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야끼치킨버거, 양파링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놀라운 순간이 있다.
거창한 일을 해낸 건 아니지만, 하루치 체력을 전부 탕진해버린 초라한 저녁이었다.
온종일 쌓인 피로가 나라는 사람 전체를 통째로 짓누른 듯했다.
내가 피곤한 건지, 피곤이 나를 살고 있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아내는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먼저 잠자리에 들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누운다는 건 참 신기한 행위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맞이하는 자세니까.
가장 편한 자세를 찾는 동안 나도 모르게 끙끙 소리가 흘러나왔다.
잘 눕기 위한 어쩌면 하루를 내려놓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왼쪽으로 돌아누워 볼까, 베개를 한 번 더 접어볼까, 이불을 살짝 걷어볼까.
그러다 문득, 언제였는지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렸다.
자세를 완벽하게 찾았던 건지, 아니면 포기하고 쓰러진 건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세포 하나하나 오직 회복에만 몰두했는지 꿈조차 끼어들 틈이 없는 단단한 잠이었다.
그러다 눈을 떴다.
이상하게도 허전함이 먼저 밀려왔다.
옆으로 손을 뻗어보니 있어야 할 온기가 없었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아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 내가 잠깐 잠들었나 보다.
아직 자료를 정리하고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잠깐 눈을 붙였다고 하기에는 완벽이 회복된 몸이 이질적이었다.
이건 잠깐의 휴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상태였다.
온몸의 구석구석이 이미 정비를 마치고,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상한 느낌이 들어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침이었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출근하는 날도 종종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질적인 건 내 몸의 회복 상태가 아니라 비어 있는 옆자리였다.
거실로 나가보니 아내는 소파에 누워 있었다.
담요를 대충 끌어다 덮은 채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누가 봐도 최상의 자세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깊이 잠들어 있었다.
깨울 수는 없었다.
조용히 샤워를 하고 거실로 돌아오니 아내는 막 잠에서 빠져나오려는 사람처럼 뒤척이고 있었다.
잠과 현실 사이 어딘가에서 천천히 아침으로 건너오고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잠에서 완전히 빠져나온 아내에게 물었다.
"왜 방에서 안 자고 소파에서 잤어?"
아내는 아직 덜 깬 목소리로 너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오빠 예민하잖아. 너무 피곤해 보이길래. 내가 들어갔다가 깨울까 봐. 그냥 여기서 잤어."
말을 마치고는 다시 눈을 비비며 하품을 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 표정이었다.
"자다가 깰 수도 있지. 다음부턴 그냥 들어와서 자. 고마워."
어젯밤 내가 깊이 잠들어 있던 그 시간에 아내는 이미 오늘 아침의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방금까지 누렸던 깊은 잠의 이유는 온전히 아내 덕분인 것이었다.
그제야 전날 밤의 아내를 떠올린다.
어젯밤 출발한 아내의 마음을 나는 아침이 되어서야 비로소 받아든 셈이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과거와 미래가 만난다.
우리는 모두 첫 걸음마를 떼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누군가의 팔에 기대어, 누군가의 밤을 대신 깎아 먹으며.
우리는 태어난 순간부터 기억하지 못할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그 보살핌을 건넸던 사람들은 이 아이가 이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편지를 매일같이 써 내려가는 사람처럼 마음을 건넸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억으로 살아온 것이 아니라, 기억되지 않은 마음들 위에서 살아온 건지도 모른다.
아내의 그 마음 역시 끝내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저 소파에서 잠들었나 보다 하고 넘겼을 수도 있고, 왜 거기서 잤는지 묻지 않은 채 하루를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아내의 마음은 어젯밤에 머문 채, 나에게 닿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미래의 내가 알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꺼이 마음을 건네준 사람들이 이미 내 삶에는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건내는 일은 더 아름답다.
이유 없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어쩌면 시간을 건너온 오래된 마음 하나가 늦게라도 도착한 것일지도 모른다.
요리 역시 마음을 전하는 일이다.
나는 맛있게 먹으며 기뻐할 아내를 떠올리며 음식을 준비한다.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그 순간을 그려보듯.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아내는 버거를 좋아한다.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외식을 할 때면 자연스럽게 수제버거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메뉴를 고르며 은근히 기대하는 표정, 한 입 베어 문 뒤 입가에 묻은 소스를 닦는 것도 잊은 채 느슨해지는 얼굴.
