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회복 선언문

맛소금으로 귀신 쫓는 현대인에 관하여

by 안녕 굿데이

인류는 달에 로켓을 쏘아 올리고 스마트폰으로 전 세계와 연결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어떠한가. 기껏해야 상갓집에 다녀오면 현관 앞에서 소금을 뿌려야 직성이 풀리는, 구석기시대의 샤머니즘을 뇌 한구석에 간직한 존재다.

지인의 부친상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온 날 밤, 내 안의 구석기인은 현대 문명에게 강력히 요구했다.


"소금을 뿌려라. 그렇지 않으면 악귀가 붙을 것이다."


나는 이 비과학적인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동네슈퍼에 들어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진열대는 가혹했다. 악귀를 퇴치한다는 '천일염'은 3kg짜리 대용량 자루에 담겨 있었다. 그건 소금이 아니라 둔기였다. 그걸 들고 귀신을 내쫓기 전에 내 팔목 인대가 먼저 나갈 판이었다.

그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문명의 혜택, '맛소금'이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크기, 2,500원.


동네슈퍼라 그런지 생각보다 가격은 있었지만, 둔기 같은 천일염 자루를 사는 것보단 훨씬 합리적인 투자였다. 게다가 정제염에 L-글루탐산나트륨을 배합한 이 하얀 가루는 천일염보다 왠지 더 세련돼 보였다.


'귀신도 시대가 변했으니 변하지 않았을까? 소금보다는 맛소금 쪽이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나는 천일염의 숭고한 정화 능력 대신 맛소금의 실용성을 택했다. 이것은 미신과 화학조미료의 기묘한 타협이었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관성의 노예다.

소금을 뿌려야 한다는 뇌의 명령이 발끝까지 전달되기도 전에, 내 몸은 이미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 안으로 침투해 버렸다.


센서 등이 켜지고 신발장 거울에 내 모습이 비친 뒤에야 손에 들린 작고 귀여운 맛소금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아, 맞다. 소금."

이미 늦었다. 나는 신발을 신은 채 현관 타일 위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뒤에는 굳게 닫힌 현관문, 앞에는 거실로 이어지는 중문.


그 짧은 정적 속에서 서늘한 딜레마가 피어올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만약 어떤 '존재'가 내 등에 업혀 따라왔다면, 녀석은 이미 나와 함께 '세이프 존'을 통과한 것이다. 이 좁고 밀폐된 현관이라는 큐브 안에, 나와 그 녀석이 단둘이 오붓하게 서 있는 셈이다.


그때, 센서 등이 툭 꺼졌다. 암흑.


나는 허우적대며 팔을 휘저어 다시 불을 켰다. 등 뒤가 서늘했다. 녀석이 내 뒤통수에 대고 입맛을 다시고 있을 것만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공포를 이기기 위해 나는 급히 맛소금 봉지를 뜯었다. 툭, 하고 봉지가 뜯기자 아주 고운 입자가 하얗게 날렸다.


퇴마의 비장함보다는 계란프라이나 삼겹살을 찍어 먹어야 할 것 같은, 아주 익숙하고 인공적인 비주얼이었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현관문 앞바닥에 맛소금으로 굵은 선을 그었다. 그리고 뒤돌아 거실로 들어가는 중문 앞에도 하얀 가루로 선을 그었다. 내친김에 좌우 벽까지 꼼꼼하게 막았다. 현관 1평을 맛소금으로 네모나게 둘러쳐버린 것이다.

다 뿌리고 나서 허리를 펴고 바닥을 내려다보는데, 기묘한 반전이 일어났다.

마치 고기를 재우듯 정성스럽게 뿌려진 맛소금 라인 안에 갇힌 공간.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있을 보이지 않는 존재. 상황을 다시 해석해 보니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잠깐, 이러면... 쟤가 갇힌 거잖아?"


방금 전까지는 내가 갇힌 줄 알고 무서웠는데, 선을 긋고 나니 입장이 뒤바뀌었다. 혹시 따라왔을지도 모를 그 무언가는 이제 밖으로도 못 나가고, 집 안으로도 못 들어온다. 현관문(입구)과 중문(출구)이 모두 막힌 1평짜리 감옥에 영원히 격리된 것이다.

이것은 퇴마가 아니다. 전술적인 '포위'이자 '감금'이다.

녀석이 신발장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빠져나갈 구멍을 찾다가 맛소금 입자나 구경하고 있을 거라 상상하니 웃음이 터졌다. 귀신 입장에서 얼마나 황당할까. 기껏 따라왔더니 사방이 MSG 결계라니.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라."


나는 승리자의 여유를 부리며 중문을 넘었다. 문을 닫는 내 손길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미신을 지키려다 가성비를 따졌고, 실수를 덮으려다 엉뚱한 결계를 쳤다.


하지만 덕분에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무서운 존재를 '현관에 갇힌 가엾은 셋방살이'로 전락시킨 나만의 논리. 역시 문명인은 도구를 사용해야 한다. 비록 그것이 2,500원짜리 맛소금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