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만두전골, 고등어찜
나는 국내 대기업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다.
이 말을 꺼내면, 보통 머릿속에 몇 가지 근사한 이미지들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는 당연히 가지고 있을 거라 여겨지는 그것, 바로 자동차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차량들 사이에서 왠지 외제차 한 대쯤은 몰고 있을 것 같은 이미지 말이다.
내 동기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입사 몇 달 되지 않아 뜨거운 자동차 토크가 오갔다.
"지금 계약하면 할인 얼마다"
"이 색상 예쁘다"
"이 옵션은 무조건 넣어야 한다”
그러더니 2년 차엔 다들 차 한 대쯤은 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자동차를 살까 말까 진지하게 고민조차 해본 적이 없다.
그 멋진 외제차는 물론 국산차의 주인도 아니다.
나는 차에 관심이 전혀 없다.
차가 감정이고 자존심이고 정체성인 사람도 있지만, 자동차에 대한 로망 같은 건 내 인생에 존재한 적이 없다.
면허 시험을 볼 때도 감흥이 없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일 3사의 로고도 구분 못 했다.
그래도 이제는 동그라미가 많은 게 아우디 인 것 정도는 안다.
내가 자동차가 없다고 하면, 사람들은 으레 묘한 표정을 짓는다.
이 직급, 이 나이에, 이 위치에서 차 없는 사람이라는 건 꽤나 드문 일이었다.
내가 차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직장 선배들은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한 선배는 내 인생을 진지하게 걱정했다.
회사 회식 자리였다.
식당 근처가 주차가 까다로워 선배들끼리 "어디 댔냐", "그 골목 벌금 붙는다", "발렛 맡겼다" 같은 주차 토크가 한창이었다.
그때 한 선배가 내게 물었다.
"너는 어디에 댔어?"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저는 차가 없어요."
"아, 안 갖고 왔구나. 잘했네~ 요즘은 대리도 비싸고..."
"아뇨. 그냥 원래 없습니다."
그 순간, 선배의 눈빛이 달라졌다.
"진짜 없어? 안 몰고 다니는 게 아니라, 아예 없는 거야?"
방금 전까진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이던 사람이, 갑자기 무릎담요를 덮고 조용히 손을 잡아줄 것 같은 어르신 모드로 돌입했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다시 물어보았다.
"왜? 혹시... 빚이 많아?"
순식간에 회식 자리가 신용등급 심사 현장이 되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뇨, 그냥 필요가 없어서요."
하지만 선배는 끝내 '뭔가 있는 거야, 괜찮아. 말 안 해도 돼'라는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자동차 전도사들이 있었다.
나는 한동안 자동차 사랑이 넘치는 선배들이 잔뜩 모여 있는 부서에 있었다.
점심식사 후 커피 한잔 하는 시간은 나를 향한 포섭의 연속이었다.
거의 하루 건너 한 번꼴로 이런 말을 들었다.
"안 사도 되니까 그냥 견적이나 받아봐요"
"이번에 그 모델 진짜 잘 나왔는데, 옵션이 미쳤어. 지금 안 사면 손해라니까요."
"내가 아는 딜러가 진짜 괜찮은데 소개해줄까요? 지금 계약 안 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해요."
나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그들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종, 연식, 옵션, 심지어 타이어 휠과 시트 색깔까지.
나에게 "차는 언제 살 거예요?"라는 말은 "식사는 하셨어요?"같은 가볍게 던지는 안부처럼 자주 들려왔다.
하지만 자동차에 워낙 관심이 없다 보니 그들의 말은, 내 머릿속에 하나도 남지 않았다.
듣는 족족 증발했다.
그리고 나는 매번 같은 말로 웃으며 넘겼다.
"필요해지면 그때요."
전도사들의 열정은 내게 이벤트가 생겼을 때 가장 뜨거워졌다.
집을 보러 다닌다고 하면 차 없이 어떻게 집을 보려 다니냐면서 일단 차부터 사라고 했다.
