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을 그릴까?

반려 이야기

by 뚱이

결혼 전 남편과 함께 보낸 시간이 4년,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 시절 남편과 함께 걷는 걸 좋아했다. 따로 데이트하자 하고 나선 길은 몇 번 안 되는 것 같고 같은 일을 하고 있어 출장이나 외부로 나갈 일이 있을 때 둘 다 뚜벅이이던 시절 손잡고 걷는 그 길이 참 좋았다. 버스 타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시간이 허락되면 여유 있게 나와 목적지까지 제법 긴 거리도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때가 있었다.


가끔은 아무 말 없이 걸어도 어색하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길에서 마주한 풍경 앞에


‘여기 좋다’며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던 시절이었다.


결혼하고 아이 둘 낳고, 어느새 그 시간은 아주 멀리 밀려났다. 자동차가 생기고 아이들을 태우고, 둘이 좋아하고 즐겨 듣던 음악 대신 차에선 동요가 크게 울려 퍼졌다.


이제 아이들이 자라 19살, 16살이 되었다. 엄마 아빠 취향을 골고루 닮기도 하고 저마다의 취향이 생긴 아이들이지만 공통의 관심사도 있다. 바로 일본 여행이다. 내년이면 성년이 되는 큰아들도, 일본 애니메이션과 음악에 관심이 많은 작은 딸도 일본에 꼭 가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 한다. 살이가 넉넉지 않아 늘 ‘언젠가 가자’라는 말로만 남아 있다.


인생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함께 보고 겪는 풍경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건 그 시간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였는가 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지나온 흔적이 그림이 되고 말이다.


결혼 전 함께 지낸 지 4년이 흘렀을 때 어느 밤 잠자리에 들어서 나란히 누워 두런두런 이야기를 했었다. 우리 이제 결혼할까? 결혼하면 이전과 뭐가 달라질까? 결혼식을 어떻게 할까? 그래, 하자.


이때쯤이면 할 때가 됐지 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양가 부모님께 결혼하겠습니다 말씀드렸을 때도 비슷한 반응이셨던 것 같다.


살아가다 보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순간이 있다.


때때로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함께 한 곳을 바라보며 아무 말하지 않고 있어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것 같은 때 말이다.


결혼식 때 주례 선생님께서 살아가면서 말로 못다 한 이야기는 글로 전해보라고 펜과 편지지가 가득 든 상자를 선물해 주셨다. 이심전심이 통하지 않을 때 말보단 글로 서로를 이해하고 다독여 보라고 하셨었다.


살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때로 미묘하게 어긋나기도 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살가워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오래된 연인, 부부 대부분이 그렇지 않을까.


함께한 시간만큼 낡고 해졌지만 그래서 더 편안한 잠옷처럼 지금의 나와 남편도 그렇게 낡고 편안하게, 그러나 무너지지 않게 오래오래 함께였으면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편과 둘이서 계획 없이 그냥 무작정 걷고 이야기 나누는 둘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 조금 긴 여행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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