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제연어 시금치 크림스프
"내가 잡아주고 있으니까 괜찮아. 손잡이 똑바로 잡고 계속 밟아야 해. 그래야 안 넘어지고 갈 수 있어."
공원 한적한 곳에서 나는, 내가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그것을 가르치고 있었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배웠을 텐데 그 장면은 이제 희미하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할 줄 알았던 것처럼 몸 어딘가에 저장돼 있는 기술로 느껴진다.
아내는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쥔 채 나를 흘끗 올려다봤다.
지금 이 순간, 믿을 수 있는 건 나뿐이라는 표정이었다.
나는 아내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사람을 붙잡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막 피어나려는 용기를 붙들고 있는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고 있었다.
오락실에 가면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모두에게 들리라는 듯 환호성을 지르며 코너를 돌 때마다 몸을 같이 기울이고, 마치 진짜 레이싱 선수라도 된 듯 핸들을 조정한다.
코스를 정확히 따라가 앞선 자를 거침없이 추월하고, 부스터 타이밍까지 완벽하다.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길 수가 없다.
현실에서는 한 번도 운전해 본 적 없는 사람이, 게임 안에서는 시속 180킬로미터로 나를 압도한다.
그래서 나는 아내가 속도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겁이 많았다.
생각보다, 아주 많이.
그걸 몰랐던 시절, 바닷가 여행지에서 호텔 체크인까지 시간이 남았던 적이 있다.
바다 냄새가 섞인 바람이 불고, 그 공기를 온전히 만끽하고 싶던 오후였다.
나는 스쿠터를 빌리자고 했다.
오락실에서 레이싱을 그렇게 좋아하니 당연히 신나 할 줄 알았다.
헬멧을 두 개 빌려 나눠 쓰고, 뒤에 아내를 태운 채 도로로 나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5분쯤 달렸을까.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처음엔 노면이 거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내가 떨고 있었다.
그 떨림이 등을 타고 전해졌다.
운전대를 잡은 내 손까지 덩달아 불안해졌다.
사람의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특히 바로 뒤에서 꽉 붙잡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결국 바로 보이는 해수욕장 앞에 스쿠터를 세웠다.
"많이 무서워?"
"옆에 차가 지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
목소리조차 작아져, 게임할 때 환호성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볼륨이었다.
"알았어. 그냥 반납하러 돌아가자. 대신 너무 떨면 나까지 불안해져. 천천히 갈 테니까 나만 꼭 붙잡고 가만히 있어줘."
"알겠어."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눈가에 물기가 맺힌 것 같았다.
자기가 떨면 더 위험해질지도 모른다는 걸 직감했는지, 그 뒤로는 정말 돌처럼 굳어 있었다.
숨 쉬는 조각상 같았다.
1시간을 빌렸지만, 20분 만에 반납했다.
사장님은 아내의 표정만 보고도 우리의 모험이 왜 이렇게 짧았는지 알아챈 듯한 얼굴이었다.
아내는 마치 무서운 놀이기구에서 막 내려온 사람처럼 한동안 질려있었다.
떨림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듯했다.
나는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얹어 웃으며 말했다.
"오락실에선 그렇게 잘 달리더니, 현실에선 이런 겁쟁이가 또 없네?"
아내는 나를 한 번 째려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거긴 치여도 괜찮잖아."
아내는 다치지 않는 세계에서만 용감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빠에게 자전거를 처음 배우는 어린 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모래사장이었다.
바람이 조금 불었고, 바다는 잔잔했다.
소녀는 두 발을 페달 위에 올려놓고도 좀처럼 힘을 주지 못했다.
자전거는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휘청였고, 아빠는 뒤에서 자전거를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아빠, 절대 놓으면 안 돼. 절대, 절대."
겁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자신의 모든 균형이 아빠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 목소리.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걱정 마."
소녀는 조심스럽게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바퀴가 천천히 구르며 자전거는 생각보다 곧게 나아갔다.
얼굴에는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었다.
눈은 정면을 보고 있었지만, 마음은 자꾸 뒤를 향하고 있었다.
"아빠, 잘 잡고 있는 거지?"
"그럼. 절대 안 놓을게."
그 말을 믿고 아이는 조금 더 힘을 주었다.
어느 순간 자전거는 제법 속도를 냈다.
아이의 어깨가 조금 펴졌다.
발은 자연스럽게 리듬을 찾았다.
그때였다.
아빠는 아주 조심스럽게, 몰래 손을 놓았다.
아이는 여전히 잡아주고 있다고 믿은 채, 이미 혼자 균형을 잡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한참을 달렸다.
앞으로 나아가던 아이는 문득 멈춰 섰다.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아빠는 저 멀리 서 있었다.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대견함이 가득 담긴 미소였다.
아이의 얼굴에는 놀람과 억울함, 그리고 자부심이 동시에 스쳤다.
속았다는 표정과 해냈다는 표정이 한꺼번에 떠올라 있었다.
그날 아이는, 아빠가 손을 놓았기 때문에 자전거를 배울 수 있었다.
그 영상 속 아빠처럼, 나도 슬쩍 손을 놓는 장면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뒤돌아봤을 때 저 멀리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보기로 했다.
하지만 영상 속 아이보다 스무 살은 더 많은 아내는, 세상의 무서움에 대해 스무 배는 더 많이 알고 있었다.
넘어지면 아프다는 걸 알고, 부딪히면 다친다는 걸 알고, 실패하면 창피할 수도 있다는 걸 이미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의 겁은 순수하지만, 어른의 겁은 구체적이다.
