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글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뚱짱의 이중생활, 시작

by 뚱이

1.

- 이거 00가요?

- 안 가요! 거 앞에 써 있잖아요!


- 이거 00가요?

- . . .

- 00가요?

- 번호판에 써 있잖아요! 안 타요?!


중앙로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게 보면 종종 보게 되는 장면이다. 불안한 낯으로 문이 열리는 버스마다 다가서서 00 가느냐고 묻는데, 돌아오는 답 없이 버스문이 닫히기도 하고 짜증스런 고성이 돌아오기도 한다.


머쓱한 낯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다시 저만치 보이는 버스를 보고 다가서려는 모습을 보다가 슬며시 다가서서 어디까지 가시는지 묻고 정류장 현황판을 확인하고 몇 분 후에 오는 차 타시면 된다고 올 때 알려드리겠다 한다.


2.

나이 든 상인과 행인들이 많이 오가는 시장 초입의 농협

ATM기기 앞에 줄을 서 있노라면 갑자기 잡아끌며 이것 좀 해달라는 노인들이 있다. 주민등록증과 통장까지 손에 쥐어주며 비밀번호를 불러주는 경우도 있었다.


3.

코로나 유행시기 보건소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고 길게 늘어선 줄 옆에서 직원들이 문진표 작성하라고 소리를 친다. 건네주는 문진표와 볼펜을 받아 들고 작성하고 있는데 몇 자리 건너 앞에 서 있던 노인이 다가와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써달라 한다.


4. 대학병원 수납 창구 옆 은행 출장소

역시나 신분증과 통장을 든 노인이 인출을 해야 한다고 도와달라 다가선다. ATM기기 앞에서 비밀번호가 적힌 통장 표지 안쪽을 보여주셔서 화들짝 만류하며 이리 오시라 말씀드리고 은행 출장소로 모셔갔다. 어르신이 글을 모르시는 것 같은데, 나는 지인이 아니라 도와드리기 어려우니 인출을 도와달라고 직원에게 청해보는데 거절의 답이 돌아온다. 원칙상 직원이 인출증을 대신 작성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앞에 적은 상황들은 내가 종종 겪는 일들이다.

20년 넘게 야학에서 글선생 노릇을 하며 중장년층 학습자들을 만나다 보니 그런 기운(?)이 풍기는지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어르신들에게 붙들리는 경우가 잦은 편이다.


저 글 가르쳐드리는 글선생이에요. 배우러 오세요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도 실례되는 오지랖일까 싶어 함부로 하지 못한다.


요새도 글 모르는 사람이 있느냐고?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우리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비문해자가 상당히 많다.


처음 야학교사를 시작하던 때 한글반에서 만나던 학생들이 4,50대부터였는데, 지금 한글교실을 찾는 학생들은 50대 후반에서 7,80대가 많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를 다니진 못한 분들, 어려서 식모살이를 하거나 형제들 뒷바라지하며 정작 본인은 배우지 못한 분들도 있었고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다니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촌에서 자라 입학을 하고 통 학교에 나가질 못 했는데, 졸업장은 받았다는 분도 여럿이었다. 국민학교 입학은 한 거 같은데 다니질 못했다고 글 배워서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무척 열심히 공부하던 학생과 초등 검정고시 접수하러 교육청에 가서 초등 제적 증명서를 떼려다 졸업기록을 발견한 경우도 있다.


죽은 언니 호적으로 살아와서 정작 본인의 생일은 언제인지 정확히 몇 살인지도 모르는 학생도 있었다.


지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의 증거들을 목도하게 되면 당황스러움을 넘어선 무언가와 마주하게 된다.


각자의 연유로 글을 모른 채 수십 년을 살아온 분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글을 몰라 불편했겠다는 안타까움보다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는 때가 더 많다.


내 이름 석자도 신분증을 보고 그리듯 쓰면서도 아이들 키우면서 작은 슈퍼를 했다는 분도 있었다.