하필 후덥지근한 공기로 가득 찬 여름이었다.
부동산과 행정복지센터, 도장 가게를 택시와 대중교통으로 돌아다니는 것이 덥고 힘들긴 했다.
하지만 내가 '더 이상은 못해 먹겠다'라고 느꼈을 땐 이미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동차 전도사 선배들의 열정은 실로 끝이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내게 권하던 차는 자신이 타보고 싶었던 꿈의 차인 듯하다.
내가 그 꿈의 차를 계약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도사들의 의지가 가장 치솟았을 때는 결혼 준비 기간이었다.
자동차 없이 결혼 준비는 불가능하다 말하는 선배들의 눈은 진심이었다.
근데 실제로 해보니까, 잘되었다.
웨딩 촬영이나 결혼식 당일에는 큰 차가 한 번쯤 필요했지만 그마저도 일주일 전에 예약하면 충분했다.
차가 있었으면 좀 더 편했을지도 모르지만, 정작 없어서 못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아내와 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냈다.
우리 부부의 생활 패턴상으론 아직도 차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
일단 나는 지독한 집돌이다.
코로나 시절 돌아다니지 못해 불편한 것은 전혀 없었다.
생활패턴이 바뀔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약속이 잘 잡히지 않아 나가야 할 일이 더 줄어 편했다는 쪽에 가깝다.
나는 특히 사람이 많은 곳이 정말 힘들다.
숨이 절로 막히고, 예민함 수치는 하늘을 찌르고, 컨디션은 바닥을 긴다.
거기다 날씨까지 좋지 않다면?
그날은 컨디션이 지하를 뚫고 들어간다.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외출을 하지 않는 게 답이다.
아내는 나와는 좀 다른 구석이 있다.
세상엔 아직 가보지 않은 카페가 많다며, 놀 것이 많다며 산책 겸 마실 겸 외출을 좋아한다.
그런데 여기엔 또 하나의 반전이 있다.
아내는 멀미가 심하다.
정말 심하다.
자동차는 아내에게 달리는 고통 제조기다.
차만 타면, 빠르게 잠드는 것이 최선이다.
30분 이상 차량을 타야 한다면 멀미약은 기본 세트다.
차로 1시간, 지하철로는 1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라면, 아내는 망설임 없이 지하철을 고른다.
얼마 전 내가 "우리도 이제 차 사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아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아직은 돈을 더 모으자."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함께 차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차가 없어도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세상이 무서울 정도로 너무나 편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동차가 없는 대신 체력과 정신건강, 시간절약을 위해 필요하다면 택시를 잘 이용한다.
앱으로 손가락 까딱해서 부르면 10분 안에 번쩍 하고 나타난다.
자동차가 없어서 아끼는 돈은 상상 그 이상이다.
차값, 기름값, 보험료, 수리비, 주차비, 세차비, 대리비, 갑자기 엔진오일까지.
평소 이동이 많지 않은 우리에게 가끔씩 택시를 타는 것은, 자동차를 구입한 것에 비해 훨씬 경제적이다.
장거리 이동도 크게 문제가 없다.
대한민국만큼 차 없이 여행 다니기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KTX, SRT, 고속버스에 국내선 비행기까지.
나는 앉아있었을 뿐인데 창밖 세상은 저절로 이동 중이다.
자리에서 쉬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 있다.
장보기는 더 편해졌다.
이젠 일이 아니라 클릭이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고 부족한 걸 쓱쓱 주문한다.
다음 날 새벽, 문 앞에 포장된 채소와 고기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우리는 마트 입구 대신 현관문만 열면 된다.
어떤 날은 내가 깜빡 잊은 물건까지 추천 알고리즘이 먼저 기억해 준다.
지난달에 쪽파를 샀으니 지금쯤 다시 주문할 때가 되었단다.
이제는 장을 보기 위해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 필요도 없고, 계산대에서 줄 설 필요도 없다.
오늘은 메뉴판 없는 식당에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온다.
