길이다.' (39장 203p)
요가를 하다 보면 비루하고 볼 품 없는 몸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기보다는 안쓰러움이 생긴다. 그리고 그 측은지심은 이내 고마움으로 바뀐다. 그동안 내 마음을 이고 지고 살아줘서 애썼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부탁한다고 한없이 머리를 조아리게 된다.
몸이 찌뿌드드할 때면, 전날 격한 운동으로 몸이 지친다 싶을 때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매트 위에 앉는다. 요가인지 스트레칭인지 알 수 없는 동작을 천천히 진행하다 보면 어느새 옆 매트에는 한 자리씩 차지한 사람들이 각자의 세계에 빠져 열심이다.
한 때는 다리를 벌린 박쥐 자세, 엉덩이를 쳐든 개 자세, 가슴을 젖힌 물고기 자세 등이 민망하다며 다른 곳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는 입사 동기 오빠의 진심 어린 오지랖도 있었다. 어차피 큰 공간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니 남성들의 눈을 피해 여자 탈의실에 임시 매트를 깔 까도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당당해 지기로 했다. 하는 사람이 그러려니 하면 보는 사람도 어느새 그러려니 하기 마련이다. 요즘은 식전 댓바람부터 더 민망한 자세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누가 내 인생의 8할은 바람이었다고 한다면 나는 내 두통의 8할은 요가가 고쳤다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