성인이 되어 배우는 자전거는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손잡이를 잡은 손은 쉴 새 없이 후들거렸고,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부터 불안이 온몸으로 번졌다.
사실 제대로 올리지도 못했다.
아직 밟지도 않았는데 이미 넘어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전거는 출발선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한 채 좌우로만 흔들렸다.
나는 뒤에서 안장과 허리를 붙잡고 땀을 비 오듯 흘렸다.
그러다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 앞으로 돌아와 아예 핸들을 붙들었다.
자전거를 가르치는 건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공원 한쪽에서 우리는 아주 격렬하게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오락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추월도 승리도 없다는 것.
같은 점이 있다면, 소리만큼은 여전하다는 것.
"어어어어어!"
"밟아, 밟아!"
"넘어질 것 같아!"
"안 넘어져!"
공원에 있던 비둘기 몇 마리는 우리가 큰일이라도 치르는 줄 알았을 것이다.
결국 갈피를 잡지 못한 바퀴가 휘청이는 순간, 내 발가락이 그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묵직한 통증과 함께 오른쪽 엄지발톱이 희생되었다.
피까지 보고 나서야 내 능력으로는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해 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나는 다시는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치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손을 놓는 순간은, 아직 나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현실의 속도를 무서워하기에 아직 운전면허도 없는 아내는, 완전 자율주행 5단계가 나오면 그때 운전하겠다고 말한다.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단계.
핸들도, 브레이크도, 판단도 모두 기계가 대신해 주는 세계.
그 세계가 오면 그때는 용감해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아직 그런 시대는 오지 않았지만, 적어도 우리 집 부엌에는 이미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나라는 완전 자율형 조리기구가 상시 대기 중이기에 저절로 밥상이 차려진다.
아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 주지는 못했어도, 아내가 좋아하는 연어와 시금치를 꺼내 훈제연어 시금치 크림스프를 만들 수는 있다.
감자와 양파, 그리고 파를 잘게 썰어 버터에 넣고 볶는다.
먹기 좋게 썬 시금치를 넣어 살짝 숨을 죽인다.
약간의 물과 치킨파우더를 더해 감자가 부드럽게 익을 때까지 천천히 끓인다.
우유를 붓고 체다치즈를 넣어 농도를 맞춘다.
불을 끄고, 훈제연어를 잔열로 살짝 익힌다.
마지막으로 후추와 파슬리 가루를 뿌려 마무리했다.
걸쭉한 크림의 고소함이 먼저 혀를 감쌌다.
그 위로 훈제연어의 스모키 한 향이 은근하게 올라와 존재감을 더했다.
시금치의 은은히 쌉싸름한 맛도 좋았다.
마지막에 등장한 후추는 느끼함을 정리해 주었다.
국물 속에 숨어 있다가 숟가락에 걸려 나오는 감자는 이 한 그릇이 제대로 된 한 끼라는 걸 알려주듯 든든한 포만감을 더했다.
맛이 어떠냐는 내 물음에, 아내는 맛있다는 말과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아내는 요리에 큰 흥미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싫어하는 편에 가깝다.
요리하는 내내 부엌에 서서 이것저것 신경 쓰며 볶고, 튀기고, 끓이는 과정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그래도 요즘은 전자레인지를 활용한 간단한 요리를 하나둘 시도해보고 있다.
버튼 몇 번이면 완성되는 세계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는 중이다.
언젠가 아이가 태어나면 이유식은 꼭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한다.
묘하게 단단한 결심이 담겨 있다.
혹시 잘 만들지 못해도 괜찮다.
흥미를 끝내 붙이지 못해도 괜찮다.
내가 하면 그만이다.
지나가다 아이와 함께 자전거를 타는 부모를 보면, 아내는 따뜻한 미소를 짓는다.
괜히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중에 우리도 아이랑 같이 자전거 타면 좋겠다고 말한다.
문화센터에서 10만 원 정도면 자전거를 배울 수 있다며, 언젠가는 꼭 배우겠다고 다짐도 한다.
그러나 끝내 배우지 못해도 큰 문제는 아니다.
아이는 내가 가르치며, 내가 조금 더 붙잡고 옆에서 같이 뛰면 된다.
자전거 하나 못 탄다고 별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혹여 정말 자전거를 타야 할 일이 생긴다면 2인용 자전거를 빌리면 된다.
앞에서 내가 방향을 잡고, 뒤에서는 아내가 바람을 느끼면 된다.
넘어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함께 가면 된다.
아내의 후기
훈제연어 시금치 크림스프
★4.8점
브런치로 와인과 함께 즐겼는데 분위기도 좋고 참 만족스러웠습니다.
훈제연어가 듬뿍 들어 있어 든든했고, 스프는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워 편안하게 넘어가는 맛이었습니다.
P.S.
얼마 전 어머니가 무리한 일정을 소화하시다가 대상포진에 걸리셨다.
병원에서는 안면마비가 올 수도 있으니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이번 설에는 엄마가 아프니 웬만하면 그냥 편하게 보내자고 밥도 사 먹자고 하셨다.
그런데 내가 "내일 내려갈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자 이런 답장이 왔다.
"엄마 힘들어서 내가 밥 맛있게 해 놨다. 걱정 마라. 너 안 굶긴다."
참 종류별로도 준비해 놓으셨다.
물론 그 말은 장난이었고, 한우 세트도 넉넉히 마련해 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