그 모든 순간이 아내는 버거를 좋아한다고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잘 모른다.
오히려 옆에서 오래 지켜본 사람이 더 정확하게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순간 직접 버거를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매장에 불고기버거가 있다면, 일본에는 데리야끼치킨버거가 있다.
달콤하고 짭짤한 소스가 잘 배인 닭고기에, 부드러운 번과 아삭한 채소가 어우러지는 조합이다.
익숙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만들어보고 싶었다.
닭다리살의 앞뒤를 포크로 찍어 양념이 잘 스며들게 했다.
소금을 뿌려 잠시 두었다가 키친타월로 수분을 제거했다.
전분가루를 묻힌 뒤 팬에 익히다가 간장, 설탕, 미림을 섞은 소스를 부어준다.
걸쭉해진 소스가 닭에 잘 배도록 익혀준다.
오븐에 구운 번 위에 양상추를 올리고, 닭고기를 얹는다.
채 썰어 물에 담가 매운맛을 뺀 양파를 올리고 마요네즈를 뿌린 뒤, 번을 덮어 마무리한다.
거만 먹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버거에는 보통 감자튀김이 곁들여지지만, 나는 감자튀김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양파링을 함께 준비했다.
양파를 동그랗게 썰어 튀김가루와 허브솔트를 묻히고, 계란과 튀김가루를 섞은 반죽에 담갔다가 튀겨준다.
남은 양파는 다져 마요네즈, 케첩, 타바스코, 소금, 후추를 섞어 소스를 만들었다.
모두 함께 담아내니 버거 세트가 완성됐다.
재료가 특별히 풍성한 버거는 아니었지만, 직접 만들어보니 손이 많이 갔다.
닭을 손질하고, 소스를 만들고, 번을 굽고, 양파를 썰어 물에 담그고, 하나하나 이어 붙이다 보니 시간이 길어졌다.
매장에서는 주문하면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버거 세트가 집에서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완성됐다.
완성된 상을 본 아내는 이미 들뜬 표정이었다.
"와, 너무 맛있겠다."
그리고는 한 입도 먹기 전에 덧붙였다.
"고생했겠다. 고마워."
내가 그려두었던 미래는 조금 빗나갔다.
나는 맛보며 기뻐할 아내를 떠올렸는데, 아내는 그보다 훨씬 앞에서 아직 맛도 보기 전에 이미 내 마음을 읽어버렸다.
나는 미래의 아내를 떠올리며 요리를 했고, 아내는 그 자리에서 과거의 나를 떠올리고 있었다.
나는 '맛있는 기쁨'을 생각했고, 아내는 '차려지기까지의 시간'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바라보던 마음이 한순간 같은 자리에 앉았다.
순식간에 사라진 버거.
버거는 아무래도 빠르게 먹어서 패스트푸드인가 보다.
사라지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느라 너무 많은 에너지를 썼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봄이었다.
배부름에 따뜻한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계절.
자연스럽게 몸이 노곤해졌다.
우리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나란히 누워버렸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함께 같은 자리에.
아내의 후기
데리야끼치킨버거
★4.8점
부드러운 닭 패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엔 기성품 닭다리살을 사용한 줄 알았는데, 직접 굽고 소스까지 다 만들었다고 해서 놀랐어요.
시판 제품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완성도가 높았습니다.
번도 겉은 적당히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서 식감이 좋았고요.
전체적으로 남성분들이 특히 좋아할 만한 스타일의 버거였습니다 ㅋㅋㅋ
다만, 야채가 조금 더 풍성하게 들어갔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에 살짝 감점했습니다 ㅎㅎㅎ
양파링
★4.0점
감자튀김 대신 집에 있던 양파로 만든 신랑표 양파링!
시도 자체는 너무 좋았는데, 기대했던 바삭한 식감이 부족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감점이 꽤 많이 되었는데 미안하네요 ㅠㅠ
오히려 양파전이었다면 수긍이 가는 맛이었어요.
하지만 정말 잘 먹었습니다. (이랬다 저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