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共存)의 시대(時代)를 살다.

PROLOGUE

by ziwoopa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는 책가방을 던져놓 이내 밖으로 뛰어나간다.

하얀 고무신을 신고 나간 아이가 비가 오는대도 아랑곳하지 않고 친구들과 골목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나뭇가지를 휘젓고 있다. 비가 오기 전 기어 나온 애꿎은 대형 지렁이가 필사의 몸부림으로 도망치고 있다.


지렁이 놀이도 지쳤는지 아이들은 자치기를 한다. 원을 그려 놓고 그 안에 45도 비스듬히 모를 깎은 새끼자를 놓고는 긴 막대(자치기의 자를 재는 기준)로 끝을 톡 쳐서 떠오른 새끼자를 야구하듯이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다. 길게 홈을 파 새끼자를 가로로 올려놓고 긴 막대로 힘껏 밀어 띄우기도 한다.


그마저도 심드렁해진 아이들은 해가 질 때까지 북악 스카이웨이 길 옆 산을 놀이터 삼아 전쟁놀이 등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다 배가 고파지면 집으로 들어갔다.


TV 정규방송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라디오가 유일한 즐길거리였다. 성우들이 실감 나게 펼쳐내는 어린이 삼국지를 들으면서 조조의 패악질에 화를 내고 장비가 목이 잘려 귀신이 되어 나타났을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슬퍼하기도 했다.


오성과 한음 인형극이 시작되면서부터는 엄마와의 실랑이가 시작된다. 숙제를 언제 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인류의 영원한 난제로 남아있다.


저녁 9시.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야 한다는 아줌마의 낮은 목소리와 배경음악알 수 없는 공포감과 의무감을 불러 일으킨다. 마침내 이 나라의 모든 아이들이 일제히 새나라의 역군이 되기위해 잠을 청한다.



70년대의 흔한 풍경이라고 하기에는 시대가 좀 더 멀리 느껴진다. 비슷한 시기에 유년기를 보냈던 사람들을 바라보는 8~90년대 세대의 시각이기도 하다. 반면 5~60년대를 관통했던 세대들은 이 중간에 낀 세대들과의 여러 가지 추억들을 공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한 마디씩 꼭 던진다.


니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한국동란이 끝난 지 불과 20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 빠른 경제성장과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도시는 고층빌딩과 현대화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사실 그 빌딩 뒤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던 골목 안 아이들의 모습은 잊힌 듯했다.


하얀 고무신, 흙바닥, 자치기 등 이 단어들이 열거된 동네가 바로 성북동 한 복판이었다. 성북동 비둘기 <김광섭/ 1968년> 덕분에 이미 부자동네로 유명해진 성북동 산자락 그늘에는 판자촌이라 불려도 좋은 그런 집들이 있었다. 그 사이사이 골목을 콧물 자욱이 선명한 옷소매를 휘날리며 흙속에 묻혀있던 서울성곽 위를 뛰어놀던 아이들이 분명히 있었다는 걸 기록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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