상품이름이랑 가격이랑은 어떻게 하셨나 물으니 먹고살아야 되니 그게 그냥 외워지더라 한다. 글자는 못 읽어도 색깔이랑 그림을 보고 저거는 뭐고 얼마고 이렇게 말이다. 가나다라는 못 읽는데, 건설노동일을 하며 시외버스를 타고 전국 각지를 돌아다녀 도시 이름은 읽기도 한다. 글자를 거의 못 쓰는데 읽기는 또 어찌어찌하시는 분도 계셨다. 어릴 때 어머님께서 돌아가셔서 아버지와 오빠 세 식구가 살았는데, 취학 통지서를 들고 온 마을 이장에게 딸년 머리 묶어서 핵교 보내는 짓을 홀애비가 어찌하느냐며 돌려보내서 학교를 못 다녔다고 했다. 근데 읽는 건 어찌 배웠는가 하니 어릴 적 하릴없이 동네 어귀에 앉아있다 버스가 들어오면 사람들이 저건 어디 어디 가는 버스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저게 그렇게 읽으라는 글자인가 보다 하고 짐작하여 외웠노라 했다. 살면서 그런 식으로 귀동냥으로 배워서 더듬더듬 읽기는 했다고.


지난 겨울 받아쓰기 시간 (23년 11월)

이번주엔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하시는 어르신이 계시다고 그 자녀들에게서 연락을 두 번 받았고 다음 주부터 같이 공부하기로 했다. 그중 한 분은 이름 석자만 쓸 줄 아신다고 한다.


이런 저마다의 사연보다 안타까운 건 상담하러 오기로 했다가 가족들 만류로 못 온다는 연락을 받는 거다. 여태도 모르고 살았는데 그 나이에 배워봐야 얼마나 배우겠냐는 거다. 배워서 어디에 쓰느냐고 말이다.


하아. 수화기 너머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다. 못 배운 거에 포은이 져서 그 한을 풀어보고 싶다고 나이 먹은 사람도 배울 수 있냐고 연락했던 분이 가족들이 못 나가게 한다며 전화를 할 때엔, 당신의 마음은 어떻겠냐 싶어 위로해 드리게 된다.


나이 들었다고 꿈이 없겠는가. 나이 든 이는 배워서 쓸 데가 없겠는가.


아니, 쓸 데가 없으면 또 어떤가. 배움의 목적이 사용(!)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학생분들을 처음 만나면 으레 어떤 일을 하고 사셨는지, 글을 배우면 어떤 걸 해보고 싶은지 물어본다. 예전에는 편지를 쓰고 싶다는 분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좀 다양해졌다. 방송에서 대학 진학한 노인분들 이야기를 보시며 자극을 받아 나도 공부해서 수능을 보고 싶다는 분도 있고, 손주에게 카톡을 보내보고 싶단 분들도 있고, 이제 60이 되는 남학생은 면허증도 따고, 배달일을 해보고 싶다고 한다. 자식들이 사다 준 옷이 안 맞으면, 내 취향이 아니면 바꾸러도 가고 싶은데 간판 좀 읽어보고 싶다 한다. 식당을 가거나 차를 마시러 가도 남 눈치 안 보고 메뉴를 읽고 주문도 해보고 싶단다. 요즘은 키오스크가 많이 늘어, 밥 먹으러 들어갔다가 테이블에 덩그러니 놓인 주문용 탭을 보고 도로 나왔다고도 한다.


내가 못 보았다고, 못 들었다고 없는 게 아니다. 눈과 귀를 열어두고 살면 그만큼 더 보이고 들린다. 관심이 가는 곳은 더 그러하다. 그렇게 보고 듣게 된 것이 배움터 안에 들여놓은 내 양발을 딱 붙잡고 있다. 그러다 보니 내 삶의 중심이 배움터 쪽으로, 야학 쪽으로 기울어지게 된 거다.


야학교사이고 배움터 지킴이인 뚱짱의 이중생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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