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이틀 같으면

2024년 4월 뚱짱의 하루

by 뚱이
봄바람이 시작되던 때 앞마당의 앵두나무 꽃, 지금은 꽃은 다 떨어지고 초록잎이 가득하다.



여름 같은 봄날.

배움터 주변에 쑥이 한창이라 지나던 걸음 멈추고 쑥 뜯고 계신 어르신들을 자주 뵙는다. 손에 한 움큼 쥐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낡은 봉투라도 찾아다 드리면 좋아라들 하신다.


주변 계단참에 돌나물도 많았었는데 올해엔 안 보이는 것도 같다. 눈에 안 띄는 건지. 새삼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것 투성이니 그런 듯도 하다.


뒤뜰에 채 가시가 억세어지지 않은 두릅나무에 귀엽사리 돋아나던 두릅순은 동네 어르신이 진즉 따가셨다.


배움터 주변엔 봄이 또 이렇게 머물다 간다.


언제나 그렇듯 썰렁한 감이 남아 있는 교실 한구석에 놓인 작은 온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이 냉기를 밀어내던 아침


8시 40분쯤 한글을 배우러 한 분이 찾아오셨다.


수업까진 아직 1시간 20분쯤 남았지만, 근처에 벌써 오셔서 어딘지 찾고 있다는 연락에 바삐 달려간다.


배움터 안 이곳저곳 살짝 안내해 드리고 학생 등록카드 작성 전에 긴장 푸시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서 직접 등록카드를 작성해 보시라고 하고는 연필로 한 칸씩 함께 채워본다.


이름 석 자 말고는 못 쓴다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오늘 새로 오신 분은 찬찬히 연필 잡고 잘 쓰신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글로 남겨놓고 싶은데 이다음에 나 죽은 다음에 내 자식들이 그걸 다 볼 거 아니야. 글 배워서 부끄럽지 않게 잘 남겨두고 가고 싶어.”


학생등록카드에 쓴 당신의 글씨를 보며 이왕 두고 볼 거면 좀 배운 다음에 잘 쓰게 되면 쓰라 그러지, 잘 못 쓰는 걸 두느냐고 투덜투덜하시고는 덧붙이신 말씀이다.


맞다. 배움터는 배움을 통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느끼고 표현할 수 있게 돕고 기운을 북돋아 드리는 곳이다.


때때로 이제 나는 할 만큼 했다, 나 살 궁리를 찾자 하다가도 배움터를 떠나지 못하는 게 이렇게 한 번씩 뒤통수를 때리며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학생분들 말씀 탓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9시 30분이 지났다.


아이쿠야, 다른 분들 오실 때 되어 가는구나.


잠시 기다려보시라 하고 이전에 공부하던 속담 카드 드리고, 수업 때 학생들과 함께 속담 읽으면서 녹화해 둔 영상 틀어드리고 잰걸음으로 청소를 시작한다.

부랴부랴 문 열고 사무실 안쪽 탕비실 정리하고 화장실 청소하고 현관문 비질하고 나니 기가 막히게 딱 맞추어 한 분씩 들어오신다.


신입생 맞이로 서로의 이름을 한 자씩 쓰고 읽어보며 수업을 시작한다.


어느덧 마칠 시간.

학생분들 배웅하고 문단속 후 재택근무 준비를 위해 집으로 향한다.


밥벌이 시작 전에 좀 쉬고 싶은데 해야 할 일은 어찌나 많은지. 휘다닥 눈에 보이는 집안일 하고서 컴퓨터 앞에 앉아본다.


헤드셑을 쓰고 앉아 한쪽엔 업무용 폰을 놓고 모니터 위 캠을 쳐다보고 방실방실 웃으며 꼬꼬마들 수업을 시작한다. 네, 어머님~ 하며 이어지는 학부모 상담도 중간중간 계속된다.


여섯 시간을 꼬박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앉아 아이들 코칭을 마치고 나니 아홉 시는 진즉에 지났고.


비로소 방 밖으로 나와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감을 보며 한숨 한 번 쉬어보고, 세탁기 눌러놓고 대강 요기하고서 설거지를 한다. 화상수업 주간이든 전화코칭 주간이든 재택 중이라서 외부 소음이 들어가면 안 되는지라 우리 집 아이들은 조용히 밥을 챙겨먹고 그릇만 담가둔다.


샤워를 마치고 잠시 앉았다가 쉴까 하고 누웠다가 '아차, 잊고 있었구나. '

또 부랴부랴 영상에 자막 넣는 앱을 열고 영상을 업로드한다. 지난주부터 오늘까지 속담 읽고 녹음한 거 합본 만들어 자막 넣고 복습용 영상 만들고 나니 자정이 지났다.


열심히 만든 영상은 내일 아침에 메신저로 보내드리고 탭에는 수요일에 넣어드려야겠다. (한글 학습자들은 집에서 복습을 하려고 해도 어떻게 읽는 건지 생각이 안 나면 복습을 할 수가 없어서, 학생들 스마트폰에 설치해 둔 메신저로 자막 넣은 영상을 보내드리고, 폴더폰을 쓰는 학생들에겐 영상 담은 탭을 빌려드린다. )


매일이 이틀 같은 이 기분을 어찌할까. 일주일이 7일이 아니라 12일쯤 되는 것 같다.


복작복작할 내일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이제 나도 좀 쉬어볼 시간이라 웹서핑도 하고 온라인 책방에서 책도 뒤적거려 본다. 이러다 보면 또 세네시는 돼야 잠들 테고, 내일 아침 눈을 반쯤만 뜨고 출근할 테지만 일단은 좀 나도 놀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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