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참치덥밥, 부추스크램블
이 세상에 현존하는 여자 중에서 나와 가장 닮은 사람을 찾아보겠다.
먼저 '닮았다'의 기준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 봐야 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역시 외모다.
그런데 외모를 기준으로 삼아보자니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대학 시절, 오랜만에 만난 중학교 친구가 휴대폰을 내밀며 사진 한 장을 보여준 적이 있다.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학교 남자 선배 중에 나와 너무 닮은 사람이 있어서 보여주려고 일부러 찍어두었다는 것이다.
얼마나 닮았길래 이 난리인가 싶어 친구의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사진 속에는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담겨 있었다.
그 옆모습이 영락없는 내 얼굴이었다.
내가 놀라는 모습을 보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친구들이 휴대폰을 빼앗아 돌려보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닮은 건가 하고 갸웃거릴 법도 했지만 그런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친구들은 사진 속 인물과 같은 각도로 얼굴을 돌려보라고 했다.
나는 그 신기한 순간을 즐기듯 얼떨결에 지시에 따랐다.
진짜 똑같다는 말들만 들렸다.
그 순간을 생각해보면 사람은 어딘가에 서로가 서로의 복제품처럼 보일 만한 누군가를 하나쯤 두고 살아갈지 모른다.
그러니 외모만을 기준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여자가 살고 있고, 내가 모르는 여자가 내가 아는 여자보다 훨씬 많다.
어딘가에는 나와 똑 닮았지만 성별만 다른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다.
설령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모든 여자를 줄 세워 놓고 눈의 크기와 코의 길이를 재가며 '나와 닮은 순위'를 매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쯤 되면 연구라기보다 범죄에 가까워질 것이다.
일단 범위를 조금 줄여보기로 했다.
내가 아는 여자들 중에서 가장 나와 닮은 사람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이 경우 유력한 후보가 하나 있다.
바로 동생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하나 있다.
동생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쌍꺼풀 수술을 했다.
앞트임에 뒷트임까지 하고 거기에 AS까지 받았다.
어떤 얼굴로 닮음을 판단해야 할까.
태어난 그대로의 얼굴일까.
아니면 인공의 미가 더해져 조금 더 또렷해진 지금의 얼굴일까.
이제 단순히 닮은 사람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인 고민이 되어 버린다.
외적인 것만으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
그래서 다른 요인도 고려해보기로 했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내적인 기준을 수치로 살펴보기로 한 것이다.
유전자 이야기다.
이 세상에서 나와 유전자가 가장 비슷한 여자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엄마다.
부모와 자식은 평균적으로 약 50퍼센트의 DNA를 공유한다.
형제자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같은 부모에게서 유전자를 나눠 받았다면 DNA 공유율은 평균적으로 약 5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아침드라마 시나리오 같은, 내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없다면 나와 동생 역시 여기에 속한다.
다만 이때는 50퍼센트라는 숫자에 큰 변동성이 생긴다.
유전자는 마치 사다리타기를 하듯 부모에게서 무작위로 나뉘어 전달되기 때문에 실제 DNA 공유율은 30퍼센트대에서 60퍼센트대까지 꽤 넓게 나타난다고 한다.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났어도 어떤 유전자를 받았느냐에 따라 형제자매의 유전적 유사도는 제법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제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면 흥미로운 일도 종종 생긴다.
친형제가 검사를 했는데도 결과 해석에서는 이복형제의 가능성이나, 심지어 삼촌과 조카 관계일 가능성까지 언급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은 단순히 유전자 분포가 그렇게 나타난 것일 뿐이니 그 결과 하나로 가족회의를 열 필요까지는 없다.
'닮음'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복잡한 개념이라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외적인 부분에서는 동생에게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내적인 부분, 즉 유전자에서는 엄마와 동생이 1등과 2등을 다투는 구조다.
두 항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판정을 내려 보기로 했다.
나와 가장 닮은 여자는 동생이다.
닮았는데 성별은 다르다는 데서 오는 이질감 때문인지, 아니면 인간이 본능적으로 생물학적 다양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동생을 예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아마 대부분의 남매가 그럴 것이다.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자라며 서로의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너무 많이 봐버렸다.
어릴 때의 투닥거림과 사소한 말싸움, 서로의 흑역사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보니 외모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기회 자체가 별로 없다.
그래서인지 남매 사이에서는 외모에 대한 칭찬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한 번은 어떤 여자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친오빠가 진짜 잘생겼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인터뷰 기사에는 비슷한 댓글이 끝없이 달렸다.
여동생이 인정한 거면 진짜 잘생긴 거다.
남매가 인정하면 그건 진짜다.
나는 그 댓글들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남매 사이에서 외모를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넘기 힘든 허들을 통과했다는 뜻이다.
