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르바나(열반)로 가는 고속도로 위의 샤우팅
어린 시절, 국립공원 입구와 대형 사찰 밑 상가들은 마치 거대한 담합이라도 한 듯 기묘한 상품 구성을 보여주곤 했다.
정체불명의 칡즙과 효자손, 그리고 형형색색의 등산용 손수건 사이. 가장 눈에 띄는 매대에는 언제나 마음의 소리니 무소유의 길이니 하는 카세트테이프들이 탑처럼 쌓여 있었다.
그 테이프들의 레퍼토리는 거기서 거기였다. 깊은 동굴에서 녹음한 듯 울림이 과한 성우의 목소리가 깔리고, 그 뒤로 졸음을 유발하는 단조로운 대금 소리가 흐른다.
“탐내지 마십시오… 성내지 마십시오… 물처럼 바람처럼 흘러가십시오….”
듣고 있으면 당장이라도 속세를 등지고 산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 그 해탈의 바이브가 당시 우리 집안의 공식 BGM이었다.
우리 친가는 일 년에 제사만 여섯 번을 모시는, 유교의 하드웨어에 불교의 소프트웨어를 깐 기이한 집안이었다.
큰아버지의 승용차 룸미러에는 언제나 왕방울만 한 염주가 대롱거렸는데, 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염주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부딪히는 딱, 딱 소리는 마치 목탁 소리 같았다. 그리고 오디오 데크에는 언제나 마음의 소리 전집이 꽂혀 있었다.
사건은 벌초를 위해 서울에서 경남 합천 깡촌으로 향하던 경부고속도로 위에서 터졌다. 장장 5시간이 넘는 고행길. 운전대를 잡은 큰아버지와 조수석의 큰어머니 사이에 심상치 않은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발단은 사소했으나 전개는 블록버스터급이었다. 경상도 사나이 특유의 단답형 짜증으로 시작된 대화는 곧 큰아버지의 일방적인 데시벨 독주로 변질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기괴한 풍경이었다.
차 안 스피커 4 채널에서는 세상 온화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인의 허물을 보지 말고, 내 안의 거울을 닦으십시오..."
하지만 내 눈앞의 타인(큰아버지)은 거울을 닦기는커녕, 액셀을 밟으며 성대를 갈아 끼운 듯한 고함을 내지르고 계셨다.
"아니, 문둥이 자슥이 말귀를 못 알아묵나! 내가 저번에 머라 캤노!"
스피커 속 성인은 자비와 용서를 설파하는데, 운전석의 속인은 분노와 심판을 집행하고 있는 형국.
이것은 흡사 템플스테이 현장에서 헤비메탈 록 페스티벌이 열린 꼴이었다. 이 아수라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뒷좌석의 풍경이었다.
큰아버지의 샤우팅이 한계치를 넘어 ‘삑사리’ 직전의 고음으로 치솟을 때마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양옆을 지키고 있는 사촌 형과 누나는 달랐다. 그들은 이미 이 전쟁터의 베테랑이었다. 아버지가 고함을 지르든 말든, 스피커에서 피리 소리가 나든 말든, 그들은 세상 지루한 표정으로 창밖의 논두렁만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달리는 차 안에서 영혼만 쏙 빼놓은 사람들처럼,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건 테이프 속 성우도, 운전석의 큰아버지도 아닌, 저 무심한 남매였다. 그야말로 조기 교육이 낳은 생활형 해탈의 경지였다.
이 블랙 코미디의 압권은 테이프의 A면이 끝나는 찰나였다.
‘탁-’ 하고 오디오가 멈췄다.
차 안에는 오직 엔진 소리와 큰아버지의 씩씩거리는 거친 숨소리만이 남았다. 나는 그 짧은 정적이 이 광란의 질주를 멈추게 할 브레이크가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큰아버지의 ‘화’는 멈춤 버튼이 고장 난 폭주기관차였다.
큰아버지는 핏대를 세워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시선은 전방을 주시하며 오른손으로 아주 능숙하게 이젝트 버튼을 눌렀다.
테이프가 툭 튀어나왔다.
큰아버지는 고함을 멈추지 않으셨다.
"니가 그래서 안 되는 기라! 어!"
큰아버지의 손은 마치 독립된 자아를 가진 기계처럼, 혹은 숙련된 DJ처럼 테이프를 뒤집어 다시 밀어 넣었다.
‘철컥.’
기계적인 마찰음과 함께 테이프가 돌아갔고, 스피커에서는 다시금 평화로운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음을 비우면 세상이 맑아집니다..."
"시끄럽다! 치아라 마!"
큰아버지는 B면의 가르침을 배경음악 삼아 더욱 신명 나게 화를 내셨다. 그 무심하고도 정확한 손놀림.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이 아니라, 그저 소음을 소음으로 덮기 위한 필사적인 방어기제가 아녔을까.
그날 어린 나는 뒷좌석에서 생각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한 종족이라고. 머리로는 석가모니를 모시면서, 입으로는 아수라장을 만드는 저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싶었다.
하지만 그 모순의 유전자가 내 몸에도 선명히 새겨져 있음을 확인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껴 있다. 내 귀에는 최신형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이 꽂혀 있다. 재생 목록에서는 ‘출근길,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뇌과학 명상’ 따위의 팟캐스트가 흐른다. 유창한 멘토가 속삭인다.
“오늘 하루도 긍정의 에너지로 채우세요. 당신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내 눈은 내 앞을 가로막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앞사람의 백팩을 째려보고 있고, 내 손가락은 거래처의 무리한 요구에 분노하며 비속어가 섞인 카톡을 친구에게 전송하고 있다.
“이런, 미친 X들이 아침부터...”
이어폰 속 멘토는 ‘긍정’을 말하는데, 내 엄지손가락은 ‘저주’를 퍼붓는다. 큰아버지의 카세트테이프가 스마트폰 앱으로, 염주가 애플워치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토씨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때 큰아버지가 그 테이프를 끈질기게 틀어놓았던 이유를.
그것은 도를 닦기 위한 경전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핸들을 꺾어버리고 싶고, 홧김에 들이박고 싶은 짐승 같은 본능을 그나마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정신적 안전벨트이자 진정제였던 것이다. 그거라도 틀어놓지 않으면 정말로 폭발해 버릴까 봐 두려웠던, 가장의 처절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모순적이다.
마음이 평온해서 명상을 듣는 게 아니다. 속이 시끄러우니까,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고 싶으니까, 그 누구나 다아는 좋은 이야기 입발린 소리라도 귀에 때려 박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오늘도 간신히, 미치지 않고 하루를 버텨낸다.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팟캐스트를 끄고, 전투적으로 인파를 헤치며 뛰어나갔다.
어쩌면 오늘 퇴근길엔 나도 유튜브를 켜고 큰아버지처럼 외칠지 모르겠다.
“아, 힐링 영상 썸네일 한번 더럽게 예쁘네! 다 비켜!”
우리는 그렇게, 인생의 B면을 향해 또다시 테이프를 뒤집으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