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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부터 기획하세요. 엉망이군요.

완벽 주의에 빠진 개발자의 함정, 희소성의 오류, 리액턴스

by 퉁퉁코딩

희소성의 효과?

온라인 쇼핑을 하다가 마음에 드는 제품을 발견했다고 가정해볼까요? 그런데 '24시간 내 주문 시 50% 할인!'이라는 배너가 눈에 띕니다. 원래는 좀 더 고민하려고 했지만, 할인 시간이 지나면 손해 보는 기분이 들 것 같아 급하게 구매 버튼을 누르게 되었죠. 이처럼 우리는 희소성 효과(Scarcity Effect)에 쉽게 반응합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제한되거나 수량이 한정된 상품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효과는 마케팅에서도 굉장히 자주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예약 사이트에서 "현재 이 방은 2명이 보고 있습니다" 같은 문구를 보면 불안감이 들어 빨리 결정을 내리게 되죠. 또, 한정판 신발이나 명품 가방을 출시할 때 '전 세계 500개 한정'이라는 홍보 문구를 넣으면, 소비자들은 더욱 간절하게 느끼고 구매 욕구가 커집니다. 블랙 프라이데이나 시즌 마감 세일에서도 '곧 품절!'이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이유도 같은 원리죠. 희소성이 강조될수록 우리는 결정을 빨리 하게 되고, 구매에 대한 만족감도 커지는 경향이 있어요.


희소성의 오류!

그런데 희소성의 법칙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때로는 '희소성의 오류'로 바라보는 게 더 적절할 수도 있습니다. 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은 반드시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마늘이 만약 산삼만큼 희소했다면, 산삼보다 더 비쌌을 것이다"라는 말이 있어요. 마늘이 몸에 좋은 것은 분명하지만, 희소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가치는 과소평가되죠. 반대로, 산삼은 희소하다는 이유만으로 극도의 가치가 부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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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유명한 쿠키 실험(Worchel, Lee & Adewole, 1975)이 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각 두 개의 쿠키가 든 병과 열 개의 쿠키가 든 병을 보여주고, 어느 쪽 쿠키가 더 맛있을 것 같냐고 물었어요. 놀랍게도 대다수 참가자들은 단 두 개만 남은 쿠키가 더 가치 있고 맛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죠. 실제로는 똑같은 쿠키였지만, '희소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 거예요.


즉, 우리는 희소한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것이 실제로 중요한 것을 판단하는 데 오류를 만들 수 있어요.


기획안을 두고 벌어진 희소성의 오류

희소성의 오류는 단순한 소비 패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IT 서비스 업계에서도 자주 나타나죠. 기획자와 개발자는 각자의 관점에서 최적의 결정을 내리려 하지만, 때로는 드문 예외 케이스에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서비스 방향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기획자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하려 하고, 개발자는 기술적 제약이나 리스크를 고려해야 하니 서로의 관점이 다를 수밖에 없죠.


실제로 이런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한 서비스에서 로그인 과정에서 이탈율이 높아 이를 해결하라는 과제가 주어졌어요. 기획자 클레어는 데이터를 분석한 뒤 새로운 로그인 방식을 제안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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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널 분석 결과, 많은 고객이 복잡한 인증 단계에서 이탈하고 있습니다. 비밀번호 입력 후 이메일 인증을 요구했는데, 이메일이 늦게 오거나 스팸으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인증 단계를 간소화하면 로그인 성공률을 35% 이상 높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팀원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개발자인 제임스는 신중한 태도로 의견을 냈어요.

좋은 기획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간단히 시뮬레이션을 돌려본 결과,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ID가 비슷한 두 사용자가 우연히 같은 비밀번호를 사용하고, 실명까지 동일한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한 사용자가 다른 사람의 계정에 로그인하게 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러자 기획자 클레어는 반박했습니다.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발생할까요? 대다수 고객에게는 긍정적인 변화가 더 크지 않을까요


하지만 제임스는 단호했어요.

단 한 명이라도 이런 문제를 겪으면, 소셜 미디어를 통해 부정적인 리뷰가 확산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전체 브랜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습니다. 이 기획은 다시 검토되어야 합니다.


팀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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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제임스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이런 에러 케이스를 방지하려면 고객의 추가 인증 정보를 받아야 합니다.
회원가입 과정에서 더 상세한 정보를 입력받는 방안을 검토해보죠.


클레어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고객의 회원가입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면, 오히려 더 많은 고객이 가입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대다수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이잖아요.


결국 회의는 결론 없이 마무리됐고, 팀원들은 추가 분석을 진행하기로 했어요.

이런 논의 과정, IT 업계에서는 너무나도 흔한 일이죠.


개발자의 '코너 케이스 집착'과 심리적 원인

개발자들이 시스템의 완벽함에 집착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특히, 드물게 발생할 수 있는 코너 케이스(Corner Case)를 발견하면 이를 큰 문제로 간주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일이 자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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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태도는 개발자들의 학문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알고리즘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인 빅오(Big-O)는 통해 최악의 경우를 기준으로 성능을 분석합니다. 따라서 개발자들은 단순히 평균적인 경우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 가장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설계하는 데 익숙하죠. 보안 사고나 데이터 유출 같은 극단적인 리스크를 줄이려다 보니, 드물게 발생하는 예외 상황도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는 습성이 생긴 거예요.


