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개발자가 된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인과오류!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제게 들뜬 목소리로 물었어요.
개발자라는 직업 진짜 좋은 거 같아. 유튜브에서 보니까 카페에서 맥북 두드리면서 일하고, 자유롭게 여행 다니면서도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던데?
연봉도 억대는 기본이고, 나도 개발 배워볼까 고민 중이야.
저는 웃으며 물었죠.
개발이 너한테 잘 맞는 직업 같아?
친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어요.
돈 많이 주고 자유로운데 당연히 잘 맞겠지. 개발도 까짓 거 그냥 배우면 할 수 있겠지.
요즘 국비지원 과정도 많던데, 한 번 등록해 볼까 해서.
좋은 학원 아는 곳 있으면 소개 좀 시켜주라.
그 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전형적인 인과 오류구나.
여러분은 IT 기업과 개발자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가요?
유튜브나 SNS에서는 IT 기업과 개발자들이 종종 이상적으로 그려집니다.
창의적이고 멋진 동료들, 고급스러운 사무실, 높은 연봉, 그리고 자유로운 업무 환경...
이런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개발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줍니다.
특히 비전공자들도 ‘나도 IT 기업에 들어가면 저들처럼 멋져질 거야’라고 기대를 품게 만듭니다.
하지만, 과연 현실도 그렇게 이상적일까요?
제가 처음 개발자로 일을 시작했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트렌디한 기술을 활용한 혁신적인 프로젝트! 실력 있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성장의 기회!'
이런 기대에 부풀어 있었죠.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마감이 촉박한 요구 사항이 쏟아졌고, 기획은 자주 변경되었으며, 예상치 못한 버그로 인해 주말 밤을 새우는 일도 생겨났어요. 자유로운 업무 환경을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메신저와 이메일 알람이 끊이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구나!'
IT 업계는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 'IT 업계 신입 퇴사율은 다른 업종보다 10% 이상 높다'는 통계가 있으며, '스타트업과 대기업에서 신입 개발자의 30% 이상이 1년 내 퇴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새해에 가장 많이 하는 결심! 바로 다이어트죠.
운동을 시작하려고 할 때, 어떤 운동을 선택하시겠어요?
러닝? 요가? 복싱? 아니면 수영?
요가 수업 광고 속 모델이 완벽한 몸매를 자랑하며, 유연하고 우아한 동작을 선보입니다.
'요가만 열심히 하면 나도 저들처럼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을 거야'
이렇게 기대하며 요가원에 등록했지만, 곧 깨닫게 됩니다.
요가 광고 모델들의 몸매는 그들의 노력 덕분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들이 타고난 신체적 체형과 유전적 요소가 요가에 적합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죠.
이런 심리는 마케팅에서 자주 활용됩니다.
화장품 광고: 아름다운 모델이 등장하며, 이 제품을 쓰면 나도 아름다워질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하지만 모델들을 아름답게 만든 것은 화장품이 아니라, 그들이 우연히 가진 타고난 외모 덕분입니다.
고급 자동차 광고: 세련된 비즈니스맨이 등장하며, 이 차를 사면 성공한 인생을 살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자동차 때문이 아니라, 이미 성공을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명문대 홍보: '우리 대학을 졸업하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라는 메시지. 하지만 실제로는 좋은 직업을 가질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 대학에 입학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들은 생각보다 원인과 결과를 잘못해석하는 인과오류를 자주 경험합니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어 생각하는 이유는 결과를 먼저 보고, 그에 맞는 원인을 찾아 해석하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우리는 특정한 결과가 나타나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뒤늦게 찾으려 하고, 이를 자신이 아는 패턴에 맞춰 해석합니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성공하면 "그 회사가 혁신적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지만, 같은 방식으로 운영하다 실패한 기업들은 쉽게 잊힙니다.
IT 업계와 개발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같은 인물들은 IT 업계를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에는 타고난 성향과 특별한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실제 개발자들의 현실은 어려움이 많습니다.
업무 강도: IT 프로젝트는 촉박한 데드라인 속에서 진행됩니다. 예상치 못한 버그와 싸우며 긴 시간 동안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나의 버그가 몇 시간, 때로는 며칠을 잡아먹는 일이 빈번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 새로운 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업계 특성상 학습은 필수입니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습니다. 주말에도 신기술을 공부하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는 것이 업계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높은 기대치: 신입 개발자라고 해도 회사는 빠르게 생산성을 내길 기대합니다. '배우면서 일한다'는 개념은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채용 직후 바로 실무에 투입될 것을 요구받습니다. 그래서 기본기가 부족한 비전공자나 주니어 개발자들은 큰 압박감을 느끼곤 합니다.
즉, 개발자 역시 힘든 점이 많고 단순히 개발자가 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IT 업계와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깨고 현실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진정으로 개발자라는 직업에 적합한 사람인지 고민하는 것입니다.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짜는 직업이 아닙니다.
문제를 끝까지 해결하려는 끈기, 지속적인 학습에 대한 열정, 그리고 변화하는 기술 트렌드에 빠르게 적응하려는 태도가 요구됩니다. 더불어 팀과의 협업 속에서 가치를 창출해 내야 하는 직업입니다.
개발자라는 직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개발자의 삶의 방식이 내가 추구하는 행복과 부합하는지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도전이 나를 성장시키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복잡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희열을 느끼는가, 아니면 스트레스가 더 큰가?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배워나가는 것이 즐거운가?
혼자 일하기보다는 다양한 직군과 협업하는 과정에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개발자로서 얻는 결과물이 나에게 보람을 주는가?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던지고 솔직하고 진지하게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IT 기업의 채용공고에는 사실 오늘 이야기한 내용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좋은 채용공고라면 단순히 기술 스펙, 자격 요건, 개발 환경만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업이 어떤 성향의 개발자를 원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힌트들이 숨어 있습니다. 채용공고에는 단순한 역할 설명뿐만 아니라, 해당 기업의 가치관과 조직문화에 적합한 사람이 누구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단서들이 담겨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구들입니다.
새로운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즐기며 함께 성장합니다.
PM,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팀을 이루어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고민합니다.
탐구와 도전에 거리낌이 없는 분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많은 지원자들은 채용공고를 읽을 때 기술적인 요구사항에만 집중하고, 이런 문구들이 의미하는 바를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면접에서 개인의 성향과 가치관을 묻는 질문이 나와도, 많은 지원자들은 미리 준비된 정형화된 답변만을 내놓고 실제 자신의 강점과 직업관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방식은 지원자가 자신의 성향과 기업 문화의 적합성을 깊이 고민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입사 후 조직과의 미스매칭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개발자가 되는 것은 꾸준한 노력으로 충분히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행복한 개발자가 되는 것은 타고난 개인의 성향과 더 깊은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행복한 개발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멋진 이미지를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향과 직업의 본질을 이해하며 꾸준히 성장하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과 끊임없는 배움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 길입니다.
환상을 넘어 현실적인 자신을 준비하고 발견하는 과정이 행복한 개발자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https://youtu.be/Yo50bdQKiSI?si=aRa1J2hUYH_MmY2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