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시행으로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맡는 일요 낮 뉴스는 10분짜리라 단독 진행이다.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날이 흐리거나 유난히 검은 화면에 흰 글씨가 번지는 프롬프터를 만나면 잘 안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심할 줄이야.
첫 리포트 기사가 나가는 짧은 시간 동안 프롬프터를 장착한 방송 카메라는 바짝 앞으로 다가왔다.
1. 내 눈의 유통기한
요 몇 주 이상하다. 새벽 운전할 때 불빛이 퍼지고 방송할 때 커닝하는 프롬프터가 뿌였게 흐리다.
뉴스는 혼자라 프롬프터를 당기면 되지만 이틀 뒤 같이 진행하는 옴부즈맨 프로그램 <열린 tv 시청자 세상>은 사정을 얘기하고 남자 진행자에게 양해를 구해야 한다. 스스럼없이 오케이 해 주시겠지만 후배가 아닌 한참 위 선배에게 부탁하려니 어쩐지 민망하다.
지난주에도 왠지 잘 보이지 않아,
"부장님, 프롬프터가 좀 흐리지 않아요?"
살짝 물었더니,
"아니, 난 괜찮은데?"
하시길래 오래 쳐다보면 초점이 흐려져서 그런가 싶었더랬다. 그리고는 눈에 더 힘을 주었고, 잘 보이지 않는 부분은 미리 내용 파악을 한 덕분으로 어림짐작하며 구렁이 담을 넘었다.
'작년에는 그래도 시력이 괜찮았는데, 노안도 오려면 아직이라는데, 너무 무리를 해서 그런가? 일시적이겠지? 라식 수술받은 게 한참이라 이제 때가 된 건가?' 이런저런 원인을 나름대로 궁리해 보며 퇴근 후에 아이가 하원 하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같이 손잡고 안과를 찾았다.
내년에 초등학생이 되는 아이는 왼쪽 시력이 여전히 잘 나오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지켜보자고, 입학 전 2월에 다시 오라고 하셨다. 아이 아빠도 아이 엄마인 나도 시력이 좋지 않다. 아이가 안경 쓰는 걸 환영할 부모는 이 세상에 없다. 심란하다.
이제는 내 차례. 안 해도 된다는 노안 검사까지 굳이 우겨서 받고는 끝났다 싶었는데, 간호사가 암실로 안내해서 이런저런 눈 피곤한 검사도 더 받은 뒤였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15년도 더 전에 받은 라식 수술은 이제 그 역할을 다했다고 했다. 멀리 있는 걸 잘 보이게 교정을 하면 나중에 가까이 있는 게 잘 보이지 않아 당황할 수 있다고 했다. 에둘러 말해서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는데 결국 시력도 떨어졌고 노안도 초기라는 말 같다. 시력이야 원체 나빴으니 한숨 한번 쉬면 그만일 수도 있는데 암실 검사 결과가 조금 불안했다. 왼쪽 눈이 내 얼굴만 하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는데, 누가 안구에 거미줄을 쳐 놓은 것 같았다. 해마다 추적 관찰이 필요한데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오면 수술로 걷어내야 한단다. 약물과 주사로는 소용이 없다면서. 이렇게 글로 넋두리할 줄 알았으면 거미줄 같은 게 뭔지, 무슨 증상인지, 병명은 있는 건지 정확한 용어나 물어볼 걸 그랬다. '내 왼쪽 눈 거미줄의 정체. 넌 뭐니?'
더 심란해졌다.
시력 검사 결과지와 인공눈물 처방을 받아 들고 아이를 집으로 들여보낸 뒤 동네 안경점으로 향했다. 못 보던 점원이 친절하게 인사한다. 키도 늘씬하고 얼굴도 참 예쁘다. 어차피 일할 때는 못 쓰고 안전을 위해 운전할 때만 쓸 거라 소프트 렌즈 대신 제일 싼 안경테를 주문했다. 부장님의 배려를 전제로.