웬만한 외모로는 그 관문을 통과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늘, 유전자가 만들어낸 그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 발생했다.
동생이 예뻐 보였다.
무대 왼편에 서 있던 사회자가 마이크를 들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조명이 환하게 내려오는 무대 위에서 흰 드레스를 입고 부케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이 있었다.
그 빛을 온전히 받고 서 있는 동생의 모습이 남매 사이의 외모 평가 기준을 가볍게 넘어섰다.
오늘 동생은 결혼을 했다.
혼인 서약을 읽는 목소리는 여전히 어릴 때처럼 어딘가 애티가 남아 있었고, 식이 진행되는 중간중간 신랑과 티격티격하는 모습으로 하객들의 웃음을 끌어내기도 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명랑쾌활'이라는 표현이 6년 내내 등장했던 동생답다.
결혼식이 끝으로 다가갈 무렵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있었다.
동생은 엄마 아빠에게 인사를 하고 포옹을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을 법한 "고마워요, 잘 살게요" 같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배고파."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 집 막내라는 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이제 동생은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한 가정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여자가 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드레스를 입은 동생의 팔뚝은 평소보다 조금 더 얇아 보였다.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에 나름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다이어트를 했을 것이다.
지난주에 만났을 때도 다이어트 중이라 저녁은 같이 못 먹는다고 했으니 말이다.
그 다이어트라는 것은 동생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같은 날을 위해 나도 몸을 가볍게 만들어 왔다.
이미 여러 이유로 고생하고 있는 지구가 우리를 떠받치는 데 조금이라도 덜 힘들도록 노력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사랑'이라는 단어의 자음과 모음이 다시 배열되어 '살아'라는 형태로도 나에게 흡수되었다.
살아. 살아. 내 살들아.
이번에는 그 살들과 잠시 작별을 해야 했다.
동생의 결혼식에서, 내 결혼식 때 맞추었던 예복을 다시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약 5킬로그램 정도를 떠나보냈다.
20대 시절에는 '오늘부터 살을 빼야겠다'라고 마음먹는 순간 이미 3킬로그램 정도는 빠지고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식단을 조절해야 살이 겨우 조금씩 빠지는 나이가 되었다.
다이어트 기간 동안 가장 맛있게 먹었던 메뉴는 양배추참치덮밥이었다.
팬에 기름을 아주 살짝 두르고 채 썬 양배추를 넣어 익힌다.
양배추가 숨이 죽기 시작하면 참치와 당근을 넣는다.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리고 굴소스로 간을 맞춰 볶아 준다.
마지막으로 계란을 넣어 익히면 고소한 향이 올라온다.
이걸 현미잡곡밥 위에 올리면 양배추참치덮밥이 완성된다.
반찬도 하나 더 곁들였다.
부추 스크램블이었다.
팬에 새우와 파를 먼저 볶아 향을 낸다.
그다음 계란과 굴소스를 넣어 부드럽게 스크램블을 만든다.
계란이 거의 익어 갈 즈음 마지막으로 부추를 넣고 한 번만 가볍게 섞어 마무리했다.
부부가 되어 많은 것을 함께 나눈다.
당연히 식사도 함께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같은 식탁에서 같은 음식을 먹는데 살은 왜 나에게만 더 성실하게 쌓이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닮은 여자를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이어트 식단마저 함께 먹는 것이 부부다.
아내도 함께 먹었다.
누군가가 옆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이어트는 조금 덜 외로운 일이 된다.
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 나니 오후 세 시쯤이었다.
피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침대와 한 몸이 된 채 네 시간을 보냈다.
눈을 뜨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아들과 며느리가 친척 어르신들께 인사드리고, 피로연장에서 음식을 담아다 가져다 드리느라 고생했다며 든든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오늘 하루가 비로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우리 가족에게는 든든한 식구가 한 명 더 생겼고, 동생에게는 평생 같은 식사를 함께할 사람이 생겼다.
지금쯤 동생은 신혼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 있을 것이다.
오늘을 위해 조금 가볍게 만든 몸에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행복을 가득 채우며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오기를 바란다.
아내의 후기
양배추참치덮밥
★5.0점
현미와 잡곡으로 지은 밥 위에 양배추, 당근, 참치, 계란을 볶아 올린 건강식 덮밥인데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습니다.
양배추 덕분에 은근히 포만감도 있어서 좋았고, 전체적으로 건강식임에도 만족스럽게 맛있어서 즐겁게 먹었습니다.
부추스크램블
★5.0점
계란, 새우, 부추로 만든 다이어트 요리인데도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부추의 아삭한 식감, 새우의 탱글한 식감, 계란의 부드러운 식감이 잘 어우러져 식감의 조화가 특히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