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상궈
30대 중반에 접어드니 자연스럽게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자주 들려온다.
내 결혼을 축하해 줬던 지인들이니, 이제는 나도 그들의 결혼을 기쁘게 축복한다.
얼마 전엔 회사 동기들의 청첩장 모임에 다녀왔다.
같은 팀 동기 두 명이 2주 간격으로 결혼을 앞두고 있어, 오랜만에 동기들이 잔뜩 모였다.
주인공은 예비 신랑들이었지만, 그날 가장 눈길을 끈 건 의외로 청첩장이었다.
두 청첩장의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한 명은 깔끔한 엽서형 청첩장을 준비했다.
앞면엔 웨딩 화보, 뒷면엔 혼주 이름과 식장 주소가 간결하게 담겨 있었다.
보기에도 정리가 잘 되어 있었고, 꼭 필요한 정보만 딱 담은 느낌.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정사각형 종이를 접어 딱지 모양으로 만든 청첩장을 가져왔다.
펼치면 칸칸이 나뉜 공간에 식순부터 교통편까지 정보가 알차게 들어 있다.
열어보는 재미도 있는 DIY 감성이 느껴졌다.
결혼한 지 2년 반쯤 된 내게는, 청첩장도 세월 따라 진화한다는 걸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두 장 모두 동기들의 성격이 반영된 듯했지만, 솔직히 말해 신부들의 감각이 더 짙게 묻어 있었을 것이다.
개발자인 동기들이 디자인에 적극 관여했을 리는 없으니까.
아마 신부가 골라준 디자인에 "좋아. 그걸로 하자" 한마디로 결정이 났을 것이다.
이번 청첩장 모임에는 결혼을 앞둔 두 명 외에도, 1년 안에 식을 올릴 계획인 동기 셋이 더 있었다.
이미 결혼한 지 2~3년 된 사람들, 곧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들, 그다음 순서를 예약한 예비 후보들, 그리고 아직 혼자의 삶을 조금 더 만끽하고 싶은 몇몇까지.
누구는 이미 한참 달려가고 있고, 누구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으며, 치킨을 뜯고 있는 관중도 있었다.
결혼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아주 다양한 '단계별 인간군상'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이야기가 오가던 중, 결혼을 반년쯤 앞둔 한 동기가 고민을 털어놨다.
지금은 자신이 마련한 집에서, 본인 취향대로 꾸며놓고 본인만의 생활 패턴대로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아내와 함께 살게 되면 지금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라는 것이다.
처음부터 함께 꾸민 집이라면 몰라도, 지금은 철저히 혼자의 공간이다 보니 더 조심스러워진다고 했다.
나는 결혼 선배로서, 위로이자 경고를 하나 건넸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정도는 벌써, 예측 가능한 문제잖아?
결혼은... 예측 불가능한 문제의 연속이야.
동기는 한숨과 웃음을 섞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고민은 대부분, 마음이 이미 결정을 내린 뒤에 따라오는 일종의 형식적 절차라는 걸.
걱정이 아무리 많아도 결국 결혼을 결심했다는 건, 그 모든 변수보다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뜻일 테니까.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입장과 시선으로 오랜만에 결혼 이야기를 참 많이도 나눴다.
나 역시 결혼 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에 부딪혀 크게 화가 났던 적이 있다.
원인은 다름 아닌 '요리'였다.
결혼 전에도 나는 가끔,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게 요리를 해줬다.
지금보다 훨씬 서툴렀던 솜씨였지만, 아내는 늘 맛있다는 말과 함께 싹싹 비워주었다.
음식 맛에 예민하지 않고, 무엇을 해줘도 잘 먹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나는 은근히 자신감을 키워갔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가끔 해주던 남자친구의 요리와, 거의 매일 접하게 되는 남편의 요리는 아무래도 용도가 달랐던 것이다.
전자는 기대를 담아 가끔 찾는 특별한 외식이었다면, 후자는 현실 속에서 매일 먹어야 하는 급식이었달까.
본격적으로 충돌이 시작된 건 '간' 때문이었다.
시댁과 처가의 요리 스타일이 확연히 달랐다.
먼저 나의 본가, 시댁의 음식은 간이 꽤 센 편이다.
특히 우리 할머니는 기름기 있는 음식을 좋아하지 않으시면서도 맵고 짭짤한 맛에 진심이신 분이다.