아마도 아내 다음으로 내가 차린 밥을 자주 먹은 단골손님일 것이다.
집에서 20분 거리,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훌쩍 올 수 있는 곳에 사는 내 여동생이다.
요리에 전혀 소질이 없는 덕분에, 집밥이 몹시 당기거나 갑자기 특정 메뉴가 떠오를 때면 우리 집에 놀러 온다.
나와 아내는 연애 전부터 학교 선후배였고 그 시절부터 여동생도 아내를 알고 지냈다.
아내는 동생보다 어려, 그땐 자연스럽게 동생에게 '언니'라고 불렀다.
그러다 우리가 결혼하면서 호칭이 업데이트되었다.
이제 아내는 '새언니'가 되었다.
새언니, 아가씨 하다가 서로 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호칭은 가끔 헷갈릴지 몰라도 둘 사이의 분위기는 정겹고 보기 좋다.
가끔은 둘이 따로 만나기도 해서 나도 모르는 동생의 이야기를 아내가 먼저 알고 있을 때도 있다.
어젯밤, 갑자기 동생은 자극적이지 않은 흰 국물 전골과 고등어 요리가 먹고 싶다고 했다.
먹고 싶다는 말은 곧 해달라는 뜻이다.
그래서 오늘의 메뉴는 버섯만두전골과 고등어찜으로 결정되었다.
갑작스럽게 메뉴가 정해졌지만 요즘 세상에 장 보는 데엔 아무 문제가 없다.
잠들기 전, 앱으로 클릭 몇 번만 해두면 모든 준비가 끝난다.
버섯전골에는 다양한 버섯이 들어가야 제맛이다.
하지만 이걸 다 따로 사면 남은 버섯들이 냉장고 구석에서 곧 버려질 예정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하지만 다행히, 요즘은 샤브샤브용 모둠버섯이라는 멋진 해결책이 있다.
필요한 버섯들만 골고루 큐레이팅된 구성이다.
나는 구성이 조금씩 다른 두 팩을 골랐다.
그걸로 버섯의 다양성과 풍성함을 한 번에 확보했다.
채소도 마찬가지다.
부추도, 당근도 딱 필요한 만큼만 세척까지 마친 채 먹기 좋게 크기로 온다.
대충 물로 한 번만 헹구면 채소준비도 끝난다.
그리고 하이라이트는 바로 손질된 고등어다.
나는 생선을 손질해 본 적이 없다.
비늘을 긁고, 내장을 빼고, 물에 헹구는 장면은 오직 요리 유튜브에서만 본 적 있다.
그런데 내가 주문한 고등어는 이미 모든 손질이 끝나 있고 가시도 거의 제거되어 있었다.
생선 앞에서 주눅 들 필요 없다.
생선은 이미 손질되어 있고, 나는 칭찬만 받으면 된다.
먼저 만들 요리는 버섯만두전골이다.
각종 버섯과 만두, 부추, 당근, 파를 솥 안에 돌려 돌려 정성스럽게 담는다.
버섯과 채소들이 서로 눈치 보지 않도록, 종류별로 각자의 영역을 확보해 가며 조화롭게 배치한다.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리고 사골국물을 부어 팔팔 끓인다.
다 익어갈 즈음엔 샤브샤브용 소고기를 한 줌 얹는다.
오래 끓이면 질겨지니 가볍게 데쳐내는 정도가 딱 좋다.
이렇게 해서 버섯만두전골이 완성된다.
다음은 고등어찜이다.
손질된 고등어를 찜기에 올린다.
들기름에 다진 양파, 마늘, 생강, 파를 넣고 섞은 양념장을 그 위에 끼얹는다.
보통은 간장을 한 숟갈쯤 넣기도 하지만 오늘은 담백함이 목표이므로 간장은 과감히 생략했다.
고춧가루로 살짝 매콤함을 더하고, 청고추와 홍고추를 예쁘게 썰어 올려 눈으로 먼저 먹게 만든다.
뚜껑을 덮고 15분간 쪄준다.