2. 안경 앵커의 원조는 나야 나
돌이켜보면 항상 눈이 문제였다. 입사하자마자 주말 뉴스를 맡았을 때도, 뉴스 연습을 시켜야 한다는 선배들의 의견에 주중 매일 뉴스를 이어 겸했을 때도 예민한 눈은 렌즈를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눈이 불편하니 눈 깜빡임이 심했다. 신입사원이 눈까지 바쁘게 깜빡이니 더 긴장하는 듯 보였을 것이다. 하드 렌즈가 조금 부작용이 덜하다고 해서 끼었더니 방송 내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설상가상으로 눈이 좀 불편해 보이는 선배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다가 아폴로 눈병인지 결막염인지 하여튼 눈병까지 옮았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한쪽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가렵더니만 증상은 다른 쪽 눈까지 침범했다.
"네가 숙주야."
짓궂은 남자 선배들의 놀림에 눈병을 옮긴 선배는 미안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씩씩대며 나를 분장실로 호출했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니 본인도 그런 말 듣기가 억울했을 거다. 갓 들어온 막내가 그런 말을 퍼뜨리고 다닐 리는 없는데도 만만한 나를 붙잡아 분풀이를 했다. 나 역시 꿀 먹은 곰돌이 푸우처럼 두 손을 공손히 배꼽 위에 포개고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새내기였으니.
옛날 옛적 이야기다.
눈이 붓고 얼굴도 부었다. 렌즈를 낄 수 없어 안경을 쓰고 일단 뉴스를 진행했다. 20세기 옛날 사람들에게는 당시 tv 뉴스를 남성도 아닌 여성이, 안경을 끼고 나온다는 것 자체가 용납이 안됐나 보다. 시청자분들은 잠잠했는데 막상 한 카메라 감독님이 사내 게시판에 비난의 글을 올렸다.
'다른 여자 아나운서들은 시청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애쓰는데,
새파란 신입사원이 수수깡 같은 안경을 뒤집어쓰고.......'
회사는 발칵 뒤집혔고 눈병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3주 후에는 뉴스 진행자의 전면 교체가 이뤄졌다.
다 옛날 옛적 이야기다.
타 방송사 여성 아나운서의 안경 진행이 한때 큰 화제가 되었다. 여성 앵커의 안경 소품이 '나태함'이나 '게으름', '안일함'이 아닌 '동등함', '당당함', '신선함'으로 다가서기까지 한 20년쯤 걸린 것 같다.
그 후배 아나운서가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괜히 친근하다.
'요즘은 안경 안 쓰네? 사실 안경 진행의 원조는 이 언니란다.'
3. 나이 듦에 대하여
입사 초기 때는 조금이라도 얼굴이 작아 보이게 카메라를 멀리, 아주 멀리 줌 아웃해 주기를 바랐는데, 줌 아웃에서 줌 인을 바라게 되면 그때부터는 확실한 시니어가 된다.
'노화는 이처럼 누구나 일찌감치 자각하는 것이다. 노화를 자각하면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되고, 강한 열등감이 생긴다고 아들러는 지적한다(189p).'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행복해질 용기>에서도 개인 심리학자 아들러의 말을 인용했다.
'나이 들면 젊었을 때보다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럴 때일수록 잃어버린 젊음을 한탄만 하지 말고, 자신이 어떤 형태로 주변 사람에게 공헌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기 바란다. 이전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알리려고 할 필요는 없다. 특별한 일을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가치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191p).'
4. 입은 닫고 지갑을 여는 용기
미모의 점원은 저렴한 테를 요구했음에도 먼저 가볍고 비싼 안경테를 보여주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거 말고 얼굴도 작으신데 안경테 한 치수 작은 거 고르세요. 안경알이 커지면 단가도 높아져요."
'어, 기분이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는 안과에서도 알려주지 않은 이런저런 시력 관련 전문지식을 알려주며 신뢰감을 쌓은 뒤,
"어머 30대인 줄 알았어요, 동안이시네요."
이 결정적 한마디에 30만 원을 바로 긁었다. 일시불로.
'소중한 내 눈인데 이 정도 투자는 해야겠지.'
나는 처음부터 낚일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지만 위안은 돈으로 살 수 있다.
아들러의 말처럼 행복해지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더불어 약간의 돈도 필요하다.
직원의 입 발린 칭찬을 고마워하며 기꺼이 바가지를 쓰려면.
어깨 처진 후배에게 단백질 보충이라도 해주려면.
재수해서 대학 들어간 조카에게 술값이라도 넉넉히 주려면.
p.s. 안경테를 큰 사이즈로 할 걸 그랬다. 걸을 때 안경알 속 세상과 안경 바깥세상이 동시에 보이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