심지어 외식할 때도 비상용 간장과 고추장을 따로 챙겨 가실 정도다.
그런 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꼬맹이였을 때부터, 나를 무릎에 앉히고 짠지 국물에 밥을 비벼 한 숟갈씩 떠먹여 주셨다.
놀랍게도 나는 그걸 참 잘도 받아먹었다.
매웠을 텐데도 울지 않았고, 짰을 텐데도 더 달라고 했다.
내 입맛은 그렇게, 할머니 무릎에서 양념된 채로 자라났다.
거기다 맞벌이 부모님께서는 '귀찮으면 외식, 더 귀찮으면 배달'이라는 명확한 원칙도 가지고 계셨다.
반면 처가는 전혀 다르다.
간은 약하고,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 요리.
건강하고 균형 잡힌 집밥의 교과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아내는 결혼 전엔 배달음식을 거의 시켜본 적이 없고, 라면조차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였다고 했다.
어쩌면 그래서, 연애 시절 내가 해줬던 자극적인 요리가 그녀에겐 새로운 세계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오빠, 요리 너무 맛있다"며 감탄을 했지만, 정작 그 요리가 반복된다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빨간 요리는 색깔부터 달랐던 집안에서 자라난 우리.
결혼 초, 음식은 당연히 요리 담당인 내 입맛에 더 가까웠다.
얼큰하고, 먹고 나면 속이 시원한 그런 맛.
하지만 조금씩 아내의 입맛을 고려하게 됐다.
간을 줄이고, 자극을 덜고,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려 애썼다.
나름의 노력과 절제, 약간의 희생도 담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정이었을 뿐이다.
결과가 꼭 인정받는 건 아니었다.
어느 날, 아내가 밥을 먹다 말고 말했다.
오빠 요리 너무 자극적이야.
요즘 몸이 좀 붓는 것 같아.
그 말에 나는 묘하게 억울해졌다.
그동안 싱겁게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소금과 간장을 아껴왔지만, 아내에겐 여전히 자극적인 모양이었다.
아내의 불만은 꽤 오랜 시간 이어졌고, 마침내 그녀는 말했다.
이렇게 오빠 요리 계속 먹다가는 내 건강에 문제 생길지도 몰라.
그 순간, 조용히 눌러왔던 감정이 마침내 뚝하고 터졌다.
넌 건강하게 먹으려고 어떤 노력을 했는데?
요리 못하고 싫어하잖아.
혼자 있을 땐 치킨 시켜 먹거나, 컵라면이잖아.
그래서 내가 늦게 퇴근한 날에도, 내일 먹을 반찬 미리 만들어놨던 건데!
그리고 선언했다.
앞으로 반찬은 배달이든 뭐든 각자 해결한다.
식사는 따로 한다.
겸상은 없다.
진짜로 2주 정도는 따로 밥을 먹었다.
인터넷에서만 봤던 '결혼은 함께 입맛을 맞춰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이렇게 고된 줄은 몰랐다.
다행히, 착한 아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 내가 말이 좀 심했어. 우리 조금만 더 같이 노력해 보자."
그 한마디에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멀어졌던 식탁도 다시 함께 차려졌다.
지금 우리는 건강한 간을 기준으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다.
빨간 국물만 먹던 나는 이제 흰 국물도 제법 능숙하게 끓인다.
야채 볶음이나 나물 같은 메뉴도 슬슬 손에 익기 시작했다.
물론 아주 가끔, 정말 가끔은 아내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고 내 스타일대로 간이 센 요리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아내도 기꺼이 웃으며 괜찮다고 말해준다.
대신 나는 평소보다 아내의 밥공기에 밥을 한 숟갈 더 담는다.
하지만 그런 담백한 입맛의 아내조차, 스스로 밥을 한 숟갈 더 뜨게 만드는 강렬한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자극의 끝판왕, 마라상궈.
아내는 스트레스를 받은 날이면 살짝 고민하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오빠, 오늘 마라상궈 먹을래?"
그 얼얼한 맛으로 혀끝은 마비되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풀린다.
몸은 좀 부을지 몰라도, 머릿속은 맑아진다.
신장에게는 약간 미안하지만, 감정은 정리된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배달 마라상궈는 비싸고, 재료 퀄리티를 보장할 수 없다.
무엇보다 짜다.
밥 없이 먹기에는 버겁다.