그리고 나면 은근한 향과 함께 정갈한 고등어찜이 모습을 드러낸다.
완성된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곁들임으로는 배추김치, 백김치, 깻잎장아찌, 참기름 살짝 두른 명란젓을 냈다.
한 접시 한 접시 놓을 때마다 식탁 위가 점점 풍성해진다.
밥은 아주 살짝 탔다.
하지만 가족끼리 이 정도는 괜찮다.
밥이 아주 살짝 좀 더 구수해졌을 뿐이다.
오늘은 둘이 아닌 셋의 식탁이다.
세 사람의 수저 소리와 함께 오늘의 메인 요리 못지않게 메인 대화 주제도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동생은 최근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언뜻 보면 평소랑 똑같은데 말에 은근슬쩍 예비신부 멘트가 섞여 있다.
"오빠 때 하객은 얼마나 왔어?"
"새언니, 드레스 투어 몇 군데 다녔어요?"
"식장 예약은 몇 달 전에 했어요?"
묻고 또 묻는다.
아내는 마치 웨딩플래너가 된 듯 기억을 더듬으며 조근조근 알려준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식사는 흘러 흘러 마무리되었다.
상을 치운 뒤, 동생이 사 온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다.
달달하니 입가심으로 딱이다.
평소엔 이런 질문을 잘하지 않던 동생이 결혼을 앞두고선 갑자기 묻는다.
오빠, 결혼은 뭐야?
아내가 옆에 앉아 있는 자리에서 그 질문을 받는 모든 남편들은 잠시 정신이 하얘지는 시간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생각할 순 없다.
나는 대답했다.
결혼은... 실수지
순간, 아내의 눈초리가 정통으로 날아온다.
"뭐야? 나랑 결혼한 게 실수라는 거야?"
나는 당황해서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들어봐.
이성적으로, 현실적으로 따지면 결혼 안 하고 연애만 하면서 사는 게 더 편할 수도 있어.
근데 그 이성을 잃었으니까 결혼을 한 거고... 그러니까 실수지."
그 말을 듣고 동생이 킥킥 웃는다.
"저 정도면 오빠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네."
아내도 못 이긴 척 웃으며 말한다.
"그럼 이성이 마비될 만큼 나한테 빠졌다는 거네?"
나는 요리를 하고, 아내는 웃으며 먹어주고, 동생은 그런 우리를 보며 조금은 부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앞날을 상상해 본다.
세상은 정말 많이 편해졌다.
앱 하나면 장을 보고, 클릭 몇 번이면 차를 부를 수 있다.
수많은 서비스와 콘텐츠, 그리고 놀거리 덕분에 혼자서도 충분히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와 함께 사는 삶을 선택했다.
조금 더 눈치를 보고, 조금 더 나누고, 가끔은 다투기도 하며 살아간다.
그런 불편함 속에서, 혼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편함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안정감, 따뜻함 같은 무언가 말이다.
아마 그래서, 세상이 아무리 편해져도 사람은 결국 사람과 함께 살기로 결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내의 후기
버섯만두전골
★4.5점
비주얼이 정말 예쁘고 정갈했어요!
전골류를 워낙 좋아하는데 맛까지 완벽해서 정말 행복한 식사였어요.
게다가 버섯 장식이 너무 귀여워서 보는 재미, 먹는 재미가 다 있었답니다 ^^
고등어찜
★4.2점
간이 딱 알맞고 생선도 부드러웠어요.
오랜만에 먹는 고등어여서 더 맛있게 느껴졌습니다.
전골이랑도 참 잘 어울려서 두 가지를 번갈아 먹는 재미가 있었어요 :)
동생의 후기
전골 비주얼이 꼭 짱구 같은 만화 속에서 나오는 것과 똑같다!!!
P.S.
그 순간 왜 하필 결혼은 실수라는 말이 튀어나왔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그게 정말 실수였다면, 이건 참 잘한 실수다.
덕분에 나는 매일 저녁 따뜻한 밥을 함께 나눌 누군가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