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른 추억
봄이 잠깐 오려나 싶었다. 자연은 그런 조급한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남녘에 눈을 뿌렸다. 눈에 대한 추억은 관련 검색어처럼 그렇게 소환되었다.
91년 3월. 6주간의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로 이동했다. 서울에서 멀지도 않은 의정부(양주)였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날씨는 전방에 온듯한 느낌이었다. 부대는 2주 후에 있을 팀스피릿 훈련 준비로 분주했다. 전투장비들을 점검하면서 부대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훈련에 대비하고 있었다.
훈련 1주일 전 일과 후 정비 시간. 3월임에도 눈발이 약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지금은 사라진 조별 활동이 시작되었다. 아직 병아리인 나는 전투 화조(전투화 정리 및 닦기) 중에서도 막내였다. 침상 밑에 있던 전투화들을 꺼내 중대 막사 앞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전투화 조장 앞에 신속하게 정렬시켰다. 소대 내에서도 짬밥별로 조가 나뉘어 있고, 그 조안에서도 다시 짬밥 순으로 역할이 분담되어있었다. 그 사실을 숙지하지 못하고 있던 나는 전투화 하나를 들고 닦을 준비를 했다. 개인별로 지급된 구두약은 이미 소대 구두통에 모두 모아져 있었고, 난 그중에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고 구둣솔로 힘차게 약을 찍었다.
순간!! 내 주위가 물속에 잠긴듯한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 내 위 선임들 얼굴은 그야말로 사색이 되어갔다. 전투 화조 막내의 역할은 재활용 칫솔로 흙이나 먼지를 털어내는 일뿐이었다. 그 위 선임은 구두약을 살짝 찍어서 골고루 전투화에 바르고, 그 위 선임은 구둣솔로 약이 스며들 때까지 닦고, 또 그 위에 선임이 광솔로 윤이 나기 직전까지 닦아놓으면 제일 위 조장이 헝겊을 손가락에 감고 마지막 물광을 냈다.
화가 난 위 x범 분대장(조장) 잎으로 불려 나가 훈계를 듣던 나는 조인트를 까였다. 심하게 차인건 아니었다. 전투화 코가 내 정강이뼈를 톡! 찼을 뿐이었다. 그래도 운동복 바지 위로 찍힌 정강이뼈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날 점호가 끝난 후 내 위 선임들은 교육 미비라는 이유로 한 따까리를 거하게 하고 나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정강이 뼈 중간이 빨갛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팀스피릿 훈련 출발 전날에는 발등 위부터 무를 아래까지 부어 올라 절뚝거리며 지대에 치료를 받으러 갔다. 군인들만 걸린다는 전설의 '봉와직염'. 비타민 부족으로 인해 상처가 아물지 않고 곪아 버리는 병이다. 처치는 간단(?)했다. 상처 중심부위 딱지를 들어내고 치약 짜듯이 고름을 짜냈다. 피부는 이미 눌러도 복원이 안될 만큼 심각한 상태였다. 고름이 빠진 공간에 거즈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진주햄 소시지 굵기의 헝겊이 다 들어갔다. 마취도 없이 비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공포의 2시간여를 보낸 후 소대로 내려와 밤새 끙끙 앓았다.
훈련 출발 아침.
일명 열외 없다는 부대장의 지시로 나 역시 완전군장에 전투화 끈도 못 묶은 채로 연병장에 집합했다. 선임들은 내심 걱정하는 눈빛이었지만 죽을 각오로 이를 악물로 괜찮은 척했다. 중학생 때 포경수술받다가 마취가 깨서 바늘이 생살을 뚫는 경험을 한 이후로 최대의 위기였다. 눈 까지 내리기 시작했다.
양주에서 덕정역까지 도보로 이동 후 탑승한 기차는 눈발을 뚫고 여주에 도착했다. 그 이후로 여주, 이천 지역에서 2주 동안 훈련을 받으며 매일 20km 이상 행군을 했다. 전투화 끈도 풀어놓고 찬 바람에 바지를 걷고 걸어가는 모습에 선임들도 어느 정도 감동을 받은 거 같았지만 나는 죽을 맛이었다. 다행이랄지 추운 날씨라 상처가 덧나지는 않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아물면서 피부는 검게 변했다. 다리에 열이 날 때면 눈으로 덮어서 식혔고, 푹푹 빠지는 눈 속에서 정강이는 하몽하몽처럼 숙성이 되어갔다.
훈련이 끝나고 거의 150km에 달하는 대망의 복귀 행군이 시작되었다. 2주 내내 멈추지 않던 눈이 야속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눈은 통증을 잊게도 해주었다.
그렇게 91년 3월의 눈은 행군로와 훈련지와 숙영지 텐트를 묻어버릴 기세로 내렸고, 내 다리 위에도 내려 열을 식혀주던 천연 치료약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 서울에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남아있는 정강이뼈 중간의 동전만 한 흉터는 눈이 내리는 날이면 살짝 간지럼을 느낀다. 군 제대 25년이 지난 오늘 추억은 눈과 간지럼과 함께 그렇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