어느 날, 그 마라상궈를 먹으며 나는 말했다.
"이거 나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아내는 젓가락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오빠가 이걸 어떻게 만들어? 괜히 힘들게 고생하지 마."
그게 날 걱정해서였는지, 아니면 못 미더워서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마라상궈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제, 아주 평범했던 저녁 식사 중 아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물었다.
"오빠, 혹시 내일 마라상궈 만들어줄 수 있어?"
기회는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왔다.
나는 식사를 마친 즉시 재료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내 표정은 '진작 말했어야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마라상궈다.
배달로만 먹던 마라상궈를, 드디어 내 손으로 만든다.
한 번이라도 마라상궈를 시켜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고를 수 있는 재료만 해도 수십 가지다.
그중 마라상궈의 본질을 지키면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재료들로만 골랐다.
그래도 재료 준비와 손질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러나 걱정할 건 없다.
조리 자체는 금방 끝난다.
먼저 채소부터 손질한다.
각종 채소는 흐르는 물에 하나하나 정성껏 씻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냉동 상태로 있던 해물 재료들은 미리 물에 담가 해동시킨다.
고기와 햄 종류는 먹기 좋게 준비해 둔다.
사리류는 금방 불기 때문에, 남은 경우 처치가 곤란하다.
그래서 면두부 하나로 절제미를 발휘했다.
이제 불 앞에 선다.
드디어 본격적인 조리가 시작된다.
먼저 팬에 땅콩고추기름을 넉넉히 두른다.
고추기름에 볶은 땅콩 향이 더해진 기름으로, 고소함과 매콤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여기에 편마늘과 어슷 썬 대파 흰 부분을 넣고 볶기 시작한다.
중불에서 짧고 강하게 볶는다.
마늘, 파가 어우러진 매운 향이 올라오면, 가본 적도 없는 중국 사천의 거리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기름이 충분히 향을 머금었을 때, 고기를 넣는다.
마라상궈에 어울리지 않는 고기는 없다.
오늘은 아내의 입맛을 고려해 우삼겹이 메인, 삼겹살은 살짝 곁들였다.
우삼겹은 금방 익기 때문에 과하게 볶지 않도록 주의한다.
육즙이 올라올 무렵, 준비해 둔 채소들을 넣는다.
데쳐서 물기를 뺀 청경채와 배추부터 넣고 볶는다.
이 둘은 마라상궈에서 빠질 수 없다.
다른 채소는 생략해도, 이 둘만은 반드시 있어야 맛이 산다.
이어서 숙주, 목이버섯, 백목이버섯, 느타리버섯을 차례대로 넣는다.
재료가 많아지는 만큼, 불 조절은 더 중요해진다.
오래 볶으면 야채에서 물이 많이 나온다.
센 불을 유지한 채, 야채가 물러지기 전에 빠르게 볶아낸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새우, 피쉬볼, 칼집 넣은 오징어, 햄, 비엔나소시지, 그리고 면두부를 함께 넣고 볶는다.
이때 시판 마라상궈 소스를 넣어 본격적인 맛의 색을 입힌다.
이 소스 하나에 사천식 두반장과 각종 향신료 오일이 섞여 있어 깊은 맛을 낸다.
덕분에 따로 간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만큼 짜고 강하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땅콩고추기름으로 기름 베이스를 잡은 것이다.
모든 재료에 소스가 고루 스며들었는지 확인하고, 불을 끈다.
그리고 마지막, 화조유를 한 바퀴 돌려준다.
산초를 저온에서 기름에 우려낸 이 오일은, 짠맛 없이 얼얼함을 추가할 수 있다.
불을 끄고 나서 넣어야 그 향이 살아있고, 볶아버리면 쓴맛이 돌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릇에 옮겨 담고, 송송 썬 쪽파를 솔솔 뿌린다.
빨간 기름은 반짝이고, 고기와 채소는 윤기 있게 빛난다.
코끝이 간질간질할 만큼 얼얼한 향신료의 기운이 공기 중에 퍼진다.
나만 좋아하는 고수는 다른 재료들과 함께 볶지 않고 따로 잘게 썰어 곁들였다.
밥도 갓 지어 준비했다.
오늘 저녁은 그렇게, 화끈하고 정성스럽게 완성되었다.
아내는 마라상궈를 더 맛있게 먹기 위해 저녁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그건 말 없는 엄청난 기대의 표현이었다.
