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손은 한때 나와 같았다

토마토리조또

by 퉁퉁코딩

지방자치단체 유튜브 채널의 전설을 만들었다고 불리던 한 공무원의 퇴사가 연일 뉴스에 오른다.

그 지역 인구보다 네다섯 배는 많은 사람들이 채널을 구독했고,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이들이 관광지와 특산물을 줄줄이 읊게 되었다.

그곳 충주가 내가 태어나 처음 숨을 쉬었고 열여섯이 될 때까지 뛰어다니던 곳이다.

지금도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이 그곳에 살고 계신다.

이상하게도 충주에만 가면 집밥은 물론 식당밥까지 평소보다 한 그릇은 더 먹게 된다.

배가 고파서라기보다 마음이 먼저 풀어지기 때문이다.

숟가락이 자꾸만 느슨해지는 곳.

그래서 나는 그곳을 고향이라 부른다.


결혼을 약속하고 예식장을 예약한 뒤, 처음으로 아내를 데리고 충주에 내려가기 전날이었다.

설렘과 긴장이 묘하게 뒤섞인 밤.

음식이나 관광지보다 먼저 꼭 건네야 할 말이 하나 있었다.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지만,
할아버지 손을 보고 놀라지 마.

괜히 한 번 더 강조하듯 덧붙인 말이었다.

차마 다 설명하기 어려운 마음이 함께 담겨 있었다.

아내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당연하지. 걱정하지 마.

할아버지의 손에는 시간과 상처 그리고 그 안에 겹겹이 쌓인 삶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기에, 그 손부터 먼저 이야기해야 했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의 가장이었지만 막상 함께 살았다고 말하려면 한 번쯤 머뭇하게 된다.

늘 어딘가로 떠나 계셨던 분이기 때문이다.

어린 내 기억 속에서 할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쯤 낯설면서도 반가운 발소리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외동아들이다.

식구가 많지 않은 집에 어머니가 들어오고, 그 다음 해 내가 태어났으니 단번에 두 식구가 늘어난 셈이다.

속정이 깊었던 분이니 그 기쁨을 얼마나 속으로 곱씹으셨을지 짐작해본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할아버지는 한 손에 나를 안고 서 있었다고 한다.

흑백사진으로 남겨도 좋을 만큼 단정하고 따뜻한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한 손에 담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애기 안고서 담배를 피면 어떡해!"

할머니의 목소리가 마당을 쩌렁 울렸다.

꾸지람을 들은 할아버지는 "내가 다시는 피나 봐라" 하고 담배불을 껐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다시는 담배를 손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들은 흔히 말한다.

연애를 시작하면 끊겠다, 결혼하면 끊겠다,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끊겠다.

금연은 때때로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약속처럼 쓰이곤 한다.

할아버지의 금연 역시 손주를 위한 다짐이었을까.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순간, 나는 그 품에 안겨 있었으니 어쩌면 결심의 떨림을 가장 가까이에서 온전히 느꼈을 것이다.


큰 결심을 했음에도, 할아버지는 나를 자주 안아볼 수 없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은 길어야 이틀뿐이었다.

이른 새벽,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시간.

할머니가 작은 그릇에 날계란을 깨 넣고 소금과 참기름을 떨어뜨리면 할아버지는 그것을 후루륵 삼키듯 넘겼다.

최소한의 식사를 마친 뒤, 먼지가 날리는 공사장으로 다시 향했다.


할아버지는 건설노동자셨다.

건설현장에서 작업 인부들을 통솔하셨다고 한다.

한 번에 이끌었던 인원이 세 자릿수에 달했다니, 도시를 세우는 대형 건설 현장 한가운데에 계셨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서울의 지하철 5, 6, 7, 8호선과 대구지하철, 수도권 어딘가의 고가도로와 고속도로.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그 것들 어딘가에 할아버지의 시간이 묻어 있다.


그때 우리가 살던 집은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다.

어린 나는 숨을 고르지 않고는 끝까지 오르기 힘들었다.

비가 오면 언덕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거센 강물처럼 무섭게 들렸고, 눈이 오면 연탄재를 뿌리지 않고는 오르내릴 수 없었다.

그 언덕 가장 높은 곳,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에도 비좁은 골목 끝에 초록색 대문이 우리 집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감나무 한 그루와 작은 흙밭이 있었고, 그 마당이 할아버지가 담배를 끊겠다고 다짐한 자리였다.

씻는 공간과 화장실이 집 밖에 있던 작고 낡은 집이었다.


할머니는 그 시절을 길게 설명하지 않으신다.

그저 가난했다고 말씀하신다.

넉넉하지 못했기에 할아버지는 타지를 떠돌며 돈을 벌었고, 할머니는 그것을 아끼고 또 아껴가며 집안 살림을 조금씩 불려나갔다.

할아버지가 도시를 세웠다면, 할머니는 집안을 키워냈다.


크게 발전하는 도시에서 일하셨기에, 할아버지는 집에 오실 때마다 충주에서는 구경조차 힘든 장난감을 사다주셨다.

전투기가 로봇으로 변신하는 장난감, 작은 로봇 다섯 개가 하나로 합체하는 장난감, 색색의 블록이 백 개는 족히 들어 있던 상자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글자를 읽고 구구단을 외울 나이가 될 때까지, 관절이 헐거워져 합체가 제대로 되지 않아도 그 장난감들을 붙잡고 놀았다.


장난감을 내게 내밀던 할아버지의 손은, 내 기억 속에서 처음부터 그 모양이었다.