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은 실무에 들어서기 전부터 코딩 테스트나 알고리즘 경진대회에서 극단적인 케이스를 찾아 해결하는 법을 익혀왔어요. 대회에서는 흔히 발생하지 않는 코너 케이스를 잘 발견하고 처리해야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훈련된 개발자는 자연스럽게 "최악의 경우는 꼭 대비해야 해!"라고 생각하게 되죠. 예를 들어, 비밀번호 찾기 기능을 개발할 때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시나리오를 고려해야 한다는 태도를 가지는 게 익숙한 거예요.


이런 성향이 항상 나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이 덕분에 많은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죠.


하지만 문제는 비즈니스 목표와 충돌할 때 발생합니다. 현실에서는 99.9%의 고객 경험을 개선하는 것이, 0.1%의 극단적인 예외 상황을 완벽하게 해결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가 많아요. 예외 상황을 완벽하게 잡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리소스를 투입하면, 정작 대다수 사용자가 불편을 겪게 될 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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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의 오류를 극복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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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의 효과와 함께 또 하나 중요한 심리적 개념이 리액턴스(Reactance)입니다.

사람들은 가지지 못하거나 금지된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얻으려 더욱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양쪽 집안의 축복을 받는 사랑보다 비극적으로 끝난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과 비슷하죠.


이러한 심리적 요인으로 개발자가 발견한 예외 케이스를 단순히 '발생 확률이 낮다'는 이유로 무시하면, 오히려 개발자는 그 문제에 더욱 집착할 수도 있습니다. 개발자들은 자신이 발견한 문제를 충분히 설명받지 못하고 넘어가면, 이를 해결하지 못한 찝찝함과 불완전한 느낌을 갖게 되며, 때때로 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놓아주지 않는 경향이 있죠.


따라서, 기획자는 단순히 '이 문제는 드물게 발생하니 넘어갑시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현재 비즈니스 목표와 고객 경험에 있어 우선순위가 낮은지 명확히 설명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획자는 개발자가 우려하는 문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완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전략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균형을 잡을 수 있을까요?

결국 희소한 것과 중요한 것을 구분하는 것이 핵심이죠. 드문 케이스가 실제로 비즈니스와 고객 경험에 미치는 영향을 냉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

희소성의 오류를 피하려면 문제의 실제 발생 빈도와 비즈니스 영향도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단순한 직관이나 일부 사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로그 데이터, 사용자 피드백, A/B 테스트등 가능한 모든 데이터를 살펴보고 우선순위를 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외 케이스의 발생 확률이 0.001%라면, 이를 해결하는 데 지나친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보고되는 문제라면, 장기적 리스크를 고려해 해결해야 합니다.


사용자 경험의 유지

발생 빈도뿐 만 아니라, 서비스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판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문제가 되는 케이스를 해결하려다가 대다수 사용자의 경험을 해치는 것은 더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안을 강화하려고 로그인 절차를 지나치게 복잡하게 만들면, 해킹 위험은 줄겠지만 사용자 이탈율이 증가할 것입니다. 기획자는 문제 해결이 대다수 사용자에게 미치는 이익과 불편을 저울질하며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합니다.


고객 지원 시스템을 통한 보완책 마련

어떤 문제는 기술적으로 완벽히 해결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과도한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웹 표준을 따르지 않는 브라우저를 사용하거나, 더 이상 업데이트가 제공되지 않는 기기를 이용하는 경우, 기술적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고객이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FAQ 및 셀프 헬프 가이드 제공하거나 챗봇 및 AI 기반 고객 지원 시스템 도입하여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를 자동으로 해결하도록 설계할 수 있죠. 가끔은 고객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균형 잡힌 의사결정과 비즈니스 성공

결국, 중요한 것은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기획자와 개발자 모두 궁극적으로는 고객 만족과 서비스 성장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하고 있어요. 희소한 문제를 지나치게 강조하다가 전체적인 방향성을 잃지 않도록, 항상 데이터와 비즈니스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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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례에서는 기획과 개발이 조화를 이루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클레어의 기획을 반영하면서도, 제임스가 제기한 예외 케이스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별도의 CS 가이드를 마련하고, 고객이 계정을 복구할 수 있는 절차를 강화했습니다. 다시 말해, 개발자의 우려를 고려하면서도, 서비스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유지하는 해결책을 도출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비즈니스의 성공은 단순한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대다수 사용자의 경험을 최적화하면서도 핵심 리스크를 관리하는 균형 잡힌 접근 방식에서 나온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고객이 만족하고, 서비스가 원활하게 운영되며, 팀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장기적인 성장을 위한 최선의 길입니다.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https://youtu.be/3BhLaeeszf4?si=cCnZ3-TgmKg5Sv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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