드디어 마라상궈를 앞에 두고, 우리는 동시에 젓가락을 들었다.
마라상궈 특유의 매콤함과 얼얼함이 혀를 때린다.
그리고 우리 둘 다 거의 동시에 말했다.
"짜지 않아!"
밥과 함께 먹으면 더 맛있지만, 밥 없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 간이 적당했다.
배달 음식 특유의 짠맛이나 무거운 뒷맛 대신, 갓 볶아낸 신선한 향과 따뜻한 온기가 살아 있었다.
포장 용기에서 퍼먹는 음식이 아니라, 식탁 위에서 마주 앉아 웃으며 나누는 '집밥'이었다.
아내는 한 입, 두 입 먹더니 감탄을 터뜨렸다.
역시 오빠가 요리를 잘하긴 잘해!
그리고 감동의 표현으로 특유의 미간 찌푸리기를 발동했다.
칭찬의 박수와 함께 감탄사도 터졌다.
혹시나 정말 맛있게 완성된다면 곁들이려고, 고량주와 맥주를 미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아내가, 오늘은 놀랍게도 먼저 말했다.
"나도 한잔 할래"
오늘의 마라상궈는 밥반찬으로도, 술안주로도 완벽했다.
아내는 원래 식사량이 많지 않다.
하지만 정말 입맛에 딱 맞는 음식을 만나면, 놀라울 만큼 많이 먹는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첫 접시를 싹 비우더니, 좋아하는 재료 위주로 두 번째 접시를 가득 담아왔다.
세 번째 접시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표정엔 행복이 가득했다.
이 순간 내 하루의 피로를 날려주는 건 마라상궈의 얼얼함이 아니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진심으로 맛있게 먹으며 웃는 아내의 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친 나는 자연스럽게 소파로 향한다.
숟가락 하나 치우지 않는다.
그 사이,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주방으로 간다.
기름기로 반짝이는 냄비와 국자, 한바탕 전투를 치른 식탁을 정리하고 식기세척기를 돌려 마무리한다.
이건 우리 부부의 암묵적 패턴이다.
요리는 좋아하지만 설거지는 미루는 나.
요리는 질색이지만 설거지는 귀찮아하지 않는 아내.
심지어 내가 혼자 먹고 싱크대에 올려둔 식기들까지 말없이 정리해 주는 사람이다.
이 절묘한 조합 덕분에 우리 부부의 식사 루틴은 꽤 전문적으로 분업되어 있다.
누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서로에게 맞는 자리를 자연스럽게 찾아갔다.
하지만, 이런 조화로움만이 결혼생활의 전부는 아니다.
결혼이란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일들이 생긴다.
심지어 말을 해도 좀처럼 맞춰지지 않는 순간들이 가득한 여정이다.
아직 우리는 '간' 하나 맞추는 데도 실패와 실험을 반복 중이다.
하지만 그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맞춰보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가끔은 짜고, 가끔은 싱겁다.
그럼에도 매 끼니를 차린다.
함께 앉아 먹고, 웃고, 이야기하며 조금씩 서로의 입맛을 닮아간다.
예상 못한 문제들이 쏟아져 나와도, 간을 맞춰가듯 서로를 맞춰가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결혼생활이다.
싱거울지 짤지, 매콤할지 얼얼할지 모르는 다음날을 우리는 함께 준비한다.
아내의 후기
마라상궈
★4.8점
시켜 먹던 마라샹궈보다 훨씬 맛있었던, 신랑표 마라샹궈!
더 따뜻하고, 더 얼얼하면서도 덜 짜고 덜 매워서 제 입맛에 딱 맞았어요.
재료도 모두 신선했고, 신랑과 제가 좋아하는 재료들만 골라 듬뿍 넣은 덕분에 더없이 만족스러운 한 끼가 되었습니다.
정말 배부르고, 정말 행복하게 잘 먹었습니다!
P.S.
맵고 짠 음식을 즐기는 할머니와 달리, 할아버지는 싱겁고 단 음식을 더 좋아하신다.
아직도 가끔, "당신 음식 너무 맵다"라고 핀잔을 주신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김없이 되받아친다.
"이 정도도 못 먹고 어쩌려고."
60년을 함께 살아왔지만, 두 분의 입맛은 여전히 너무나 다르다.
그런데도 가끔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말하신다.
"우리 OO이, 내가 사랑해."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데 입맛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