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없는 창작은 없다
"요즘 인스타에도 영상을 올리나 보더라? 잘 봤네."
오랜만에 연락온 교수님께서 캡처한 영상 화면을 보내주셨다. 익숙한 장면이었다. 내가 만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다. 화면 어디를 봐도 내 이름은 없었다.
순간, 머릿속이 얼어붙었다. 혹시 누군가 내 영상을 무단으로 퍼간 걸까? 내가 편집한 장면, 한 단어 한 단어 정성들여 쓴 대본과 자막. 내 것이라는 표식은 지워지고, 다른 이의 이름으로 떠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작은 소동이었다. 내가 유튜브 쇼츠에 올린 영상을 교수님께서 인스타그램으로 착각하신 것이었다. 플랫폼을 혼동하신 거였다. 가벼운 한숨으로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날 이후, 마음 한켠이 잔잔하지 않았다. 만약 그 영상이 진짜 무단 사용된 것이었다면, 나는 어떤 권리를 잃은 셈이 되는 걸까?
내가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나는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든다. 한 문장을 위해 수십 번 퇴고하고, 열두 번 표현을 고친다. 한 문단의 리듬을 위해 수많은 호흡을 바꾸며, 같은 단어를 읽고 또 읽는다.
그 시작은 언제나 오래 품어온 감정의 씨앗이다. 기억을 불러내고, 다듬고, 때로는 꺼내기 두려운 마음마저 껴안으며 하나의 세계를 만든다.
완성된 저작물은 짧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날 선 집중과 눌러쓴 감정이 담겨 있다. 나만이 아는 수많은 이유들이 켜켜이 깃들어 있다. 그것은 곧,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단서다.
나는 다양한 형식으로 창작한다. 글이든 영상이든, 그것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다. 형태는 달라도, 그 안에 담긴 시간과 마음의 무게는 같다. 그렇기에 모든 저작물에는 창작자의 시선과 서사, 그리고 이름이 함께 깃든다. 그것을 우리는 저작권이라 부른다.
저작권은 단지 법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을 위한 장치다.
저작권은 두 갈래의 권리로 이루어진다.
저작 재산권은 창작자가 만든 저작물을 복제, 배포, 공연, 전시, 방송, 2차적 저작물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권리다. 쉽게 말해 창작자가 만든 것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질 수 있는 권리다.
누군가 내 창작물을 허락 없이 재업로드하거나 편집해 광고 수익을 얻는다면, 이는 명백한 저작재산권 침해다. 저작재산권은 창작자의 생계를 지키는 열쇠다.
저작인격권은 창작자가 만든 저작물에 대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내용이 임의로 수정되거나 왜곡되지 않도록 할 권리다.
즉, 내가 만든 영상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붙였다면? 혹은 내 의도와 전혀 다르게 편집해 엉뚱한 메시지를 담았다면? 이는 저작인격권 침해다.
저작재산권이 결과를 지킨다면, 저작인격권은 창작의 주인을 지킨다. 하나는 삶을 위한 권리이고, 다른 하나는 존재를 위한 권리다.
저작권은 종종 지식재산권과 혼동된다. 지식재산권은 발명, 상표, 디자인, 저작물 등 인간의 창의적 활동에서 비롯된 무형 자산 전반을 보호하는 개념이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이 나뉜다.
저작권: 문학, 음악, 미술, 영상, 사진 등 문화·예술적 창작물
산업재산권: 특허권(기술적 아이디어), 실용신안권(간단한 기술 개선), 디자인권(제품 외관), 상표권(브랜드 이름·로고)
신지식재산권: 데이터베이스, 반도체 설계, 생명공학 등 디지털 환경 기반의 창작물
지식재산권이 거대한 도시라면, 저작권은 그 도시 안 누군가의 하루가 담긴 작은 집이다. 그 안에는 저작자의 언어, 감정, 시간, 그리고 존재 전체가 깃들어 있다.
어느 날, 누군가 내 글을 통째로 복사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남긴 말은 단 한 줄이었다.
"좋아서 가져갈게요."
말은 따뜻했다. 그러나 따뜻한 말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창작은 감정이 아닌 권리다. 좋아했다면, 먼저 물어야 했다.
"내용이 너무 좋아요. 가져다 써도 될까요? 출처는 꼭 밝힐게요."
공유와 무단 전재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그 한 장은 저작자의 이름이 새겨진 마지막 페이지다. 그 페이지가 사라지면, 작품은 남지만 사람은 지워진다.
창작은 창작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기록하고, 스스로의 언어로 삶을 해석하는 일이다. 그것을 허락 없이 가져간다는 건,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창작자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좋아요'나 '공유'는 동의가 아니다.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요약 역시 저작권을 지워주지 않는다. 플랫폼의 편의기능 뒤에 숨어버린 책임은, 창작자에 대한 침묵의 폭력일 뿐이다.
존중은 동의에서 시작된다. 저작물을 정당하게 사용하는 길은 세 가지다.
저작권자에게 직접 허락을 받는 것이다. 사용 목적, 방식, 범위는 명확해야 하며, 특히 상업적 활용일 경우 조건에 대한 사전 합의가 필수다. 또한 저작권자의 허락에 제3자에게 양도해도 된다는 내용이 없다면, 별도의 허락을 다시 구해야 한다.
법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공익을 위한 최소한의 예외를 허용한다. 이를 '법정 허락 제도'라 부른다. 예를 들어 교육·연구 목적으로 일부를 인용하거나, 시사 보도를 위해 필요한 부분을 활용하는 행위는 일정 조건하에서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제한적이고 보충적인 이용을 전제로 한다. 인용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거나 원 저작물의 본질적 요소를 대체할 경우에는 법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무분별한 활용은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종료된 저작물이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C)와 같이 일정 조건 하에 자유 이용이 허락된 저작물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정해진 조건을 따라야 한다. 예를 들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중 '저작자 표시(BY)' 조건이 붙은 경우 반드시 원작자의 이름을 밝혀야 한다. '비영리(NC)' 조건이 있는 경우에는 상업적 이용이 금지된다. 조건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키는 것 역시 창작에 대한 예의다.
저작권은 창작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창작이 지속되기 위한 최소한의 울타리다. 그 울타리를 지킬 때, 창작물은 그 자체로 더 멀리, 더 오래 살아남는다.
그날 이후, 나는 내 작업물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나의 시간, 나의 집중,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스며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켜주는 이름, 바로 저작권이었다.
저작권은 누군가를 막기 위한 벽이 아니라, 창작자를 잊히지 않게 하는 이름표다.
창작자에게 저작권은 법률의 조항이 아니라, 손끝으로 새긴 증거이며, 존재의 기록이다.
그리고 지금 이 글 역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쓰인다. 모든 창작에는 반드시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은 결코 흐려져선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