어린 나는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이에게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아버지 턱에 처음부터 까끌거리는 수염이 있었던 것처럼, 할아버지의 손도 원래 조금 다른 모양인 줄로만 알았다.

할아버지의 오른손 검지는 첫마디의 반 정도만 있어 뭉툭했고, 중지는 손가락 바닥 중간이 불룩하게 솟아 굽혀지지 않았다.

건설현장에서 일하시던 중, 오른손의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제외한 세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약지는 봉합이 잘 되었지만 다른 두 손가락은 예전처럼 돌아오지 못했다.

내게는 원래 그런 것이었던 할아버지의 손은 사실 처음부터 그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 손가락은 처음에는 온전히 있었고, 또 다른 손가락은 자유롭게 굽혀졌을 것이다.

지금의 내 손처럼.


언제, 어디에서, 어떤 충격과 함께 그 일이 벌어졌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가족들 누구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기에 나 역시 묻지 못했다.

비록 할아버지의 손이 내 손과 모양은 달랐어도, 전해지는 온기만은 충분했다.

장난감을 건네줄 때도 내 작은 손을 포개듯 감싸 쥘 때도, 그 손은 늘 충분히 컸고 충분히 따뜻했다.



지난주 설, 우리 부부는 충주에 다녀왔다.

사남매 중 막내인 장인어른과 오남매 중 막내인 장모님의 막내딸로 자란 아내는 집안의 막내 역할에 능숙하다.

어른들 앞에 서면 말의 시작은 한 톤 올라가고, 말끝에는 살가운 애교가 묻어난다.

나는 그런 기술을 익히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이라 그저 옆에서 구경만 한다.

오랜만에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자마자 아내는 "보고 싶었어요" 하며 먼저 안겼다.

그 모습이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오래전부터 그 집 손녀였던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고는 옆에 서 있던 나를 슬쩍 밀었다.

"오빠도 좀 안아드려."

나는 그제야 몸을 움직였다.

애교 없는 손주를 대신해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사람은 늘 아내다.


아내는 먼저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거실 소파에 앉아서도 그 손을 쉽게 놓지 않았다.

손을 잡은 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습관같았다.


처음 할아버지를 만난 날에도 그랬다.

망설임 없이 아무렇지 않게 할아버지가 내민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놀라지 않을까, 시선이 잠시 머무르지는 않을까 했던 나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아내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그 손을 꼭 잡았다.



명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니 냉장고 안에는 곧 기력을 잃을 것 같은 채소들이 남아 있었다.

오래 집을 비우고 나면 냉장고는 늘 그런 모양새다.

남은 재료들을 모아 토마토리조또를 만들기로 했다.

명절 뒤의 요리는 조금은 단순한 편이 좋다.


팬에 우삽겹과 해물을 넣고 소금, 후추, 맛술과 함께 볶았다.

충분히 익으면 한쪽으로 덜어두고, 같은 팬에 다진 양파와 애호박, 마늘을 넣었다.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잠시 볶는다.

토마토소스와 밥을 넣어 잘 섞은 뒤 체다치즈와 모차렐라치즈를 더해 꾸덕하게 마무리했다.

한 팬으로 끝내니 설거지 거리도 많지 않았다.

그릇에 옮겨 담고 덜어두었던 우삽겹과 해물을 다시 올려 완성했다.

그림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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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심코 왼손 검지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양파를 다지다 칼에 살짝 스쳤기 때문이다.

꾹 눌러야 휴지에 겨우 붉은 점 하나가 찍히는 정도의 아주 작은 상처였다.

다쳤다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묘하게 따가웠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기 전, 시야 한켠에 걸린 눈곱처럼 자꾸 신경이 쓰였다.

작지만 분명하게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 작은 따가움이 문득 생각을 다른 곳으로 데려갔다.

망치질과 톱질을 몇 번 해본 적도 없는 내가 이런 작은 상처에도 얼굴을 찡그리는데, 할아버지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그 시간을 나는 감히 상상하는 것조차 송구하다.


식사를 하다 말고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만약에 내가 미리 말 안 했으면, 할아버지 손 처음 봤을 때 어땠을 것 같아?"

아내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다.

토마토 리조또 위로 김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았을 것 같아."

나는 괜히 한 번 더 확인했다.

"놀라지도 않았을 것 같아?"

"흠칫은 했을지도 모르지. 근데... 진짜 별 생각 안 했을 것 같아."

아내는 설명을 해두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웠던 게 아니라, 애초에 설명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앞으로 할아버지의 손을 몇 번이나 더 잡아드릴 수 있을지 가만히 헤아려보았다.

설날, 추석, 생신, 아무 이유 없는 주말.

그 횟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아직 차가 없다.

그래서 서울에 갈 일이 있으면 지하철을 탄다.

노선을 검색하고, 최소 환승을 확인하고, 플랫폼에 서서 열차를 기다린다.

다음 주에는 아마 5호선과 7호선을 탈 것 같다.

쉿덩이가 달리는 철로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일부를 잃어가며 완성한 길이다.

지하철에도, 고가도로에도, 고속도로에도 할아버지의 젊은 날이 섞여 있다.

다음 주에 우리가 탈 5호선과 7호선은, 분명 조금은 더 다정할 것이다.


아내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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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점
치즈와 토마토소스, 해물이 듬뿍 들어간 신랑표 리조또.
정말 꾸덕하고 맛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우삼겹이 올라가 있어서 더 만족스러웠습니다.
냉장고 재료를 정리하려고 만든 요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퀄리티가 높아서 깜짝 놀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